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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음악에 있어 신곡의 전개 방향과 그 반성- 전지영


3. 국악계의 창작음악 현황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우선 작금의 신곡들의 창작현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내용적 측면에서 최근 신곡들의 공통점을 한마디로 간추린다면 경향성의 배제와 순수예술 지향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해방 이후 한국 문화예술계의 전체적인 행보와 궤를 같이하는 것이다. 해방은 되었으나 친일파들이 전혀 축출되지 못한 채 미 군정에 의해 이들이 다시 득세하게 되면서, 그들이 자신들의 과거를 숨기기 위한 수단으로 예술에 있어 '순수'를 지향점으로 삼았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순수한 예술' 만이 일제에 항거했던 예술인들을 물리침과 동시에 자신의 치부를 감추고 현재의 위치를 공고히 해줄 열쇠였기 때문이었다. 가장 앞장서 '황국신민'을 외쳤던 현제명은 어느새 민족주의 음악가로 둔갑하였으며, 해방 이후 한국의 음악을 주도하였던 이들 중 항일 투쟁과 관련된 인물은 거의 없었다. 이는 문학과 미술 등 여타 문화예술계에서도 같은 상황이었으며, 북한의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에 대한 반동과 맞물린 반공 이데올로기에 편승하여 이들은 한결같이 '순수'를 외쳤던 것이다.

그런데 80년대 민주화 과정을 거치면서 지식인들의 새로운 각성과 함께 기존의 흐름에 대한 반성이 서서히 일기 시작한다. 소위 노동문학, 민중미술의 등장과 함께 음악에서도 민족음악에 대한 논의가 일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민족음악에 대한 논의가 처음 시작된 것은 국악계가 아니라 양악계였으며, 현재까지도 학계가 아닌 현장의 국악계에서는 그에 대한 초보적인 논의조차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물리적 해방은 1945년 되었지만, 음악적 해방은 아직 이루지 못한 것이다. 작곡가들이 의도하든 하지 않든, 창작곡들은 한결같이 감상자들에게 정서적 안정과 평안을 주려하지만, 감상자들의 삶 자체를 노래하려 하지는 않는다. 밤의소리, 춘설(황병기 작), 일출, 달무리(정대석 작) 등 고향이나 자연을 노래한 것, 남도환상곡(황병기), 파랑새환상곡(전인평), 산조에 의한 협주곡들 등 전통 가락에 기초한 것, 추당굿(이세환), 신내림(박범훈) 등 무속신앙에 기초한 것, 수리재(정대석)등 세속을 떠난 조용한 삶을 노래한 것 등의 내용이 주류를 이룬다. 어설픈 민족주의에 기반한 곡은 있지만, 분단 반세기에 여전히 대치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민족의 현실과 그런 현실 속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의 모습이나, 미증유의 IMF사태를 맞아 경제적 궁핍에 허덕이는 우리의 이웃을 노래한 곡은 없다.

조선 후기 남도 가락의 판소리가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민족적 예술로 자리잡을 수 있었던 원인은 그것이 지배층에 대한 통렬한 풍자와 함께 우리의 가장 가까운 삶의 모습을 우리 일상의 가락으로 묘사하였기 때문이며, 그렇기에 수많은 명창들의 손을 거쳐 다듬어지고 보편화될 수 있었던 것이다. 산조가 20세기 들어 폭발적으로 발전할 수 었던 것도 그런 판소리 선율의 힘과 함께 많은 명인들의 삶 속에서 우러난 가락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영산회상이 지금처럼 거대한 모음곡으로 발전하고, 여민락과 보허자가 현재와 같은 모습을 갖추는데는, 그것들이 궁중에서 민간으로 유입되면서 민간 예능인들의 손을 거쳤기 때문이며, 민간으로 유입될 수 있었던 것은 임진왜란 이후의 백성들의 새로운 자각과 그로 인한 민간 경제력의 성장이 기반이 된 것이었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의 모습을 떠난 음악, 자신의 생활과 이웃의 모습을 잃어버린 음악이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인지, 발전한다 해도 그것이 주는 의미는 어떤 것이 될 수 있을지는 재고되어야 할 것이다.

