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이라크 국가 건설(nation-building)을 미 제국주의 통치의 시작으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이에 대해 니알 퍼거슨 뉴욕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미국이라는 제국은 (성립된다 하더라도) 역사상 가장 순식간에 사라지는 제국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저서 현금의 지배로 국내에도 소개된 석학 퍼거슨 교수는 뉴욕타임스 매거진 최신호(4월27일자)에 기고한 제국, 살금살금 뒷걸음질치다는 제하의 글에서 영국과 미국의 제국주의를 비교했다.
미 제국이 단명할 수밖에 없는 것은 국제 사회의 견제나 식민지의 반발 같은 외부적 요인이 아니라 미국 내부의 특성 때문일 것이라는 게 그의 분석이다. 1920년부터 40여년 동안 이라크를 직간접적으로 식민 통치했던 영국과 비교하면 현재 미국이 월등한 경제 군사적 힘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영국과 달리 미국에는 바그다드에 갈 사람이 없다는 것.
19001914년 260만명의 영국인들이 식민지에 정착했다. 이렇게 형성된 식민지의 영국인 사회는 현지 통치와 본국을 연결하는 중요한 고리가 됐다. 특히 19271929년 영국의 식민통치를 받는 국가의 신규채용 공무원 927명 중 거의 절반이 명문 옥스퍼드대와 케임브리지대 출신이었다.
반면 19981999년도 미 명문 예일대 4만7000여명의 학부생 중 중동을 포함한 동양 관련 학문의 주전공자는 단 1명이었다. 1998년까지 13만4798명의 예일 졸업생 중 5%만이 해외에 거주하며 고작 70명만이 중동에 나가 있다.
그나마 중동 전문가를 자처하는 미국인들도 현지 정착에는 관심이 없다. 통신과 교통의 발달로 짧은 여행으로 본국을 왕래할 뿐이다. 역설적이게도 기술의 발달이 현지와의 단절을 초래한 셈.
그렇다면 영국의 엘리트들은 왜 험난한 식민지 근무를 자처했을까? 당시 국내에서 상대적으로 차별을 받았던 켈트족 출신의 엘리트들이 이를 기회로 여겼다고 퍼거슨 교수는 설명한다. 현재 미국 인구의 12.9%를 차지하는 흑인들이 해외파견 미군의 25.4%를 차지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대영제국에서는 다양한 분야의 민간 엘리트들이 해외로 진출했던 것과 달리 현재 이라크에 체류하는 미국인 대부분은 군인들이다. 미국의 엘리트들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전파하겠다는 열정으로 바그다드에 가는 대신 음악채널 MTV에서 일하거나 기업의 최고경영책임자(CEO)가 되고 싶어 한다고 퍼거슨 교수는 지적했다.
미 선거주기가 짧아 식민정책의 수명이 짧을 수밖에 없는 점도 제국 단명의 원인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박혜윤 parkhy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