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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어려울수록 따뜻한 말 한마디가 평화를 만듭니다

경제 어려울수록 따뜻한 말 한마디가 평화를 만듭니다

Posted January. 09, 2009 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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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에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힘들어하는 분들에게 덕담을 부탁드립니다.

지구상에서 끊임없이 분쟁이 벌어지고 있어 새해 들어 더욱 간절하게 평화를 기도했습니다. 가정이란 작은 울타리에서 시작해 지구까지 이어지는 평화입니다.

가정의 평화가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허물이 없고 자기편이라고 생각해서인지 더 싸늘하게 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은 행복하라고 태어난 겁니다. 근데 그게 참 어려워요. 이혼 사유 중 가장 많은 이유가 신의를 안 지키는 것이고, 두 번째가 경제적인 어려움이라고 합니다. 새해 첫날 성당 신자들에게 집안에서 욕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부부 싸움할 때 아이들이 욕을 배워요. 물질이 부족하다고 가정에서 쓰는 말이 거칠어진다면 곤란합니다. 살림살이가 어려워질수록 위로의 말, 아름다운 말이 가정에 평화를 만들어 줍니다.

추기경님 젊은 시절에는 책을 하루에 한 권씩 읽고, 지금도 매년 책을 한 권씩 출간한다는 약속을 지키고 있습니다. 시간 관리를 어떻게 하시는지요.

625전쟁 때 죽을 고비를 넘긴 뒤 이제 내 목숨은 내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때 얼마나 살지 모르지만 남아 있는 시간을 알차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암 선고 받은 사람을 가까이서 지켜본 적이 있었는데 남은 시간이 6개월밖에 없다는 사실은 안 뒤 정말 달라지더군요. (그분은) 세상이 다 아름답다고 했어요. 반년 동안 흠 잡을 데 없이 완벽한 인생을 살면서 주변 정리를 했어요. 자기가 받은 사랑도 다 갚아주고 세상을 떠나더군요.

죽음이 시간의 소중함을 죽음이 가르친 거네요.

하느님은 공평해요. 너나 할 것 없이 24시간을 공평하게 주시잖아요.(웃음)

취업난과 꿈을 잃어버려 방황하는 20대 젊은이가 많습니다.

인생의 선배로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자신만을 위해 살려고 하면 더 힘들어집니다. 많은 사람과 공유하는 꿈을 가지면 길이 열리고, 좋은 희망을 품으면 반드시 공감하는 사람, 협조하는 사람이 나타납니다.

한국 가톨릭교회가 20여 년간 비약적으로 성장했는데 그 비결은 무엇인지요.

가톨릭교회가 잘해서가 아니라 우리 국민의 심성이 외래 종교이지만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이는 넓은 아량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일본은 가톨릭이 전파된 지 400년이 넘고 순교자가 몇 만 명이지만 개신교와 천주교 신자 모두 합쳐도 인구의 1%가 안돼요. 그 고마운 마음에 잘 보답해야 합니다.

와병 중인 김수환 추기경님의 근황은 어떠신지요.

많이 좋아지셨는데 성탄절 때 감기에 걸리셨어요. 빨리 회복하시기를 바랍니다. 김수환 추기경님은 서울대교구장을 꼭 30년을 하셨어요. 부임 날은 본인이 정할 수 없었지만 물러나실 날은 선택하셨죠. 하루는 추기경님을 만났는데 어느 날이 좋을까 이렇게 묻더군요. 그래서 뜻대로 하세요라고 말했죠. 30년 동안 김수환 추기경님은 약자를 보살피는 상징적 존재였습니다. 한국 가톨릭계가 큰 빚과 함께 덕을 보고 있는 거죠.

정 추기경이 지난해 말 출간한 성왕 다윗을 신 작가에게 선물로 건네자 신 작가도 자신의 책 엄마를 부탁해를 선물했다. 자연스럽게 대화가 엄마에게 맞춰졌다.

추기경님의 글이나 인터뷰에서 어머니 얘기를 감동 깊게 읽었습니다. 신은 모든 곳에 존재할 수 없어 어머니를 만들었다는 외국의 격언을 인용하면서 어머니 말씀을 하셨습니다. 추기경님과 어머니의 이야기는 다른 분들에게 많은 위로가 될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에게서도 똑같이 들을 수 있는 얘기지만 당연히 어머니가 없으면 내가 있을 수 없죠.(웃음) 실제 오늘의 내가 있는 것은 어머니의 영향과 은덕입니다. 나중 친척에게서 들은 얘기인데 제가 태어날 당시 서울에는 돌림병도 있고 유아사망률이 높아 젖동냥을 주지 않는 분위기였답니다. 근데 우리 엄마는 젖동냥을 주셨어요. 내가 먹을 젖은 정해 놓고 한 쪽은 다른 아이들을 위한 거였죠. 625전쟁과 엄마의 젖동냥에 담긴 뜻을 평생 마음에 두고 살아왔습니다. 앞으로의 인생은 덤으로 사는 것이라고 합니다.

소설 엄마를 부탁해를 쓰면서 엄마란 말을 얼마나 불러 봤는지 모릅니다. 첫 제목은 어머니를 부탁해인데 글이 풀리지 않더군요. 하지만 제목을 어머니에서 엄마로 바꾸고 나니 그 뒤 생각들이 쳐들어오듯 오더군요. 엄마에게 얼마나 많은 빚을 지고 사는지. 추기경께서 아까 엄마라고 말해 조금 놀랐습니다.

5세 때부터 어머니라고 호칭을 바꾼 뒤 평생 그렇게 살았어요. 그러다 내가 주교일 때 몸이 불편하신 어머니를 모셨는데 부축하다 엄마하고 부르니 어머니 얼굴이 환해지시더군요. 1996년 돌아가실 때까지 엄마라고 불러드렸죠.

추기경으로 평생 뜻을 세워 놓으신 일이 있다면?

살면서 여러분께 받은 사랑의 빚을 지고 있습니다. 이 숙제를 열심히 하면서 세상을 떠날 것 같습니다. 주변 다른 분들의 뒷받침이 없으면 어떻게 살 수 있겠습니까.



김갑식 dunanwor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