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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리 누나와 캐럴의 추억

Posted December. 20, 2019 07:41,   

Updated December. 20, 2019 0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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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째 올해는 연말 분위기가 참 안 난다.”

 얼마 전 송년회를 마치고 나오는 길, A가 말했다. 이제는 매년 누군가 하는 말이 됐다.

 “올해는 연말 분위기가 참 안 난다.”

 까만 밤의 캔버스 위로 내뿜은 A의 뽀얀 입김은 동화책 속 말 풍선이 됐다. 이내 거기에 추억이 방울방울 매달리기 시작했다. 물론 내 머릿속 상상에서다.

 상상과 추억 속 연말 거리에는 늘 캐럴이 울려 퍼진다. 불법 복제 카세트테이프를 팔던 노점, 앙증맞은 크리스마스카드를 팔던 문구점, 커다란 교차로에 있는 대형 백화점의 입구에 스피커가 놓여 있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징글벨’ ‘기쁘다 구주 오셨네’…. 꼭 이런 고전적 캐럴이 아닐 때도 있다. 미스터 투의 ‘하얀 겨울’이나 강수지의 ‘혼자만의 겨울’ 같은 노래가 하얀 눈밭이 된 거리를 배경으로…. 그냥 들리지 않는다. 울린다. 퍼진다. 또는 울려 퍼진다. 이게 맞는 표현, 적절한 묘사 같다. 적어도 캐럴에 대해서는….

 #1. 애당초 한국에서 캐럴의 황금기는 1980년대였다. ‘흰 눈 사이로 썰매를 타고 달릴까, 말까’를 한참 고민하는 영구 캐럴은 50만 장 넘게 팔렸다. 당대의 인기 개그 코너는 곧 연말이면 캐럴로 경쟁했다. 김미화 김한국의 ‘쓰리랑 부부 캐럴’, ‘네로 25시’의 최양락 임미숙 캐럴이 성탄과 코미디를 청각적으로 결합했다.

 #2. 캐럴의 역사는 4세기 로마에서 시작했다. 클래식 음악의 시대를 지나며 각종 캐럴이 쏟아졌다. 교회와 성당에서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일에 걸맞은 노래는 한 해도 빠짐없이 필요했던 것이다. 근대 이후에는 19세기 미국 작곡가 제임스 피어폰트가 만든 ‘징글벨’이 캐럴 세계 ‘왕좌의 게임’을 100년 이상 좌지우지했다. 캐럴은 가정에서, 일터에서, 눈 내리는 전장에서 울리고 퍼졌다.

 #3. 그러다 마침내 그것이 태어났다. 1994년 11월 1일. 미국 가수 머라이어 캐리가 캐럴 앨범 ‘Merry Christmas’를 발표한 날. 캐럴의 세계, 캐럴의 역사는 뒤집어진다. 음반은 지금껏 전 세계에서 1500만 장 이상 팔렸다.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캐럴 음반. 특히나 수록곡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가 ‘물건’이었다. 가수인 캐리와 작곡가 월터 아파나시에프가 함께 만든 이 곡은 수백 년간 불린 캐럴들을 하나둘 물리치고 감히 인간 캐럴 역사의 대명사가 됐다.

 #4. ‘요즘 연말 분위기가 참 안 난다’는 말의 절반쯤엔 ‘요즘 캐럴 소리가 참 안 들린다’가 묻어 있다. 1990년대에 워크맨이 급속도로 보급됐고, 2000년대에 MP3 포맷과 인터넷 파일 공유, 음원 서비스가 등장하며 음악 감상은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이 됐다. 외출할 때 지갑은 놓고 와도 ‘콩나물(무선 이어폰)’은 챙겨 나온다고 할 정도다. 거리의 음악은 힘을 잃었다.

 #5. 오죽하면 어제 이런 소식도 나왔다. 한 이동통신사가 음원서비스 업체와 손잡고 전국의 소상공인에게 캐럴이 포함된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를 연말연시 한 달간 무료로 지원하기로 했다. 서울 중구 명동의 소규모 매장에 블루투스 스피커를 제공하고 서울 주요 상권을 도는 ‘캐럴 트럭’도 운영하기로 했다.

 #6. 캐리의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가 21일자 빌보드 싱글차트 정상에 올랐다. 놀랍게도 발표한 지 25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이 신생 캐럴은 해가 갈수록 영토를 넓혔다. 2003년 영화 ‘러브 액츄얼리’에 들어가 불씨가 한 차례 더 커졌다. 그 뒤로 매년 각국 차트 최상위권에 12월만 되면 유령처럼 솟아올랐다. 2017년 12월, 빌보드 싱글차트 9위까지 치고 올랐다. 작년 크리스마스이브에는 음원서비스 ‘스포티파이’에서 역대 24시간 동안 가장 많이 재생된 곡이 됐다. 하루 동안 1080만 회 재생.

 #7. 1994년 겨울, ‘캐리 누나’는 안 그래도 최강이었다. 1993년 앨범 ‘Music Box’가 명곡 ‘Hero’를 앞세워 대성공을 거둔 참. 캐럴 앨범은 한물간 가수의 수금용 제품이라고 생각한 캐리는 음반사 측의 제작 권유를 처음엔 고사했다고 한다. 단순한 ‘재탕’ 대신, 누나는 3곡의 창작곡을 넣기로 했다. 그중 하나가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였다. 캐리 누나의 시대는 가도 캐럴의 시대는 가지 않았다. 소망이 이뤄진다는 계절이다. 




임희윤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