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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오2동사무소     - 박정우(31)


- 등장인물 -

이종근 (남, 47) : 배오2동 예비군 중대 동대장
김미자 (여, 26) : 배오2동사무소 주민등록계원
오경숙 (여, 32) : 배오 2동사무소 호적계원
권영주 (남, 30) : 영화를 만들고 싶어하는 사람
최경희 (여, 30) : 영주의 아내
윤혜미 (여, 26) : 미자의 친구
박희영 (여, 23) : 새로 들어온 주민등록계원
김일병
포장마차 아줌마
창문의 여인
그 외

- 참고사항 -

이 글은 크게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두 편으로 나눠져 있다. 각 편에서 미자와 영주의 나레이션이 연극의 방백역할을 한다. 배경음악은 거의 없으나, 간혹 단순한 멜로디가 사용된다.

1. 동사무소 - 옥상 (해질 무렵)

동사무소 옥상의 국기 게양대. 미자가 태극기, 새마을기, 시기를 내리고 있다. 시커멓게 더러워진 기를 내리고 깨끗한 새 기를 다시 올린다. 미자 너머로 동네 전경이 둘러 보인다.

2. 동사무소 - 사무실

동대본부 상근예비역 유병장이 여기저기 악수하며 인사를 하고 있다. 덕분에 사무소 안은 다소 시끌시끌하다.

유병장 : (미자를 발견하고) 어, 미자씨. 아직 퇴근 안했구나.

미자 : 어머, 정말 제대하는 모양이네.

유병장 : 그럼. 내일부터 말년 휴가고, 갔다 오면 땡이야. 미자씨, 그동안 고마웠어. 그리고, 내 쫄, 그 녀석 말야. 아직 밥값 하려면 멀었거든. 한동안 미자씨가 우리 대빵 좀 도와줘야겠는데.

미자 : (등을 두드리며) 축하해, 아무튼.

3. 동사무소 - 전경

미자가 가방을 메고 나온다. 그녀가 해를 뒤로 하고 걸어 나오는 모습과 해질 무렵의 동네 풍경이 멀찍이서 보인다. 검도복에 죽검을 들고 학원을 향하는 아이들, 야채트럭의 확성기 소리, 츄리닝 바람으로 야채를 고르는 아주머니들, 떡볶이, 오뎅을 파는 포장마차와 가방을 멘 채 먹고 있는 중학생들 등이 보인다.

4. 열차 안

- 화면 전체가 완전히 어두워있다. 단지 지하철 소음과 승객들이 내는 미세한 잡음들만 들린다. 카메라가 포커스 아웃 하면서 까만 화면 위로 지하철 차창에 비친 미자의 얼굴이 나타난다. 처음의 어둠은 터널 속의 어둠이었음을 알 수 있다. 다시 포커스 인 되면서 화면이 완전히 어두워진다. 방금 처럼 소음만 들린다.

- 이어 열차가 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라오면서 햇빛이 튕기듯이 열차 안으로 쏟아진다.

- 정차하는 열차. 출입문이 열리면서 햇빛이 쏟아져 들어온다. 어둡다가 갑자기 밝아져서 그런지 햇빛 속에 부유하는 먼지들이 선명하다.

- 부유하는 먼지들이 클로즈 업 되며 화면을 덮는다.

메인 타이틀 "배오2동사무소"

자막 "PROLOGUE"

5. 도로 (아침)

(M) 경쾌한 피아노 음악

- 군복차림의 동대장이 자전거를 타고 있다. 아파트 단지를 가로지른다. 신도시 아파트 단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전거 전용도로 표시의 파란 줄을 충실히 따른다. 타고 있는 자전거는 학생용인 듯 사람 덩치에 비해 좀 작은 느낌이고, 경쾌한 배경음악과는 거리가 있는 무뚝뚝한 표정이 다소 우스꽝스레 보일 수 있겠다.

나레이션(미자) : 우리 동네 동대장 아저씨예요. 제가 있는 동사무소 2층에 계시죠. 뭐, 꼭 가까이서 일한다고 자주 대하는 건 아니구요, 음, 외삼촌 뻘이나, 아니면 제가 처음 다니던 회사로 치면 부장님 쯤 되겠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죠.

- 아파트 단지를 이웃한 외곽 도로를 달린다. 아침 햇살이 정면에서 눈부시게 한다. 비포장의 좁은 골목에 접어드니 주변에 간간이 상점이나 총포사가 눈에 띈다.

- 동대장의 얼굴이 클로즈 업 된다. 안경 사이로 깊게 팬 주름골이 선명하다. 전투모에 붙어있는 예비역 휘장이 뚜렷이 부각된다.