형식적 측면에서는 독주곡 외에 대형 관현악곡이 대량으로 창작되고, 아울러 이를 소화할 국악 관현악단들이 다투어 생기는 것은 일견 고무적인 일이다. 가야금으로 창작음악의 새지평을 연 황병기 이후 거문고의 정대석, 해금의 김영재 등이 많은 기악 독주곡들을 작곡하여 전통적 독주 양식인 산조(散調)와 함께 상호 발전을 추동(推動)하고 있으며, 박범훈, 전인평, 이준호 등 많은 역량있는 작곡가들이 수준높은 관현악곡을 양산하여 우리음악 발전에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음악' 혹은 '전통'이라는 측면에서 바라볼 때는 반드시 바람직한 상황이라고는 할 수 없다.

우선 독주곡의 경우에는 악기의 음색을 충분히 살리려는 노력과 함께 새로운 연주법의 모색이 눈에 띈다. 얼마전 국립국악원에서 거문고 창작음악을 중심으로 펼쳐진 거문고역사축제에서도 그런 면은 두드러졌다. 거문고역사축제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신곡들 만으로 짜여진 프로그램의 문제성을 차치하고, 각각의 곡들은 저마다 다양한 새로운 시도들을 하고있었다. 술대로 현을 뜯는 전통적인 연주법외에 술대로 울림통 자체를 두드려 타악의 소리를 내거나, 여러대의 거문고로 제주를 하는 형식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런 다양한 아쉽게도 새로운 시도의 모습보다는 전통의 상실과 단절에서 오는 어색함과 불협화음의 모습이 더 두드러졌으며, 그것은 곧 새로운 시도의 실패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실패는 작곡가의 음악성의 부족 보다는 예술이라는 것에 대한 인식의 부족에 그 원인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우선은 작곡자들의 음악 어법 자체가 전통과 상당한 괴리가 있는 서양적 감성에 의지하고 있는 것이 그 원인의 하나일 것이다. 가장 전통적인 악기를 새로운 시도라는 이름하에 강제적으로 서구식 음악 어법을 접목했을 때, 그 부조화가 나타나는 것은 당연하다. 또다른 원인은 연주법의 모색에 있다. 거문고는 이미 1500년 이상을 우리 민족과 함께 해 온 최고(最古)의 악기이다. 이 말은 거문고가 가장 훌륭한 음을 낼 수 있는 연주법은 이미 1500년을 내려오는 동안 우리 조상들에 의해 남김없이 시도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에 와서 할 수 있는 시도란 거문고 자체의 악기적 속성을 완전히 무시한 시도외에는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술대로 울림통을 쳐 타악기화 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거문고의 새로운 발견이 아니라 오히려 거문고의 속성을 무시하고 거문고에 내재해 있는 민족음악의 역사적 특수성을 팽개친 데서 나오는 어색한 화음에 불과한 것이었다. 이 두가지, 즉 창작자의 음악을 대하는 태도가 이미 국악적이거나 전통적이지 않다는 것과, 새로운 시도 속에서 오히려 두드러지는 우리적인 것의 소실은 비단 거문고 뿐 아니라 모든 창작 독주곡 양식들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모습들이며, 이는 전통의 상실과 새로움의 왜곡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기도 하다.

국악관현악단의 탄생과 아울러 지속적으로 배출되는 합주곡, 또는 관현악곡들에서는 그 문제점이 더욱 심각하다. 또한 여기에 대해서는 창작된 악곡들의 수 만큼이나 문제점들 또한 지속적으로 지적되어 왔다. 가장 큰 문제는 악기의 음색을 충분히 살리지 못하고 악기의 음량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악기편성과, 그 와중에서 전통 합주에서 가장 중시되었으며 동시에 충분히 제 역할을 다해왔던 가야금, 거문고 등 현악기의 소리가 전혀 살아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전통음악의 공연에서는 현악기, 특히 거문고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현악 영산회상은 심지어 거문고회상이라 불리기도 하며, 가곡 연주에서도 현악기가 내는 음의 깊은 맛을 우리는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주 선율은 대금과 피리가 주도하지만, 전체적인 곡의 분위기와 멋은 현악기가 좌우하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창작 관현악곡들에서는 음량이 작은 현악기는 관악이나 타악 소리에 묻혀 장식음 역할밖에 못하고 있으며, 현악의 중요성은 현격히 떨어진다. 오히려 관현악이라기 보다는 '관타악'이라 불러야 할 만큼 현악이 살지 못하고, 영산회상이나 가곡에서 흐르는 거문고의 깊이와 멋은 쉽게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덕분에 영산회상에서 처럼 각 파트의 연주자들의 독자적인 가락이 진행되면서 느껴지는 부조화 속의 교묘한 조화를 신곡에서는 엄두를 못내고 있으며, 지휘자가 컴퓨터가 아닌 이상 일치되지 않은 각 파트의 선율 진행을 모두 지휘할 수도 없을 것이다. 전통음악에서 지휘자의 탄생은 현악이 주는 아취(雅趣)의 퇴색과 맞물리게 되는 결과가 된 것이다.

