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to contents

고려대의 학점 세탁 방지

Posted December. 11, 2013 03:35   

中文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의 하나인 프랑스 파리대의 교수들은 1960년대만 해도 절대적인 권위를 누렸다. 학생들은 강의 시간에 조용히 들어야만 할 뿐 질문을 할 수가 없었다. 교수와 면담을 하려면 먼저 정중한 편지를 보내야 했다. 11세기 이탈리아 볼로냐 등에서 시작된 유럽 대학의 풍경은 이전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교수의 권위를 가능하게 해준 것은 당대 최고의 지식인에 대한 존경심과 학생에게 학점을 줄 수 있는 권한이다.

학점의 영어 단어는 credit로 신용이라는 의미를 포함한다. 교수가 자신의 수업을 들은 학생의 실력을 스스로 보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 학점은 불신의 대상이 된 지 오래다. 최근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서울대의 경우 전체 학생의 49.5%가 A학점을 받은 것으로 집계됐다. A학점 비율은 최대 25%를 넘지 않아야 정상이다. 다른 대학들도 학점 퍼주기에서 예외가 아니다. 취업 때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교수들이 학점을 후하게 준 결과라고 한다. 학점을 짜게 주면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하는 학생들도 있다고 한다.

재수강 제도도 학점 왜곡을 부추기고 있다. 낮은 학점을 받은 과목을 다시 수강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추가 기회를 주는 것을 나무라긴 어렵지만 문제는 형평성이다. 재수강 학생과 처음 수업을 듣는 학생이 함께 시험을 치르면 재수강 학생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성적증명서에는 재수강 사실은 남지 않는다.

고려대가 내년부터 재수강 사실을 표시하기로 했다. 비정상이 정상이 되어버린 학점의 신뢰 회복을 위해서란다. 기업체들은 이미 신입사원 채용 때 학점에 큰 비중을 두지 않는다. 외국 대학원에 진학할 때도 한국 대학의 학점은 믿음을 얻지 못한다. 한국의 국제적 위상을 감안할 때 한국 대학은 다른 분야보다 뒤처져 있는 것이다. 대학이 신뢰를 잃으면 발전할 수 없다. 학생들의 노력에 걸맞은 점수를 부여하는 일에 타협해서는 안 된다. 최소한 주요 대학들은 원칙을 지켜야 한다.홍 찬 식 수석논설위원

chansi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