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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1984.02.27 ~ 1984.10.12
법에 사는 사람들
동아일보는 법을 지키고 바로세우기 위해 애쓴 법조인 17명의 발자취를 그들의 일화를 중심으로 살펴보고 바람직한 법조인상을 조감해보는 시리즈를 연재했다. 본 시리즈는 1984년 한국기자협회가 선정한 ‘한국기자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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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에 사는 사람들]〈93〉 金炳魯씨〈初代大法院長〉 (12) 「큰빛」政街에밝히고…
法에 사는 사람들<93>「큰빛」政街에밝히고…金炳魯 씨<初代大法院長>⑫5·16후엔 軍政반대·野黨통합운동으로 바쁜나날大統領 單一候補못낸 恨안고 永眠 해방직후 잠시 정계에 투신했던街人은 말년에 다시 정치일선에 나섰다。 4·19직후인 60년5월 재야법조인 중심으로 조직된 自由法曹團의 대표가 되면서 본격적인 정치활동…
1984.10.12
5면 사회
[法에 사는 사람들]〈92〉 金炳魯씨〈初代大法院長〉 (11) 대쪽같은「批判」
法에 사는 사람들<92>대쪽같은「批判」金炳魯 씨<初代大法院長>⑪「法官회의 안거치고 大法院長임명」案에 완강한 저항〃四捨五入改憲 이해할수없다〃공박 街人은 대법원장으로 있을때 사법부일에만 신경을 쓴것이 아니라국사전반에 관심을 보였다。 그는 대법원장으로서 말할수있는성질이 아닌 정치문제에 대해서까지 기자들에게 자신의…
1984.10.11
5면 정치
[法에 사는 사람들]〈91〉 金炳魯씨〈初代大法院長〉 (10) 行政府와의「對立」
法에 사는 사람들<91>行政府와의「對立」金炳魯 씨<初代大法院長>⑩李대통령「法官의 自由權제한」改憲論들먹이자〃三權分立으로 상호견제〃反駁회견 街人이 대법원장으로 있던 54년11월 尹在旭국회의원의 횡령사건과陳憲植전내무부장관의 보안법위반사건등 굵직한 사건이 1、2심에서잇달아 무죄가 선고되자 검찰을 신경을 곤두세웠고 사회의 …
1984.10.05
5면 정치
[法에 사는 사람들]〈90〉 金炳魯씨〈初代大法院長〉 (9) 李大統領과의「마찰」
法에 사는 사람들<90>李大統領과의「마찰」金炳魯 씨<初代大法院長>⑨初代大法院長에 취임하기前부터「불편한關係」「司法權독립」견해달라 잦은對立 金炳魯대법원장과 李承晩대통령은 서로 존경했으나 원만한 관계는 아니었다。 특히 사법권독립문제에는 견해가 달라 가끔 부닥쳤다。 李대통령은 街人을 초대 대법원장으로 앉힐때 여러모로…
1984.10.04
5면 문화
[法에 사는 사람들]〈89〉 金炳魯씨〈初代大法院長〉 (8) 「淸廉」을 信條로
法에 사는 사람들<89>「淸廉」을 信條로金炳魯 씨<初代大法院長>⑧피난시절에도〃집사람을 官用車에 태울순없다〃「法官의 참다운 良心」을 生命같이 街人은 公私구분이 엄격했다。6·25때 街人은 10여명의 가족중 장손 金元圭씨만 태운채 釜山피난길에 올랐다。 『정부가 피난다니는 마당에 집사람을 관용차에 태우고 다닐수 …
1984.10.02
5면 문화
[法에 사는 사람들]〈88〉 金炳魯씨〈初代大法院長〉 (7) 度量넓은「家父長」
法에 사는 사람들<88>度量넓은「家父長」金炳魯 씨<初代大法院長>⑦所信있는 裁判하도록 法官들 격려로 勇氣북돋워「司法府의 防波堤」훌륭히 수행 街人은 대법원장으로 있을때 나랏돈을 자기재산보다 더 아껴썼다。 그는 사법부가 꼭 필요한 예산만요구하도록 지시했고 빠듯이 짜여진 예산요구안중에서도 급하지 않다고 판단되…