돌이켜 보면 전통적 합주 양식이 아닌 서구식 관현악단의 체제를 그대로 모방한 현행 국악관현악단의 탄생 자체부터가 문제일 수도 있다. 우리 자체의 합주 양식이 있었고 그 속에서 우리의 악기들은 가장 완벽하게 그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던 만큼, 서구식 체제 속에서 그 멋을 제대로 살릴 수 없다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우리의 물질적, 정신적 근대화가 곧 서구화와 동일시 되면서, 우리의 문화와 정신까지도 지나치게 서구 지향적이 됨과 동시에 우리의 전통이 쇠퇴의 길로 들어섰던 역사적 실패와 마찬가지로, 음악에 있어서도 똑같은 전철을 완벽하게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근대화, 또는 발전이라는 미명으로 가장한 어설픈 서구화가 결국은 우리의 문화 전체를 병들게 하고 서구적 가치관으로 물들게 하는 무서운 결과를 가져왔음을 우리는 보아왔고, 그것은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 전통적 연주 양식이 어설픈 서구화의 접목 속에서 우리의 맛과 멋이 현저히 쇠퇴하고 있는 것이 현재 창작 관현악곡들이 가진 공통적 위험인 것이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우리의 정신적, 물질적 근대화의 길은 구한말 이후 진행되었고 현재에는 오히려 그 반성과 함께 우리의 전통을 찾으려는 노력이 경주되고 있지만, 음악에 있어 근대화, 즉 어설픈 서구식의 모방은 구한말 이후 무려 100년 이상이 지난 현재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며, 그것은 우리 음악인들, 특히 전통음악인들의 정신적 나태함과 자아의식 부족, 가치관의 비정립을 지적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이미 100년 이상 진행된 물질적 서구화와 달리 이제 얼마 진척되지 않은 음악적 서구화는 그만큼 빨리 우리 것으로의 회복이 가능할 것이라는 인식을 동시에 주는 것이기도 하다.

내용과 형식을 막론하고 우리음악의 발전과 우리음악의 서구화는 분명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 우리음악의 서구화는 발전이 아니라 쇠퇴를 가속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가 집박자 대신 지휘자가 등장하고, 연주자들의 마음으로 타던 관현악 양식이 이제는 지휘자의 지휘에 따라 인도되는 피동적 양식으로 변화하였다. 작곡된 곡들이 주는 감성도 우리 것 보다는 서양적인 것에 눈에 띄게 가까워졌다. 작곡자들이 사용하는 음계도 평조나 계면조 보다는 서양음계를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우리가 전통적으로 쓰지 않던 음들의 출현이 잦아지자 국악기의 개량문제가 작금의 주요 논쟁거리가 되었다. 전통적인 양식들이 서구의 것을 무차별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전통과 현재는 엄청난 괴리가 생겼으며, 창작음악들은 날이 갈수록 서구적 음악 어법과 감성을 받아들이는데 집착하고 있는 모습을 띤다. 그렇다면 공연양식, 감성, 음계가 모두 서양 것이고 연주 악기만 국악기인 창작곡의 국적은 어디인가? 거기에 악기까지 개량 하면 그것은 한국음악인가? 신곡들에서는 결국 공연양식, 감성, 음계 뿐 아니라 악기의 음색과 멋 까지도 전통을 살리지 못하고 있는 셈이며, 따라서 적어도 현재의 신곡들의 창작 흐름들은 '전통'의 의미와는 어느정도 유리되어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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