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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1972.10.27 ~ 1972.12.04
연예수첩반세기-영화계
동아일보는 침체한 영화계에 관심을 되돌려보는 의미에서 한국영화의 측면사를 연재했다. 한국영화 초창기부터 1955년 '피아골'까지의 이야기를 에피소드 중심으로 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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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演藝手帖半世紀-映畵界]<30·끝> 取材後記
演藝手帖半世紀映畵界㉚<끝>取材後記韓國映畵史연구·整理시작할때年間 二百편 量産、작년까지 二、四七六편「적당히찍어넘기자」風潮지양을 영화처럼 대중으로부터 사랑을 받는 오락 또는 藝術은 없다。 영화가 藝術보다는우선「구경거리」로 인식되고있는것은 評論家「아서 나이트」의 지적과 같이『영화가다른 藝術에 비해 너무재미가 있기 때문』…
1972.12.04
5면 사회
[演藝手帖半世紀-映畵界]<29> 「피아골」과 빨치산
演藝手帖半世紀映畵界㉙「피아골」과 빨치산思想과 人間性의 갈등을 추구「진짜」습격 소식에 진땀빼기도 樂劇團이끌던 金振奎 主役자원 一九五五년가을、지리山공비토벌이 거의 끝장이날무렵 빨치산의 내부세계를 그린 李康天감독의「피아골」이 발표되어 커다란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金振奎와 盧耕姬를 주연으로한「피아골」은 빨치산들 사이에…
1972.12.02
5면 문화
[演藝手帖半世紀-映畵界]<28> 가죽신 굽높힌「春香」
演藝手帖半世紀映畵界㉘가죽신 굽높힌「春香」시골을 헤매며「月梅」집 물색主人公 趙美鈴、키작아 고민 제작비를 확보하고난 李圭煥은「春香傳」의 主役을 놓고 무척 苦心했다。 李道令에는 키가 훤칠하고 미남인李敏을 내세우기로 결심했지만 春香役이 문제였다。 趙美鈴으로 하자니 키가 너무작아 李敏의어깨에도 미치지못하는것이었다。 …
1972.11.30
5면 문화
[演藝手帖半世紀-映畵界]<27> 活力불어넣은「春香傳」
演藝手帖半世紀映畵界㉗活力불어넣은「春香傳」戰後 作品質·興行서 홈런기록「街人」反對무릅쓰고아들이出資李敏、감독에 코피사고主役데뷰 五二년 大邱에서 申相玉이洋公主의 비극을 그린「惡夜」로 데뷰하고 五三년에 鄭昌和감독이 兪賢穆각본인「최후의유혹」을 발표한뒤 五四년 李康天감독이 反共영화로번안한「아리랑」을 내놓으면서 한국영화는 戰後시대로 …
1972.11.29
5면 사회
[演藝手帖半世紀-映畵界]<25> 목숨건「正義의 進擊」
演藝手帖半世紀映畵界㉕목숨건「正義의 進擊」死境헤매며 從軍製作屍體더미서 찾아낸 무비카메라빈사의 촬영기사 葬禮式준비도 一·四후퇴와 더불어 南으로내려간 영화인들은 저마다카메라를들고 從軍했다。 五一년초 尹逢春이一師團十五聯隊의戰鬪기록을담은「西部戰線」을 완성했고 이어 國防部소속金寬洙가제작한「正義의 進擊」이 발표 되었으며 이듬해 …
1972.11.27
5면 문화
[演藝手帖半世紀-映畵界]<24> 避難시절의 映畵人들
演藝手帖半世紀映畵界㉔避難시절의 映畵人들대부분 서울서『九·二八』맞아政訓계통 職場얻어 점차安定떡장수·부두勞務로 모진苦生 배우출신의 李慶善감독이「흥부와 놀부」를 발표하고 李圭煥 감독이 문화영화「아름다운 서울」의 촬영을 끝마쳤을때六·二五가 터졌다。 때마침 木浦에서 로케이숀중이던 韓瀅模감독과 스탭 캐스트들만이 자동적인피난…