1984.10.01
9면 경제
[法에 사는 사람들]〈87〉 金炳魯씨〈初代大法院長〉 (6) 博學多識의「非凡」
法에 사는 사람들<87>博學多識의「非凡」金炳魯 씨<初代大法院長>⑥法理論을 비롯 政治·經濟·國際관계에까지 精通「法官으로서의誠實한 자세」垂範 街人은 박학다식하고 기억력이 좋았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대법원장 정년퇴임을 앞두고 있을무렵 『한나라의 대법원장이되려면 법률지식과 판단능력이 보통은 넘어야하고 글도 …
1984.09.27
5면 정치
[法에 사는 사람들]〈86〉 金炳魯씨〈初代大法院長〉 (5) 「保守」와「進步」의 調和
法에 사는 사람들<86>「保守」와「進步」의 調和金炳魯 씨<初代大法院長>⑤姦通罪폐지·祖上祭祀안지내기등 前進的주장도「틀」에 매이지 않으며「合理」추구 街人 金炳魯씨는 근엄하고 보수적이라는게 일반적인 평이다。 그러나 街人은 진보적이고 혁신적인 일면을 보여주기도했고 때로는 파격적인 행동을 하기도했다。 「神技의 道術」연…
1984.09.25
5면 정치
[法에 사는 사람들]〈85〉 金炳魯씨〈初代大法院長〉 (4) 剛直과 氣概의「불꽃」
法에 사는 사람들<85>剛直과 氣概의「불꽃」金炳魯 씨<初代大法院長>④「反民特委」활동으로 李大統領과 잦은 마찰〃「親日」처단은 民族正氣세우는일〃 해방이 되자 街人 金炳魯씨는 잠시 정계에 참여했다。 韓民黨 창당과정에 뛰어든 街人은 45년9월6일 한민당발기인회에참석한데 이어 그달10일 결당대회에서는 의장으로 회의…
1984.09.24
5면 정치
[法에 사는 사람들]〈84〉 金炳魯씨〈初代大法院長〉 (3) 抗日鬪爭에 獻身
法에 사는 사람들<84>抗日鬪爭에 獻身金炳魯 씨<初代大法院長>③刑事辯護共同研究會등 세워 愛國투사 무료변론左·右翼넘어서 폭넓은 民族運動 街人 金炳魯씨의 항일투쟁경력은 해방후 법조인들에 대한「면죄부」의 구실을 했다。 일제강점기에 한국인으로 판 검사를 지낸 사람들이 해방후 대부분친일파로 몰리지않고 그대로 법…
1984.09.20
5면 정치
[法에 사는 사람들]〈83〉 金炳魯씨〈初代大法院長〉 (2) 「司法權守護」의 信念
法에 사는 사람들<83>「司法權守護」의 信念金炳魯씨<初代大法院長>②〃司法府 威信손상됐다〃辯協의 大法院長 引責요구에〃良心어긴 裁判한적없다〃재천명 56년 2월24일 대한변협은 긴급임시총회를 소집했다。 임시총회는 李承晩대통령이 4일전 국회에 보낸 메시지중 사법부에관한 내용을 검토해야겠다는 구실로 소집됐지만 실제로는…
1984.09.18
5면 정치
[法에 사는 사람들]〈82〉 金炳魯씨〈初代大法院長〉 (1) 한국司法府의 礎石
法에 사는 사람들<82>한국司法府의 礎石金炳魯 씨<初代大法院長>①李大統領 56년國會메시지서「司法府공격」으로 波瀾「裁判의 獨立性」주장 과감히 맞서 街人 金炳魯。 초대대법원장을 지낸 그는「법조인의 師表」요「한국사법부의 礎石」이다。 街人은 대법원장재임 9년3개월동안 사법부밖에서 오는 간섭과 압력을 뿌리치며사법권독립의…
1984.09.17
5면 정치
[法에 사는 사람들]<81> 安秉瓚씨<前 변호사> (3) 波瀾의「抗日生涯」
法에 사는 사람들<81>波瀾의「抗日生涯」安秉瓚 씨<前 변호사>③滿洲서「大韓青年團연합회」만들어 獨立鬪爭 앞장怪漢의 습격받아「불꽃一生」마쳐 安변호사는 3·1운동후 가산을 정리、滿洲로 올라가 安東縣에서 대한독립청년단을 조직했다。 이해9월 본격적인 활동을 벌여보기도전에 일경에 붙잡혀 平壤으로 압송돼 1심에서 징역1년…
1984.09.14
5면 경제
[法에 사는 사람들]<80> 安秉瓚씨<前 변호사> (2) 愛國憂世의「끓는 피」