6. 연병장

파란 하늘이 화면을 채운다. 다소 과장된 파란 빛깔에 듬성듬성 흰 점이 있어 하늘임을 알 수 있다. 카메라가 내려오면서 화면 하단에 보일 듯 말 듯 전투모들의 행렬이 줄을 잇는다. 전부 예비역 휘장이 달린 전투모다. 핸드폰 벨 소리가 울린다. 동대장이 화면으로 들어온다.

동대장 : 이종근입니다. 아, 예, 충성. 지금 부대 들어 왔어요.... 예? 명함 만든 지 얼마나 된다고 그걸 다시 만들어요? (한참 듣고만 있다가) 이메일이요?

7. 동사무소 - 사무실(점심시간)

동대장이 동사무소 안으로 들어선다. 점심시간이지만 여러 가지 민원으로 사람들이 꽤 북적거린다. 동대장이 미자에게 다가선다.

동대장 : 미자씨, 밥도 아직 못먹었겠다.
미자 : 안녕하세요. 교대가 와야 밥을 먹겠네요.
동대장 : 이따가 오후에 좀 한가해지면 나랑 커피 한 잔 하자구.

8. 동사무소 - 2층 인터넷 방 (오후)

키보드 옆에 놓인 종이컵. 동대장과 미자의 말소리가 들린다. 미자가 모니터를 가리키며 설명을 하고 있고, 동대장은 미자 옆에 간이 의자를 가져다 놓고 설명을 듣고 있다.

미자 : 요즘은 공짜로 이메일 주소를 주는 데가 많거든요. 먼저 그 중 한 곳에 들어가서 신청을 하셔요. 요길 눌러서, 이런 화면이 뜨잖아요.
동대장 : 응
미자 : (가입 양식의 성명란에 입력한다) '이'자, '종'자, '근'자, 이렇게 하고.... 동대장님, 아이디를 뭐로 하실래요?
동대장 : 아이디?
미자 : 아이디는요, 그러니까 이름하고 비슷한 거예요. 인터넷 속에서 다른 사람하고 구별하려구 자기 혼자만 쓰는 이름같은 거죠. 보통 자기 이름 영문 이니셜로 많이 하는데요, (ljg, ljk, leejonggeun 등을 입력해 보지만 '이미 존재하는 아이디입니다'란 메시지가 자꾸 뜬다) 벌써 다른 사람들이 쓰고 있네요. 동대장님, 뭐 다른 거 없으세요?
동대장 : (골똘히 생각한다) 가만있어 보자.
미자 : (물끄러미 보며 기다리다가) 아니면, 동대장님이 좋아하시는 거나, 옛 추억이나, 가수나 노래 제목이나, 그런 것 중에서 기억하기 좋은 걸로 해보세요.
동대장 : (멋적은 듯 웃으며) 그럼, (머뭇거리다) 신카나리아 한 번 넣어봐.
미자 : (영어로 shincanaria를 입력하며) 이게 뭐예요?
동대장 : 넌 임마 신카나리아도 모르냐? 가수야. 옛날 옛적의.
미자 : 신카나리아는 안들어가고, 카나리아 하니까 들어가네요. 그런데, 카나리아가 샌가요, 꽃인가요?
동대장 : 글쎄. 아무래도 가수 이름이니 새지 않겠냐?
미자 : 동대장님, 그런데 좀 웃겨요. 동대장님이 카나리아라니......(활짝 웃는다)

9. 동사무소 (며칠 후)

- 동사무소의 분주한 아침. 미자가 컴퓨터로 워드작업을 하고 있다. 비상연락망이라는 제목 하에 직원들 주소와 전화번호가 도표로 나와있고, 여기에 한 열을 더 만들어 그곳에 '이메일'이라는 란을 만들어 넣는다. 카메라는 나레이션에 따라 동사무소 직원들의 모습과 각자의 이메일 아이디가 입력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나레이션 (미자) : 저희 동사무소에서는 여직원들이 유니폼을 입어요. 남자분들도 양복을 입으니까 사실 모든 직원이 유니폼을 입고 있는 셈이죠. 모두 비슷비슷한 옷을 입고 별 말없이 모니터만 보고 있는 것 같지만 남들한테 얘기 안하고 따로 떼놓아 두는 뭔가가 있는 모양이에요. 그런 게 가끔 회식자리나 전화통화 할 때 흘러서 들리면 아, 저 사람은 저런 사람이구나, 저 사람도 저런 면이 있구나, 할 때가 있어요. 저희 부주사님 있죠? 이 분 이메일 아이디가 heelove인데요, 알고 보니 사모님 성함이 영희란거 있죠? 우리 여직원들이 넘어갔다는 거 아닙니까.