1972.11.24
5면 사회
[演藝手帖半世紀-映畵界]<23> 「藝術영화의 開幕」
演藝手帖半世紀映畵界㉓「藝術영화의開幕」免税특전 누리며 藝術性추구卜惠淑씨 앞세워 政府지원요청趙美鈴·崔銀姫등 新人대거등장 영화인들이 要路에 어떤陳情을할때면 의례 人氣女優를앞세우기 마련이다。 四八년八월尹逢春 李圭煥등이初代국무총리 李範奭장군을 찾아가 영화에 대한政府의支援을 요청했을때도 그러했다。 當代의 人氣女優 卜惠淑을앞장…
1972.11.23
5면 문화
[演藝手帖半世紀-映畵界]<22> 「光復영화時代」
演藝手帖半世紀映畵界㉒「光復영화時代」10여개映畵社가 한꺼번에 쏟아져解放의환희넘친 作品 줄이어製作 日帝에 맞선 한국영화인들、위로부터 尹逢春 李圭煥 全昌根씨。 八·一五직후의 한국사회는「街頭의 時代」로 묘사될수있다。 저마다 거리로 뛰쳐나와 뭔가 의미있는 작업에몸을 던지려했었기 때문이다。이같은 상황에서 영화인들이라고 …
1972.11.22
5면 사회
[演藝手帖半世紀-映畵界]<21> 日人도 감탄한「성황당」
演藝手帖半世紀映畵界㉑日人도 감탄한「성황당」韓國최초의 本格的인文藝物〃製作費 적게든秀作〃격찬촬영기사補에 特別보너스 三九年 日本「아사히」新聞의 演藝記者「쓰무라」(津村秀夫)가 Q라는 이니셜로 映畵評을써서 일본영화계를 주름잡던 무렵 方漢駿감독의 한국영화「城隍堂」이 일본에서개봉되었다。 「城隍堂」은 鄭飛石원작의소설을 영화화한것으로말…
1972.11.21
5면 문화
[演芸수첩半世纪-映畵界]<20> 「韓國映畵의 空白期」
演芸수첩半世纪映畵界⑳「韓國映畵의 空白期」총알받이「國策映畵」쏟아져리얼리즘은 作家의 최후抵抗線日語작품「授業料」는 反應좋아 三九년 密輸團의 세계를그린「國境」으로 데뷰한 崔寅奎은 四○년에 문제작「授業料」를발표、커다란 반응을불러 일으켰다。 집안이 가난해서 수업료를 내지못하는 소년의 이야기를 다룬것으로 리얼하면서도 차분한 …
1972.11.20
5면 문화
[演芸수첩半世紀-映畵界]<19> 「朝鮮映畵」의 日没
演芸수첩半世紀映畵界⑲「朝鮮映畵」의 日没〃日帝 나팔수되느니보다 은둔〃우리말 토키나오자 神經곤두製作許可·生필름配給 중단도 토키영화가 나오면서부터 日帝는 조선영화에 더욱 신경을 곤두세웠다。 内鮮一體니 國語使用이니해서 朝鮮語文을말살하려는 판국에 조선말을 하는 영화가 쏟아져나오니 그럴만도 하다。 中日戰爭이가열되고 二…
1972.11.18
5면 문화
[演芸수첩半世纪-映畵界]<18> 「逆境속의 낭만時代」
演芸수첩半世纪映畵界⑱「逆境속의 낭만時代」機材·技法허술했지만 執念대단리어카에 카메라싣고 끌고가며 촬영도〃호떡·죽먹고 굶기일쑤〃 배우를 그대로 세워둔채 카메라조작만으로 확 끌어당겨찍을수도 있고 쑥 뒤로 물러가게도 찍을수있는 줌렌즈와 레일(트랙)을따라 자유자재로 움직일수 있는 移動카메라가 갖춰진 오늘날의 영화촬영…
1972.11.17
5면 과학
[演芸수첩半世紀-映畵界]<18> 最初의 映畵祭
演芸수첩半世紀映畵界⑱最初의 映畵祭世界의 名監督 韓國에 찾아와映畵人들 서로앞장 환영법석女優 넘겨보다 멀쑥해지기도 一九三六년 九월、한국영화계에귀한 손님이 찾아왔다。 유태系 미국감독「요세프 폰 쉬테른베르크」가 한국에 들른것이다。 그는 이미 토키작품으로「모로코」를발표해서 명성을 굳혔고「上海特急」「間諜二七號」「스페인 狂…
1972.11.16
5면 문화
