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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우량기업이 자금압박 받는 속사정

[사설] 우량기업이 자금압박 받는 속사정

Posted December. 05, 2008 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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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건설사는 지난해만 500억 원대 순익을 올렸고 올해도 9월까지 250억 원대 순익을 냈다. 부채 비율도 110%대로 낮은 건실한 우량기업이지만 이달 말 만기가 돌아오는 400억 원대 단기자금을 갚지 못하면 부도다. 주거래은행에 시가 5000억 원대 담보를 제시하고 돈 좀 빌려 달라고 사정했지만 은행은 우리도 여력이 없다고 외면했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1분1초가 급한데 관료들은 실태를 파악하겠다는 말만 하지, 나서지를 않는다. 은행들은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이 떨어질까 봐 우선 대출 회수가 쉬운 우량기업부터 압박한다고 말한다.

A건설사를 옥죄는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은 돈이 잘 돌 때 우량 건설사들이 3개월 만기의 단기자금을 확보하는데 유용하게 썼던 파생상품이다. 은행에서 받은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을 근거로 증권사를 통해 돈을 쉽게 조달할 수 있었다. 금융권 PF 총규모 97조1000억 원(6월 말) 중 은행대출은 78조9000억 원이고 , ABCP는 15조3000억 원대다. 비록 규모는 작을 지라도 은행대출이 대부분 1년 이상 장기 상환인데 비해 ABCP는 단기여서 순식간에 기업을 유동성 위기에 빠뜨릴 소지가 높다.

LG경제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ABCP가 부동산발() 금융위기의 도화선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연구원이 추정한 내년 상반기 만기 상환 압박을 받는 ABCP 규모는 10조18조 원대로 추산된다. 해당 기업들은 대부분 영업실적이 좋고 신용등급이 높아 대부분 급한 불만 꺼주면 정상화할 수 있는 우량기업이다. 그런데도 지금 금융 현장은 생존이 불가능한 업체를 지원한다며 우량업체 자금을 우선적으로 회수하는 바람에 멀쩡한 기업들이 자금난에 빠져버린 상황이다.

흑자부도 공포는 건설업뿐 아니라 다른 산업으로 확산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코스피 12월 결산법인 629개 업체 중 3분의 1 이상(34.8%)이 이익을 내면서도 돈이 돌지 않아 현금 수입이 마이너스 상태다. 이익을 내는 업체는 1997년 외환위기 때의 23.1%보다 훨씬 많다. 통화 유통속도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크게 낮다.

대통령은 중소기업 흑자도산을 막아야 한다며 여러 차례 시중은행에 자금지원을 촉구했지만 막상 은행 창구에선 통하지 않는다. 돈맥이 막힌 곳을 정확히 짚어내 뚫어주는 발 빠른 대응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