- 전화벨이 울린다. 박 서기가 눈은 모니터에 두고 팔을 뻗어 전화기를 찾고 있다. 재산세 담당 허 웅씨는 못들은 척 모니터에 머리를 파묻고 있다.

나레이션 (미자) : 박서기님 아이디는 manbang, 바둑에 나오는 말이라는데 전 잘 모르겠구요, 죽어도 남의 전화는 받아 주지 않는 허 웅 씨는 뭐, zerg(스타 크래프트 게임에 나오는 부족)jjang이래나요.

- 멀리 있던 경숙이 전화를 댕겨 받는다.

경숙 : (큰소리로) 안녕하십니까. 배오2동사무소입니다.
나레이션 (미자) : 경숙 언니는 ssikssik. 언니 어렸을 적에 아버지가 그렇게 부르셨대요. 경숙 언니 집은 딸만 다섯인데, 그래서 좀 사내아이 같이 키우신 모양이에요. 언니는 학교 들어갈 때까지 자기가 아들인 줄 알았대요. 저는요, 하하, 제 아이디는 pyramid예요. 무슨 고고학에 관심이 많냐구요? 그런게 아니라 제가 하체로 갈수록 살이 많다고 동생이 저를 피라밋이라고 불렀거든요. 제 동생은요, 제가 얼굴만 내 놓고 사무실에 앉아 있을 때는 퀸카인데, 목욕탕 가면 코끼리래요.

- 때맞춰 한 할머니가 조용히 미자에게 다가온다.

할머니 : 사람 좀 찾아줘.
미자 : 할머니, 무슨 일이신데요?
할머니 : (종이 쪽지를 내밀며) 우리 막내야.
미자 : 전화 해 보셨어요?
할머니 : 이사갔대. 어디로 갔는지 한번 알아봐.
미자 : 죄송한데요, 할머니. 법이 바뀌어서 이런 거 함부로 못 가르쳐드리게 되었어요.
할머니 : 내 올해로 여든이야. 장지 가기 전에 한 번이라도 봐야 할거 아녀.
미자 : 사정은 잘 알겠는데요...... 제가 윗분들한테 말씀 드려 볼께요.
경숙 : (미자 뒤에서 듣고 있다가 큰소리로) 할머니, 호적 등본 한 통이요? (작은 소리로) 제가 찾아봐 드릴테니, 제가 가르쳐 드렸다고 다른 사람한테는 말씀하지 마셔요.

10. 동사무소 - 옥상

- 옥상 난간에 기대어 커피를 마시고 있는 경숙과 미자.

미자 : 장동건이 고소영이랑 키스를 했어. 그런데 장동건 어깨 너머로......
경숙 : 차인표가 보여.
미자 : 차인표가 보여. 고소영이 달려 나갔지. 차인표가 아무 말 없이 있다가 하는 말이, 이젠 널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경숙 : 널 소유하기로 했다.
미자 : 널 소유하기로 했다. 언니, 어제 이 드라마 봤어? 이젠 도사가 되었구나.
경숙 : 미자야, 내가 드라마 인생만 30년이다.
미자 : 이제MBC 얘기 해봐
경숙 : 그래. 강석우랑 심혜진이 사귀는 걸 시어머니도 아는 거야. 그래서......

- 시간 경과.

미자 : ......우피 골드버그가 어쩔 수 없이 수녀가 된거야
경숙 : 나도 수녀 될 뻔 했는데.
미자 : 말도 안돼. 정말?
경숙 : 어린 마음에 연속극에 나오던 노주현이 너무 멋있는거야. 그런데 엄마한테 물어 보니까 그 아저씨는 벌써 결혼했대. 노주현 아니면 다 싫다, 그럼 결혼 하지말고 수녀가 되자, 그렇게 생각한거지. 그런데 이 나이가 되니까 수녀보다 되기 힘든게 신부더라구.
미자 : 신부? (웃는다) 이렇게 웃긴 여자를 남자들은 안 잡아가나.
경숙 : 하긴 신부든 수녀든 나랑은 어울리지는 않구나.
미자 : (갑자기 크게 웃으며) 언니, 카나리아가 새야, 아니면 꽃이야?
경숙 : 그거? 꽃이잖어. 카나리아꽃, 카나리아꽃...
미자 : 그럼 그게 누구 아이딘줄 알어? 언니도 알고 나도 아는 사람 중에.
경숙 : 영란씨? 남자거야? 허웅씨? 무영씨? 최주사님? 김일병? 도대체 누구야?
미자 : 한 사람 빼먹었잖아. (웃는다)

11. 동대본부 (저녁무렵)

- 예비군들이 여기저기 걸터 앉아 프로야구 중계를 보고 있다. 김일병은 신분증을 확인하고 출석을 체크하느라 분주하다. 문이 열리면서 동대장이 들어 온다. 실내를 한번 쭉 훑는다.