[演芸수첩半世紀-映畵界]<17> 첫 發聲映畵 春香傳
演芸수첩半世紀映畵界⑰첫 發聲映畵 春香傳入場料비싸도 連日 초만원映畵兄弟 李弼雨·明雨촬영감독「아리랑」과함께 長期興行 기록 三五년 十월四일오후 상영시간이 채되기도전에 단성社앞길은 인파로 붐볐다。 「말하는 활동사진」그것도「春香傳」이 개봉되는 것이다。 그무렵미국「워너」社제작의 디스크式 토키 영화「러브 퍼레이드」를 비롯…
1972.11.15
5면 문화
[演芸수첩半世纪-映畵界]〈16〉 羅雲奎의 마지막 모습
演芸수첩半世纪映畵界⑯羅雲奎의 마지막 모습폐病三期 注射맞고 五夢女제작典當잡힌금비녀 찾아달라부탁〃내죽음알면 大邱애는 울걸세〃 문란한 여성관계와 슬럼프에 빠진 영화활동으로 팬들의 실망을 사오던 羅雲奎는 무질서했던 수년간의 생활을청산하고 再起를 꿈꿨다。 三六년 그가「민족계몽」을주제로한「荒蕪地」를 탈고했을때만해도 영화…
1972.11.14
5면 문화
[演芸수첩半世紀-映畵界]<15> 개털수염 단「그후의 李道令」
演芸수첩半世紀映畵界⑮개털수염 단「그후의 李道令」수염못구해 개털 아교로붙여15日새急造했으나興行엔成功拙作에 自責、눈물로 필름찢어 한국최초의 토키영화(發聲映畵)「春香傳」이 나오던 三五년 무렵、영화인들의 생활은 언제나처럼 말이 아니었다。 「우미館」옆 팥죽집에서 죽 한사발로 아침을 때우고나면 점심은 건너뛰는게 보통이고 …
1972.11.13
5면 사회
[演芸수첩半世纪-映畵界]<14> 「讃映會 사건」
演芸수첩半世纪映畵界⑭「讃映會 사건」고십記事導火로 映畵人騷動活字版엎고輪轉機에 모래뿌려新聞社찾아가 記者끌어내뭇매 얼마전 某인기여우와 어느演藝기자사이에 고소사건이벌어져 작으마한 파문을 일으킨일도있지만 영화인과 기자들간의 마찰은상당히 오랜역사를 지니고있다。 三一년除夜에벌어진 저유명한「讃映會사건」이 韓國映畵史에기록되어있기때문이…
1972.11.11
5면 문화
[演芸수첩半世紀-映畵界]<13> 벼락치기로 배우된 尹逢春
演芸수첩半世紀映畵界⑬벼락치기로배우된 尹逢春電報받고 上京다음날 바로出演熱演執念 動作너무커 앵글밖으로春史는 日人製作品에 惡役맡아 失望주기도好演턱 졸림에 양복잡혀 술 사줘 獄苦를 치르고난뒤 고향 회령에서 教會일을 보고있던 尹逢春은 어느날 羅雲奎로부터「즉시 上京하라」는 전보를받았다。 二七년四월초의 일이다。 春史는 …
1972.11.10
5면 사회
[演芸수첩半世紀-映畵界]<12> 「임자없는 나룻배」
演芸수첩半世紀映畵界⑫「임자없는 나룻배」가슴뭉클한 感動的 라스트신辯士들 日警을〃검둥이〃라고 불러日本에서도 차분한 리얼리즘이라 好評도끼 휘두르는 신 3百 피트나 잘려 李慶孫과 全昌根이 上海에서「揚子江」을 만들던 무렵감독을 꿈꾸던 또한사람의韓國청년이 上海에있었다。 大邱출신의 李圭煥。 그는 日本으로 건너가「교또」에…
1972.11.09
5면 사회
[演芸수첩半世纪-映畵界]<11> 題名바뀌 선보인「사랑을 찾아서」
演芸수첩半世纪映畵界⑪題名바뀌 선보인「사랑을 찾아서」失郷民의 처절한事縁담아〃왜 豆滿江 들먹이나〃改名명령〃門前옥답어디가고 쪽박신세가 웬말이냐〃절규「가위질」메우던 辯士 곤욕치러 二八년 羅雲奎는 또하나의문제작을 내놓았다。 한민족의流浪을 그린「豆滿江을 건너서」가 그것이다。 『제작비 걱정을 않게 된春史는 스탭과 캐스트를 …
1972.11.08
5면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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