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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 고료 100만원

Posted December. 20, 2004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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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섭하게/그러나 아조 섭섭지는 말고 좀 섭섭한 듯만 하게/이별이게/그러나 아주 영 이별은 말고 어디 내생에서라도 다시 만나기로 하는 이별이게/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 아니라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엊그제 만나고 가는 바람 아니라 한 두 철 전 만나고 가는 바람 같이.

미당 서정주의 이 절창()에 접한 일본 여류 하이쿠(일본 고유의 단시) 시인 마유즈미 마도카 씨(42)는 2001년 무작정 한국으로 건너와 사계절에 걸쳐 부산서 서울까지 500km를 걸었다. 이처럼 아름다운 시를 쓴 시인의 서정()과 그를 길러낸 산하()를 체험해 보고 싶어서였다.

얼마 전 문단 식구들과 조촐한 송년 모임을 가졌다. 생전의 미당과 교분을 나눈 고려대 김화영 교수가 맥주를 끔찍이 좋아하시던 미당이 말년에 고추장통에 곰팡이가 핀 줄도 모르고 멸치를 찍어 안주로 드시더라고 술회하자 여러 사람이 눈시울을 붉혔다. 미당의 마지막 시집 80 소년 떠돌이의 시를 출간한 시와시학사 최명애 사장은 선생님이 저승에 가서도 맘껏 시를 쓰시라고 시집 맨 뒤의 세 장을 빈장으로 남겼다고 말해 자리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아름다운 시는 인간의 영혼을 맑게 한다.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기도 한다. 20세기 마지막 겨울, 눈이 많이 내린 성탄절 전야에 85세를 일기로 영욕의 인생을 마감한 미당은 64년에 걸친 시업()으로 900편의 시를 남겼다. 일찌감치 대가()의 반열에 오른 미당은 과연 시 한 편에 고료를 얼마나 받았을까. 아마 신문 신년호나 송년호에 실린 작품 같은 경우를 빼고는 고작 대포 값 정도의 고료를 받았을 것이다.

한 계간 문예지가 시 한 편의 고료로 100만 원을 지급하는 격외시단()을 신설키로 했다고 한다. 시 고료가 아예 없거나 문예지의 시 한 편 고료가 10만 원 이하인 사정을 감안하면 파격적이다. 하지만 시 한 편을 쓰기 위해 시인이 들인 노력과 불면의 밤을 생각하면 이 또한 결코 많은 액수라 할 수 없다. 거액의 고료로 시를 사고파는 사회 현실이 서글프다는 자조의 목소리도 나온다. 고료 못지않게 시인에 대한 사회적 대접도 격상()되기를 바란다.

오 명 철 논설위원 osca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