김일병 : 출결체크 했습니다. 67명 참석에 11명 불참입니다.
동대장 : (아랑곳 않고) 여기들 봐요.

- 예비군들이 그제야 자세를 고치고 동대장을 바라본다. 동대장이 위장크림 통을 집어 들고 두 손가락에 듬뿍 찍어다 양 볼에 거침없이 바른다.

동대장 : 거, 왜 위장크림 바르라고 했더니 다들 그냥 있네. 나보다 군번 빠른 사람 있으면 안 발라도 좋아요.

- 예비군들이 궁시렁 대면서도 돌려가면서 바른다. 전부 바른다.

12. 옥상

- 옥상 아래로 이동하는 예비군들의 모습이 보인다. 미자가 멀리 하늘을 본다. 구름이 잔뜩 찌푸렸다. 황사 때문인지 황혼 무렵의 하늘이 부옇다.

- 내려가려다 동사무소 옆집 창문에 사람의 상체가 보인다. 한 여인이 창문을 열어놓고 옷을 벗은 채 아래위를 왕복하고 있다. 마치 여성상위의 정사를 연상케 한다. 얼굴이 빨개진 미자. 그렇지만 옆집 여인은 마치 보란 듯이 미자와 눈을 맞추며 웃고 있다. 꼭 야구장에서 환호하는 관중처럼 위로 뛰어오른다.

13. 탈의실

유니폼을 갈아 입는 여직원들. 밖에서 남자 직원의 목소리가 들린다.

남자직원(목소리) : 미자씨, 지금 등본 뗄 수 있어요?

14. 동사무소

- 옷을 갈아 입은 미자가 자리에 다시 앉는다. 주민등록 등본 신청서를 보니 꽤나 익숙한 이름이다. 신청인은 안경을 쓰고 애를 업고 있는 둥글둥글한 아주머니다. 주민등록 등본을 출력하여 건네준다.

미자 : 혹시 설국 초등학교 나오셨어요?
혜미 : 네.
미자 : 혜미야, 너 나 알겠어?
혜미 : 아, 참 오랜만이다.
미자 : (업힌 아기를 보고) 너 일찍 결혼 했구나. 딸이니?
혜미 : (카운터 아래서 놀고 있는 아이를 안아 올리며) 아들도 있어.

15. 주변 공터 (밤)

- 바람이 꽤 분다. 공터에 먼지바람인지 중국에서 건너온 황사인지 부연 바람이 일고 있다.

- 동대장이 총기를 지급하며 끊임없이 말한다. 간간이 흥분을 하면 지급을 멈추고 이야기에 열을 올리기도 한다. 예비군은 쓸모 없어야 한다, 그게 평화다, 그런데 전쟁이 나면 다 죽는다, 그러니까 오늘 훈련 열심히 해야 된다, 월드컵 공동 개최해서 괜히 일본만 덕을 본다, 등등. 반말로 했다가 말을 높였다가 한다. 김일병은 옆에서 한 족장 길이의 노끈을 나눠 준다.

16. 동대 본부

- 직속 상관 서중령이 담배를 피며 프로야구 중계를 보고 있다. 이어 동대장이 들어온다.

동대장 : 어이구, 오셨어요.
서중령 : 어서 와. 춥지? 아직 음력으로는 3월이니까, (TV를 보고) 안타다, 안타!
- 동대장, 윗주머니에서 담배케이스를 꺼낸다. 가지런히 놓인 것 중 하나를 꺼내 문다
동대장 : 이번엔 예비군들 불참이 꽤 되네요. 날짜를 잘못 잡았나, 이놈의 꽃샘추위는 훈련 날짜만 잡으면 몰려오고. 황사는 이런 날 더 성화네요.
서중령 : 날씨가 춥기도 춥고, 또 저 번 가을, 겨울 사이에 동네 인구가 많이 줄었잖어.
동대장 : 전출이 많았나 봐요.
서중령 : 이봐,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1동하고 2동하고 행정구역을 통합한다는 말이 있더라구. 확실한 건 아니지만. 사람도 줄고, 위에서도 군살 빼라, 인원 줄여라, 자꾸 채근대니까 그런 말이 도는가 봐.
동대장 : (미간을 약간 찌푸린다) 예, 어째 밑에 (동사무소를 가리킨다) 사람들이 그런 비슷한 말을 하더니만......
서중령 : 그래, 그렇게 되면 동대 본부도 하나는 없어질 수 있대. 아직 결정된 건 없지만 무슨 변동이 생길지도 모르니 염두에 두라구.