法에 사는 사람들<80>愛國憂世의「끓는 피」安秉瓚 씨<前 변호사>②〃乙巳五賊은 誅殺마땅〃上疏文올렸다 濟州島로「流配」李完用찌른 李在明義士 辯論도 「엎드려 아뢰나니 臣은 나이 어리고 우매하나 아비의 덕으로 작은벼슬을 했읍니다。 法部의 九品 主事인 臣이 감히 폐하의 앞에 나아가가슴에 품은 뜻을 털어놓는 행…
1984.09.13
5면 정치
[法에 사는 사람들]<79> 安秉瓚씨<前 변호사> (1) 激浪시대의「法曹界元祖」
法에 사는 사람들<79>激浪시대의「法曹界元祖」安秉瓚 씨<前 변호사>①伊藤博文쓰러뜨린 安重根의사 辯論하러 旅順에選任거절당하자「피를 吐한 抗議」 1909년10월26일。 한국침략의 원흉「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태운 특별열차가「하얼삔」역에 도착했다。 열차에서 내린「이토 히로부미」가「러시아」의장대를 사열하고 막 돌아…
1984.09.11
5면 문화
[法에 사는 사람들]<78> 方順元씨<변호사·70세> (7) 大學講壇서 13년
法에 사는 사람들<78>大學講壇서 13년方順元 씨<변호사·70세>⑦49년 判事그만두고 辯護士하며 時間講師로「출발」가난속에서도 良心지킨「平生」 溫山 方順元씨는 판사와 변호사를 지내다가 대학교수로 10여년을봉직한 독특한 경력을 갖고있는 법조인이다。 그가 교수로 재직한 기간은 48년부터 61년 대법원판사로 임명…
1984.09.10
5면 정치
[法에 사는 사람들]<77> 方順元씨<변호사·70세> (6) 再任命탈락의「維新태풍」
法에 사는 사람들<77>再任命탈락의「維新태풍」方順元 씨<변호사·70세>⑥國家賠償法 違憲판결직후「司法波動」의 긴회오리12년간의 大法判事생활 終止符 국가배상법에 대한 대법원의 위헌판결이 내려진 71년7월말、법조계안팎에는 심상치않은 소문이 떠돌고 있었다。 사법부의 위헌판결을응징하려는 행정부의「공작」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
1984.09.07
5면 정치
[法에 사는 사람들]<76> 方順元씨<변호사·70세> (5) 國家賠償法 違憲판결
法에 사는 사람들<76>國家賠償法 違憲판결方順元 씨<변호사·70세>⑤「軍人은 年金외 損賠訴청구못한다」단서조항이 불씨違憲論편 大法判事9명「된서리」 68년경 운전병잘못으로 추락사한朴모상병과 비슷한 사건으로『국가가 유족에게 손해배상하라』는 국가배상사건은 하나둘이 아니었다。그것은 당시 派越장병의 사상자가 늘고있었던 추이…
1984.09.05
5면 정치
[法에 사는 사람들]<75> 方順元씨<변호사·70세> (4) 「대쪽」같은 大法判事
法에 사는 사람들<75>「대쪽」같은 大法判事方順元 씨<변호사·70세>④故鄕후배利害걸린 事件맡게되자 同僚판사에게 넘겨〃法官이란 혼자서 沙漠을 걷는것〃 1961년9월 서울대법대교수로 있던 方順元씨는 법대 연구실까지 찾아온 趙鎭滿대법원장의 권유로 대법원판사가 됐다。 대법원판사시절 그는 고향 天安의 친지 李모씨…
1984.09.04
9면 경제
[法에 사는 사람들]<74> 方順元씨<변호사·70세> (3) 손수레끄는 判事
法에 사는 사람들<74>손수레끄는 判事方順元 씨<변호사·70세>③「드넓은 平原의 썩은 밀알」되게 스스로를 채찍질解放되자 罪人자처「良心의 고뇌」 溫山 方順元씨의 이력에는 거창하고 정치적 의미의「투쟁경력」이나타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 자신즐겨쓰는 말처럼「바닷가의 이름없는 조개껍질」「드넓은 평원의 썩은 밀알」…
1984.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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