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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 ? 협박 ? 푸념 ?

Posted November. 29, 2006 0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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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 할까요?

28일 오전 청와대 국무회의장. 이렇게 운을 뗀 노무현 대통령의 표정은 작심한 듯 말을 이어나갔다.

국회에서 표결을 거부하고, 또 표결을 방해하는 것은 명백히 헌법을 위반하는 불법행위다. 부당한 횡포죠. 어제 대통령이 헌재소장 임명동의안을 철회했다. 굴복 한 것이죠. 뭐 현실적으로 상황이 굴복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돼 있었기 때문에 대통령이 굴복했다.

노 대통령은 이어 지금 대통령이 가지고 있는 정치적 자산은 당적과 대통령직 두 가지뿐이라며 당적 및 대통령직 포기 가능성을 시사했다.

만약에 내가 당적을 포기해야 되는 상황까지 몰리게 되면 그건 임기 중에 당적을 포기하는 네 번째 대통령이 될 것이다. 아주 불행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그런 일이 없도록 노력하겠습니다마는, 그러나 그 길 밖에 없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는 또 어쨌든 임기 동안에 직무를 원활히 수행하자면 이런저런 타협과 굴복이 필요하면 해야 될 것 아닌가 이렇게 생각합니다. 다만 임기를 다 마치지 않은 첫 번째 대통령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굴복이란 표현을 네 번이나 썼다. 누구보다 지기를 싫어하는 노 대통령으로선 이 일을 얼마나 치욕으로 생각하는지가 읽힌다.

노 대통령은 국무회의가 끝난 뒤 일부 참모진에게 언론도 사안에 대한 법적인 평가나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은 묻어두고 편을 가르거나 싸움을 부추기는 데 급급한 상황이라고 언론에 대한 불만도 토로했다고 청와대 브리핑은 전했다.

노 대통령은 이어 이런 비논리적인 정치판 싸움에 익숙하지 않은 전효숙 지명자에게 인격적인 수모를 계속 견디어 달라고 할 수도 없었다며 정치판을 비난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사전에 치밀히 준비된 것으로 보인다. 노 대통령은 임기 중에 당적을 포기하는 네 번째 대통령이 될 것 임기를 다 마치지 않은 첫 번째 대통령이라며 구체적 수치를 강조했다.

노 대통령의 발언에 정치권이 술렁인 것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 노 대통령은 지난해에도 임기단축을 내걸며 대연정 제안을 밀어붙였지만, 그 때보다 훨씬 결행 가능성이 높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한 친노 직계 의원은 청와대 참모진들로부터 노 대통령이 요즘 그만두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해서 걱정이라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다른 여권 관계자는 노무현 대통령의 성격상 최대, 최후의 권력인 인사권을 마음대로 행사하지 못하면 식물대통령이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날 노 대통령의 발언은 야당보다는 여당을 겨냥한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노 대통령은 열린우리당 김근태 의장이 25일 12월 9일까지 (당청이) 한 몸으로 갈 건지, 중립내각으로 갈지 결론을 내라고 압박하자 26일 여야정 정치협상회의 제의로 맞섰다.

사실상 한나라당에 유인구를 던졌지만, 한나라당의 반응은 냉담했다. 결국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의 지명을 철회할 수밖에 없었던 노 대통령이 탈당과 대통령직 포기를 시사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 여권 인사는 노 대통령은 누구보다 권력의지가 강하고, 게임과 역발상에 능하다며 이미 여러차례 탈당과 대통령직 포기를 시사했지만 임기말까지 유지하고 있지 않느냐. 버릴 듯, 버릴 듯 하면서 상대를 흔들어 판을 유리하게 이끌어 나가는 게 노 대통령의 전술이라고 말했다.



정연욱 jyw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