- 동대장, 손가락을 꺾으며 멍하니 TV를 바라보고 있다.

17. 메밀국수집

- 손님들로 북적거리는 식당. 미자와 혜미, 그리고 아이가 들어가니 자리가 없다.

주인 : (혼자 앉아 있는 여자 손님에게) 죄송하지만 옆 분과 합석을 좀......

- 주인이 혼자 앉아 있는 손님에게 다른 테이블과 합석을 요청하여, 옆 테이블에 혼자 않아 있는 여자 손님과 합석하게 한다. 마주 앉은 미자와 친구 혜미. 주문을 하고 마주 보니 약간 어색하다.

미자 : 남편은 늦나 보네.
혜미 : 응, 예비군 훈련이래. 동사무소까지 같이 왔었어.

- 잠시 침묵.

혜미 : 사귀는 사람 있니?
미자 : 아직 없어.
혜미 : (한참 있다) 공무원 되려면 시험 봐야 되지?
미자 : 응.
혜미 : 오빠는 잘 있어?
미자 : 응? 동생말이야?
혜미 : 아, 동생이었나?

- 잠시 침묵. 미자, 옆자리 앉은 - 혼자 와서 합석한 - 손님이 자신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고개를 돌려보니, 두 사람 다 미자네 테이블을 가로질러 냉장고 위에 있는 TV를 멍하니 보고 있다. 혜미가 테이블 밑에서 장난치고 있는 아이를 야단친다.

미자 : 얘는 이름이 뭐야.
혜미 : 형준이. 황보형준. 얘들 아버지가 성이 황보야. 황보중만, 웃기지, 이름?
미자 : (쿠쿡 웃는다) 미안, 미안. 나는 니가 이름이 이뻐서 금방 넌 줄 알았어. 시골 학교에는 흔하지 않은 이름이잖아. 그러면 황보중만씨와 윤혜미가 결혼을 한 거네.
혜미 : 그래. 결혼식 때 하객들이 많이 웃었대. (웃는다)

- 종업원이 음식을 가져온다. 메밀국수 접시와 소스 그릇을 갖다 놓고 냉면을 가위로 잘라 놓고 간다. 종업원의 팔이 지나가자 다시 어색한 침묵이다.

- 두 사람, 음식 먹고 TV 올려다 보고, 그러기를 반복한다. 카메라가 TV쪽에서 두 테이블을 바라본다. 두 테이블에 있는 사람들 모두 TV를 본다. 서로의 눈길을 피한다.

18. 전철역 주변 도로

동대장이 자전거를 타고 지나간다. 입을 다물다 못해 입술이 앞으로 삐죽 튀어 나왔다. 모래바람이 앞을 가린다.

19. 전철역 입구

- 각자 떨어져 경계근무를 서고 있는 예비군들이 동대장을 보고 자세를 바로 한다.

동대장 : (형식적인 투로) 다들 자리 비우지 말고 암구어 꼭 숙지하고...... (무엇을 발견한 듯) 총을 잃어버리면 그건 구속사유예요. 무슨 일이 있어도 총은 놓치지 말라고. 그런데, 왜 노끈은 묶지 않고 있나들?

- 이전에 나눠 준 노끈으로 동대장이 직접 총과 허리띠를 묶어 준다.

예비군1 : 하하, 이 끈이 그거 하라고 나눠 준 거였어요?
예비군2 : 동대장님, 아유, 어린애도 아니고.
동대장 : (계속 묶는다) 사람 일은 모르는 거여. 총 잃어먹는 놈만 죄 받는 게 아니야.
예비군1 : 제가 할게요. 내참.

20. 메밀국수집 앞

혜미 : 정자야, 앞으로 동사무소 들릴 때마다 볼 수 있겠구나.
미자 : (놀라며) 응?
혜미 : 어머, 너 김정자 아니니? 미안해. 아직 네 이름이 생각 안 난다.
미자 : (애써 웃으며) 미자야. 김미자.

21. 전철역 주변 상가

- 황사 섞인 바람이 강하게 분다. 사람들 대부분이 몸을 움츠리고 다닌다.

- 뾰루퉁해진 미자, 다른 행인들 보다 느린 걸음으로 걷는다. 전철역 부근 의류 쇼핑몰에 들어간다.

