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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작문교실 - 조민희 (26)


우리 엄마에 대해서 써 보라구?

반 페이지 정도로?

그건 정말 바보 같은 얘기다. 어떤 애도 자기 엄마에 대해 반 페이지 짜리 짤막한 글을 쓸 수는 없다. 일단 얘기를 하기 시작하면 공책 한 권을 다 채우고도 철철 넘치게 되어 있는 게 엄마라는 사람들에 관한 얘기이다. 게다가 얘기는 아주 어지럽고 복잡해질 것이 틀림없다. 도대체 무엇에서부터 시작해서 무엇으로 끝을 내야 할지를 모르겠으니까. 우리 엄마가 작년 겨울 내내 매달렸었던 손뜨개 스웨터 정도라면 반 페이지 이내로 어떻게 해 볼 수도 있겠지만 엄마라는 사람에 대해서 쓰라고 한다면 나는 자신 없다고 말하고 싶다. 나뿐만 아니라 어떤 애도 그런 재주는 없다고 생각한다. 도대체 선생님들이란 뭘 생각하고 있는 걸까? 그쯤은 뻔히 알고 있을 텐데도 자꾸만 안 되는 일을 시키니 말이다.

작년 여름 방학 작문교실이 완전한 실패로 끝났던 것도 알고 보면, 절반은 내 탓이지만, 절반은 선생님 탓이다. 선생님은 걸핏하면 할아버지 댁 과수원이라든지 고마우신 의사 선생님, 또는 대통령 할아버지께 보내는 편지 따윌 쓰게 했다. 과수원이나 병원 같은 것에 대해 할 말이 잔뜩 쌓인 애들한테는 재미있는 일이었겠지만 과수원이라고는 한 번 자세히 들여다 본 적도 없는 나, 대통령 할아버지께는 그저 모든 걸 잘 부탁드린다는 말밖엔 할 말이 별로 없는 나한테는 여간 고생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 식으로 잔뜩 고생을 시켜놓고도 선생님은 야비하게시리 어느 틈에 벌써 엄마를 만나 내가 `적응에 약간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 같다'고 일러바쳤다. 차라리, 감당 못할 말썽꾸러기라든지 수업 내용을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꼴등생이라든지, 그런 식으로 말했다면 그렇게까지 기분을 잡치지는 않았을 거다. 그건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엄마에게 설명할 수도 있고 아니면 정반대로 그래서 어쩌란 말이냐는 식으로 뻔뻔하게 굴 수도 있다. 그런데 `적응에 약간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는 그 말만큼은 나를 꼼짝달싹도 못하게 하는 거다. 화를 내며, 나는 적응을 잘 하고 있다고 우기는 것도 웃기는 일이다. 그래, 나는 완전한 구제불능이다, 그러니 이제 날 어쩔거냐는 식으로 배짱을 부릴 수도 없다. 이 `적응' 문제에 관한 한 나는 늘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하겠더란 얘기다. 어른들, 특히 선생님들은 아이들을 꼼짝 못하게 만드는 방법을 수백 가지도 더 알고 있다. 나는 그 점이 끔찍했던 거다. 그래서 작문교실을 그만둬 버렸다. 차라리 글씨를 쓸 줄 몰라 동정을 받는 편이 낫지,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아이' 소리는 다시 듣기 싫었기 때문이다.

그건 그렇고,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그 말을 엄마는 무슨 뜻으로 알아들었을까? 아마 내가 맞춤법도 엉망이고 글씨를 쓸 때에 가지런히 줄을 맞추는 데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던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 생일카드 같은 걸 쓸 때에 철자법을 다 틀리는 바람에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웃음거리가 되는, 그런 어른으로 자라날까봐 두려웠던 모양이다. 올 여름 방학이 시작될 무렵 엄마는 내게 둘 중 하나를 선택하게 했다. 이주일 짜리 여름방학 작문 교실을 다시 다니든지 아니면 롤러 블레이드를 엄마에게 영원히 맡겨버리든지.

하는 수 없이, 나는 이렇게 작문교실에 나와 있다.

6학년 5반 이은아, 라고 쓴 뒤로는 한 자도 못 나가고 있지만.........

그런 엄마에 대해 굳이 뭐든 써야 한다면 나 역시 엄마에 대해 많이 걱정하고 있다고 쓰고 싶다. 내 생각에 엄마는 TV를 너무 많이 본다. 가게에 나가 있는 동안은 보지 않지만 아침저녁으로 집에 있을 땐 언제나 TV를 틀어놓고 산다. 낮 시간에는 볼 수 없으니까 부지런히 벌충을 해 두어야 한다는 식으로, 아주 죽기 살기다. 설거지를 할 때에도, 베란다에 나가서 화분에 물을 줄 때에도, 샤워를 할 때에도 줄곧 TV 소리를 듣고 있다. 시험삼아 볼륨을 줄여 보면 엄마는 대번에 그걸 알아차리고 나, 그거 듣고 있어, 라고 소리친다. 그 놈의 TV 때문에 엄마는 잠자는 습관도 엉망이다. 불을 끄고 똑바로 누워 자는 법이 없다. 자, 이젠 잘 시간이니까, 하고 잠을 청하는 것이 아니라 잠이라는 놈이 제 편에서 덮쳐 와 줄 때까지 기다리는 거다. TV 유선 방송을 보면서 말이다. 자다가 깨어 보면 이건 꼭 타임 머신을 탄 것 같다. 어떨 땐 마마, 통촉하옵소서, 마마, 죽여주옵소서, 하는 사극이고 다시 잠들었다가 깨어보면 이번엔 장화 신은 총잡이들이 우스꽝스런 모자를 쓴 멕시코 산적들에게 쫓기느라 말발굽 소리가 요란하다. 탕, 탕, 총도 쏘고 말이다.

하지만 여우같은 후궁들도 멕시코 산적들도 엄마에게 큰 해를 끼치고 있지는 않다. 왜냐하면 엄마는 그런 걸 건성건성 보아 넘기기 때문이다. 정작 해를 끼치고 있는 건 엄마가 고정적으로, 열심히 보고 있는 `행복의 채널'이라는 토크쇼이다.

매일 아침 여덟 시부터 두 시간씩은 행복의 채널이다. 1부는 괜찮다. 1부엔 탤런트나 가수나 뭐, 그런 유명한 사람들이 나와서 `열애설'이나 `위기설,' 또는 뭐래더라, `재결합설'이라나? 그런 걸 `극구 부인'하느라 야단들인데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문제는 2부이다. 365일 건강비결이나 젊게 사는 주부를 위한 패션제안 따위의 시시콜콜한 얘깃거리가 뚝 떨어지고 나면 여름방학 특집으로 자녀교육상담이라는 걸 들고 나온다. 그런데 그게 나한테는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다. 이런저런 전문가 선생님들이 엄마에게 쓸데없는 걱정거리만 잔뜩 심어주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 사람들은 심각한 얼굴로 `우리 아이들은 지금 위험한 한 시기를 지나고 있다'고 몇 번 씩 강조한다. `아이들은 지금 감당하기 어려운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자녀도 예외일 순 없습니다' 라고 잔뜩 겁을 준다. 그러면 이번엔 또 부리나케 전화를 거는 아줌마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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