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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일도 많거니와 할 일은 더욱 많아
십년 마디마디 새 기원을 아뢰면서
끝없는 조선과 함께 만만세를 사소서
그러나 곧 세 번째 정간의 철퇴가 떨어졌다.
그 해 4월16일 미국의 ‘네이션’지 주필 빌라즈가 보내온 창간 10주년 기념 축사를 게재한
것이 불온하다는 이유로 삭제되고 정간처분을 받게 된 것이다.
‘조선의 현 상황에 귀지(貴紙)의 사명은 중대하다.’는 제목의 축사는 다음과 같은 요지를 담고
있다.
주간 ‘네이션’이 1865년 창간 이래 주장해온 것은 소수민족의 자유와 민중 생활양식의 자유,
그리고 어떠한 군국주의에 대하여도 항의하는 것으로 일관해왔다.
따라서 귀지가 추구하는 사업에 대해 우리가 절대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음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조선의 현 상황에 동아일보의 사명이 매우 중대함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귀지가 곤경에 처해 있는 것은 귀지가 청렴하고 비이기적이며 공정하고 결백해, 사명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희생하겠다는 결심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 귀지가 이러한 정책으로 일관한다면 조선민족과 그 사명을 위해 가장 힘있는 봉사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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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 정간은 4개월 반 만에 풀렸다. 30년대라고 해서 총독부의 언론정책에서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9월2일 속간호에서 동아일보는 10년 전 창간 때의 3대 주지를 다시 강조함으로써 총독부와 독자에게
대답했다.
2000만 민중의 표현기관으로 자임해 조선민족의 생존권을 주장 옹호함에 있어, 민주주의를 제창함에
있어, 신문화의 향상을 촉진함에 있어서 본보 창간의 3대 강령이 그대로 시종여일한 우리의 지침이
될 것은 물론입니다.
30년 1월1일, 악조건 속에서 새로운 10년을 개막하는 각오를 담아 동아일보는 신년호부터 1면의
‘東亞日報’ 제호 바탕에 무궁화로 수놓은 한반도 지도를 새겨넣었다.
만보산 사건
동북아 정세는 급변하기 시작했다. 1928년 7월 중국이 장개석(蔣介石)의 남경(南京)정부 수립을
계기로 미국, 영국 등 외세와 맺은 불평등조약의 폐지를 선언하고 나서자 일본은 만주 지역에서 이미
획득한 이권을 놓지 않으려고 만주지역 패권 유지에 총력을 기울였다.
세계 경제공황이 심각해지는 것과 때를 같이해 일본 내부에서는 국수적 우익세력과 군부가 한층 세를
얻으면서 중국대륙에 대한 무력침략 노선이 힘을 얻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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