22. 의류 쇼핑 몰

- 옷을 고르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대부분이 여자이고, 옷 갈아 입는 탈의실 수가 적어서 대부분이 점포에서 준비한 통 넓은 치마를 이용해 매장 곳곳에서 옷을 입어보고 있다. 그러니까, 통 넓은 치마를 먼저 입은 다음 그 속에서 자기 하의를 벗고 사고자 하는 바지나 치마를 입어보는 그런 방식이다.

- 미자, 자신이 고른 바지를 한 켠에 놓고, 통 넓은 치마를 입는다. 그리고 바지를 벗는다. 새로 고른 바지를 입어 보려다가, 통치마를 입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거울에 비쳐 본다.

- 미자가 그 통 넓은 치마를 들고 계산대로 향한다.

미자 : 이것도 파는 거죠? 이건 얼마죠?

23. 전철역 앞 - 횡단보도

종이가방을 들고 신호를 기다리는 미자. 옆에서 머리에 커다란 바구니를 이고 있는 할머니에게 어느 경찰관이 다가가서 말을 건다. 두 사람의 얘기는 잘 들리지 않는다.

24. 설국 전철역

미자가 전철에서 내린다. 설국역은 지상에 있는 역이어서 내리자마자 어둠에 묻힌 산과 불빛 두 세 개가 보인다. 서울 도심의 전철역과는 달리, 전철역 주변에 상점 몇 개와 몇 채의 집만이 있다. 저 멀리 뛰엄뛰엄 있는 불빛이 사람이 살고 있는 마을이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더 먼 곳에 고층 아파트 건물이 공사중이라는 것을 공사용 대형 크레인의 빨간 표시등을 통해 알 수 있다. 전철역이 아니라, 마치 시골 기차역과 흡사한 모습.

25. 설국 전철역 앞

- 전철역을 빠져 나오는 미자. 양복을 입은 남자가 전철역 앞 2차선 국도변에 앉아있는 것을 발견한다. 술이 취한 듯 고개를 무릎 사이에 파묻고 정신 없는 모습이다. 미자, 남자를 지나쳐 가다가 매서운 바람에 옷깃을 여민다. 잠시 생각하다가 남자에게 돌아온다.

미자 : 여보세요, 괜찮아요?
남자 : (반응이 없다)
미자 : 집이 어디에요? 이 동네 사셔요?
남자 : (눈을 뜬다) 어, 당신은......?
미자 : (영문을 모른다)
남자 : 아! (괴로워한다) 이런 씨팔, 이런......
미자 : (영문을 모른 채 술 냄새에 고개를 돌린다. 얼굴을 확인하려 하지만 알 수 없는 사람이다)
남자 : (혀가 꼬인다) 내, 내가 술이 취해서 또 당신한테루다가 와버렸네요, 잠깐만 있어봐요.

- 남자, 미자의 손을 뿌리치고 차가 질주하는 도로를 위험하게 건넌다. 그리고 길가 우체통의 뚜껑을 열려다가 열리지 않자 우체통을 부여잡고 게워 내기 시작한다. 등을 두들겨 주는 미자.

남자 : (손으로 입을 닦고는) 남자새끼가 말이야, 한 번 뜻을 뒀으면 씨팔, 뜻을 계속 쭈욱 둬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오늘 제가, 내가, 아니 제가 또 여기 온 건 순전히, 수운저언히 저 놈(전철역을 가리키며) 때문이에요, 저놈. 주인이 씨팔, 술 좀 먹고 깜박 졸 수도 있는 것이지, 네 놈이 나를, 뜻을 쭈욱 두고 있는 주인인데, 니가 나를 일루 데리고 오냐, 임마! 내 이놈을 당장......

- 남자, 전철역을 향해 달려가려 한다. 미자가 남자의 손을 잡아 제지하고는 택시를 기다린다. 한참을 지나 모범택시를 잡아 남자를 태워 보낸다. 미자, 한 숨을 돌리고 종이가방을 찾는다. 길 건너편에 아무렇게나 내버려진 종이가방.

26.주변 공터 (같은 날 심야)

- 공터 옆 시계탑 시침이 새벽 한 시를 가리킨다.

- 여전히 황사가 거세게 분다. 예비군들이 다시 모여있다. 동대장의 얼굴에 긴장감이 돈다.

동대장 : (김일병에게) 다시 세어봐.
김일병 : (총기를 센다) 핫, 둘, 셋, 넷, 다...... 동대장님, 66정인데요.
동대장 : 알았어. (예비군들에게) 주목! 지금 한 사람이 모자라는 게 최종 확인이 됐어요. 총기도 하나 없고. 누구 이사람 핸드폰 번호 아는 사람?

