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민족의 염원을 업고 > Ⅱ.가시밭길 > 2. 시련과 단련 page 1
 

한국 청년은 모두 씩씩하고 용기가 있으니 믿음직스럽다. 여러분은 학술과 공업을 배워서 행복한 국민이 되기를 바란다. 여러분도 미국청년처럼 정의와 인도를 사랑하기 바란다.”
기독청년회장 이상재(李商在)는 “우리가 미국을 친애함은 부강하기 때문이 아니고 오직 정의와 인도를 주장하는 나라이기 때문”이라고 답사했다.
행사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행사장 주변을 둘러싼 경찰은 해산을 종용했고 나오는 사람들에게 곤봉을 휘둘렀다. 이 광경은 후일 미국의 한 신문에 ‘개같이 취급된 코리안’이라는 제목으로 보도됐다. 의원단은 그날 밤 열차로 떠나며 한 장의 메시지를 동아일보에 전했다.
‘한국인의 환영에 감사한다. 학술과 산업에 힘써서 행복하게 살라.’는 인사였다. 이 메시지를 신문에서 본 시민들은 그 의례적인 말 속에 무슨 암시라도 있는지 찾아내려고 애썼다.
일행이 도쿄에 도착했을 때 이들을 환영하던 유학생 4명이 체포됐다.
동아일보는 이들이 떠난 다음날 ‘정의와 인도를 위하여 아시아를 해방하라─미국 의원단에게’와 28일부터 3일간에 걸쳐 ‘미국 내빈이 전하는 말’ 등의 사설을 실어 미국에 대한 기대감을 표시했다.
미국의 극동정책이 조선 독립을 실현하는 방향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음을 동아일보 편집진과 조선민중이 깨닫게 된 것은 1년도 더 지난 뒤 워싱턴회의를 통해서였다.
미국 의원단 입국을 앞두고 체포된 양기탁은 만주로 탈출, 독립운동단체 통합에 매진하며 다양한 항일 활동을 벌여나감으로써 동아일보와 인연이 끊어지게 된다.

 

이른바 친일 인사에 대한 테러가 잇따라 여러 지역에서 조선인 군수가 살해되는가 하면 부산에서 의열단원이 경찰서에 폭탄을 던져 서장이 숨지는 사건이 일어난 것도 이즈음이다.

2. 시련과 단련


1920년 동아일보 사장이 박영효에서 김성수로 바뀌자 총독부는 돌연한 사장 교체가 신문의 논조 및 성격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촉각을 기울였다. 이는 조선일보도 마찬가지였다. 민족지를 자임하는 동아일보의 사장이 신구 갈등으로 퇴진한 이후 조선일보 역시 8월에 발행인 예종석과 사장 조진태(趙鎭泰)가 물러나고 권병하(權丙夏)-유문환(柳文煥) 체제가 들어섰다. 창간 이래 신문사 내부에서 이른바 친일파(親日派)와 배일파(排日派)가 대립해 있다가 배일파의 입지가 상대적으로 강해진 것이다.
상해 임시정부가 발행하던 기관지 독립신문 6월1일자는 ‘동아일보의 운명’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도쿄 아사히신문을 인용, 3대 민간지 출범 2개월을 다음과 같이 관측하고 있다.

동아일보는 반국가(反國家)적 기사가 많아 총독부로부터 여러 차례 발매금지를 당했는데, 다년간 조선인의 언론을 극단으로 압박한 데 따른 반작용이라 할지라도 태도 자못 불온하므로 총독부에서 단호한 조치를 할 모양이다. 동아일보에 자극된 다른 신문도 근래 불온한 기사를 게재하는 경향이 있다.
조선일보와 같은 실업 본위의 것과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까지도 발매금지 또는 경고를 받는 형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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