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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강제 폐간
1936년 8월 독일 베를린에서 제11회 올림픽이 열렸다.
독일의 집권자 히틀러는 한 해 전인 35년 3월 베르사유 조약의 군사 조항을 일방적으로 파기,
재군비(再軍備)를 공식 선언해 세계를 불안 속으로 몰아넣으면서 한편으로는 독일의 국위를 과시하기
위해 올림픽 사상 유례가 드문 대규모 대회를 준비했고 각국도 사상 유례가 없는 대규모 선수단을
보냈다.
조선은 일본 대표단의 일원으로 마라톤, 축구, 농구, 권투 등 종목에 참가했다. 32년의 10회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 김은배(金恩培)가 6위에 입상한 마라톤에는 비상한 관심이 쏠렸다. 특히
전년도인 35년 3월에 열린 올림픽 파견 마라톤 예선에서 손기정(孫基禎)은 2시간26분14초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워 이미 세인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었다.
그의 기록은 10회 올림픽에서 우승자 자바라가 세운 2시간31분37초를 무려 5분23초나 단축한
것이자 처음으로 30분대의 장벽을 깬 것이었다. 가히 거족적이라 할 만한 기대가 그에게 쏠렸다.
손기정과 남승룡(南昇龍)이 출전한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은 8월9일, 서울 시간으로 밤 11시에
시작됐다. 동아일보 편집국은 철야로 들어올 현지 소식을 기다리며 호외를 비롯한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10일 새벽, 세계 인류의 꿈이었던 30분 벽을 깨고 2시간29분19초2로 손기정이 1위로 골인했다는
감격적인 소식이 들어오자 동아일보사 안팎에 운집한 사람들은 일제히 함성을 올렸다.
동아일보는 이 날에만도 두 차례나 호외를 냈고 이어 연일 손기정의 일대기를 소개했으며 ‘올림픽
세계 제패의 노래’를 공모하는 한편 대회의 기록영화를 입수해 9차례나 공개상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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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장기 말소와 제4차 정간
8월25일자 동아일보 석간 2면에는 월계관을 쓰고 수상대에 오른 손기정 선수의 감격적인 사진이 실렸다.
일본의 주간지 ‘아사히 스포츠’를 뒤늦게 입수해 거기에 실린 사진을 복사하여 전재한 것이다.
그런데 초판 때는 일장기가 선명하게 보였으나, 놀랍게도 재판에서는 원본과 달리 유니폼 가슴 부위의
일장기가 교묘히 삭제되어 있었다.
체육부 기자 이길용이 전속화가 이상범에게 사진 속의 일장기 처리를 상의했고 두 사람은 이심전심,
빙그레 웃음을 교환하며 별다른 말 없이 의견일치를 보았다고 전해진다.
일장기 말소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32년 김은배가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 6위 입상할 때도 눈에 거슬리는 가슴의 일장기를 말소한 일이
있었다.
그 당시는 총독부의 트집 없이 넘어갔다. 윤전기가 돌아가기 시작한 뒤 보성전문학교 이사실에서 이
사실을 연락받은 김성수는 마침내 제4차 무기정간이 눈앞에 닥쳤음을 직감했다.
1, 2, 3차 무기정간 때와는 비교도 안 되는 소재인데다 시국 또한 매우 엄중했다. 몇 달 전
사이토를 살해한 ‘2·26 사건’의 장교들이 내세운 구호가 ‘국체명징(國體明徵)’이었다.
그리고 국기는 곧 국체의 상징이었다. 신문사는 경찰에 둘러싸였고 신문사 안은 마치 태풍전야 같았다.
사장실에서 눈을 감고 침통한 표정으로 앉아 있던 송진우에게 김성수는 말했다.
“자네 거기서 뭘 하고 앉아 있나?” 방금까지 “성냥개비로 고루거각(高樓巨閣)을 태워버렸다.”고
이길용 기자를 크게 꾸짖으며 흥분을 가누지 못하고 있던 송진우가 대답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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