- 시간 경과. 여기 저기 지쳐 않아 있는 예비군들.

김일병 : (핸드폰을 귀에 대고) 아무도 안 받습니다. 집에도 없는 것 같습니다.
동대장 : 담배나 하나 줘봐라.

- 시간 경과. 도로변 쪽에서 예비군 몇 명이 돌아온다.

예비군1 : 없는데요. 저희가 술집이나, 식당들 다 훑어 봤는데 그런 사람 못봤다고....
동대장 : 알았어요. 수고 했어요. (예비군들에게) 여러분들은 이제 들어들 가봐요.

27. 전철역 주변

대부분 불이 꺼진 식당과 주점. 동대장이 앞장서고 김일병이 자전거를 끌면서 불이 켜진 곳마다 들어간다. 둘 다 아무 말 없다.

28. 어느 아파트 (새벽)

- 동대장과 김일병이 아파트 단지 정문을 지난다. 먼 곳에서 부옇게 밝음이 새어나고고 있지만 아직은 대체로 어둡다.

- 시간 경과. 어둠이 거의 걷히고 하늘이 파란 새벽. 경비실 앞에서 동대장, 김일병, 아파트 경비, 그리고 없어졌던 예비군이 츄리닝 바람으로 집에서 내려와 이야기하고 있다.

예비군 : (김일병에게) 얌마, 내가 분명히 말했잖어. 급한 일 생겨서 30분 전에 들어간다고 동대장님한테 전해달라고. 총은 동대 본부 냉장고 옆에 놔뒀다고. 어이구, 미치겠네.
김일병 : 언제 그랬습니까. 선배님이 저 전화 받고 있을 때 들어와서 아무 말 안하고 쓱 나가버리시면 제가 그걸 어떻게 압니까.
예비군 : 이런 병신같은 새끼가 다 있네. 내가 냉장고 옆에 있다고 적어 놓았잖아.
김일병 : 선배님이 적어 놓았는지는 몰라도 저한테 말씀은 안하셨습니다.

- 동대장, 아무 말없이 듣고 있다.

29. 동사무소 앞 골목 (아침)

- 동대장, 자전거를 타고 달린다. 하늘에 구름이 잔뜩 끼어 있다. 거기다 모래바람까지 거세어 동네 전체에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돈다.

- 동대장 얼굴의 클로즈 업. 안경 너머로 눈을 가늘게 뜨고 입을 꽉 다물었다. 바람에 날리는 모자를 눌러 쓰고 계속 달린다.

30. 동대장 집 앞

미리 나와있는 동대장의 아들이 교복을 입고 기다리고 있다. 아버지가 내린 자전거를 타고 학교를 향한다.

31. 동대장 집

- 문을 열고 들어가니 아내가 동대장의 어머니를 모시고 외출 채비를 하고 있다.

아내 : 국은 지금 금방 데운 거니까 덜어 드세요. 밖에 비와요?
동대장 : 아니.

- 아내와 어머니, 나간다.

- 군복을 입은 채로 집 여기 저기를 둘러 본다. 텅 빈 집. 아침의 분주함을 짐작케 하는 옷가지들과, 드라이기, 화장품 등이 어질러져 있다. 거실 겸 동대장 부부의 침실처럼 보이는 마루방에는 TV가 윙윙 거리고 있다. 어디서든 쉽게 볼 수 있는 방 2개, 마루방 하나 있는 집이다.

- 시간 경과. 동대장이 군복 야전상의만 벗고는 따뜻한 국물을 덜어다 밥을 말아 먹는다. TV에서는 아침뉴스가 한창이다. TV화면 아래 부분에 기자들의 이메일 주소가 나온다.

- 시간 경과. 동대장이 옷을 갈아입고 화장실에 들어선다.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의 모습을 본다. 위장크림을 지운다는 것을 깜박 잊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찬바람에 얼굴이 많이 상해 있다. 비누칠을 몇 번 씩 한다.

- 얼굴을 닦으며 마루방으로 들어온다. 수건 너머로 TV를 보던 동대장이 흠칫한다. TV화면에는 일기예보 코너가 진행 중이다. 그리고 기상 캐스터가 소개된다. 눈꼬리가 쳐지고 어질게 생긴,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성 캐스터다. 그녀가 시청자들에게 인사한다.

- 동대장의 환상. 화면 아래에 '심선미 기상 캐스터' 라는 자막 아래에 canaria@ ... co.kr 이라는 이메일 주소가 나온다. 갑자기 이 자막이 점차 확대되며 Extreme Close-up 된다. 위성사진 속에 있던 구름이 빠르게 움직이며 화면을 가득 채운다.

기상캐스터 : 중국 대륙에서 날아온 황사로 인해 어제 하루 안과를 찾으시는 환자들이 배로 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오늘은 우리 지역에 황사를 씻어낼 고마운 비가 내릴 전망입니다. 벌써 지역별로 내리는 곳도 있다고 하구요, 특히 배오동에는 강한 바람과 함께 천둥번개를 동반한 거센 비가 예상됩니다.

- '천둥 번개를 동반한..' 이라는 말과 동시에 실제로 천둥이 콰쾅, 울린다. 동대장, 눈동자가 커지고 자리에서 꼼짝 할 수 없다.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 이어지는 환상. 기상 캐스터가 정중하게 인사를 하더니, 노래를 시작한다. 브라스 밴드의 음향이 다분한, 그리고 음질은 옛날 LP판의 거친 음색으로 신카나리아의 '강남달'을 부르기 시작한다. 그녀를 감싼 구름 속에서 반짝이 붙은 옷을 입은 백코러스들이 나타난다.

- 동대장, 얼어붙은 듯 꼼짝 못하고 있다. 어느새 화면이 아니라 어수선한 동대장의 마루방에 그녀와 백코러스들이 나타난다. 마루방에는 소반과 요란한 색깔의 상 덮개, 아이들의 속옷, 드라이어, 할머니의 성경, 아령 같은 운동기구, 손쉽게 바닥먼지를 제거 할 수 있는 손잡이 달린 걸레, 구식 쌀통 등과 같이 여느 집에서 볼 수 있는 소품들로 가득 차있다. 그렇지만 이상하게도 이런 것들과 노래를 부르는 그들의 모습이 무난히 어울린다. 그녀가 쳐진 눈으로 동대장을 향해 너그럽게 웃는다.

- 같은 시간 동대장 아들의 모습. 자전거를 타고 학교를 향하는 아들의 이마 위로 굵은 빗방울이 투둑 떨어진다. 그리고 그가 타고 달리는 자전거 바퀴가 도는 모습. 아들의 흰 교복 위로 빗방울이 떨어지면서 교복이 누렇게 변해가는 모습. 계속해서 울리는 천둥소리와 세찬 빗줄기. 그리고 동대장의 얼어 붙은 표정이 반복해서 교차된다. (O.L)

- 동대장의 안경너머로 눈물이 한줄기 흐른다. 주름골을 타고 흐른다. 계속되는 천둥과 번개.

32. 미자의 방

- 앞 씬의 천둥과 번개 음향 (O. L)

- 무서운 꿈을 꾼 것처럼 이불 속에서 눈을 번쩍 뜨는 미자. 몸을 반만 일으키니 어제 사온 통치마가 정면에 걸려 있다.

33. 동사무소 - 현관

동사무소 현관에서 미자와 경숙이 손바닥으로 비를 가늠한다. 약해진 빗줄기를 확인하고 우산 없이 길 맞은 편 편의점으로 냅다 달려간다.

34. 편의점

- 컵라면과 꼬마김치를 집어드는 손. 김밥이나 주먹밥 쪽으로 가다가 멈추는 손. 그리고 정수기 꼭지를 눌러 뜨거운 물을 받는 손들.

- 미자와 경숙이 컵라면을 먹으면서 이야기한다.

미자 : (심각하게) 그, 왜 꼭 마술에 걸린 것 같다는 거 있잖아.
경숙 : 응? 무슨 말이야?
미자 : 언니는 경찰관이 할머니한테 길 묻는 거 봤어?
경숙 : 봤지, 할머니가 교통경찰한테 길 묻는 거. 아니 실제 본게 아니라 TV 같은 데서 그런 장면 많이 봤잖아.
미자 : 아니. 반대야. 경찰관이 머리에 큰 바구니 이고 있는 할머니한테.
경숙 : 경찰이 할머니한테? 짐을 이고 있는 할머니한테?.
미자 : 새파란 옷 입고 어깨에 번쩍거리는 호루라기 줄 매단 교통경찰 있지? 그런 젊은 경찰관이 할머니한테 어디어디로 가려면 어떻게 가느냐고 물으니까 할머니가 이리저리 해서 가라고 가르쳐주는데, 그 왜 두 사람이 한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바라보는 그런 사진 많이 봤잖아. 경찰서 벽에 걸려 있을 만한.
경숙 : 그런데. 사실 내용은 반대라 이거지.
미자 : 응. 언니는 그게 안 웃겨?
경숙 : 웃겨. 그런데 드물기는 하지만 그럴 수도 있지 않니?
미자 : 그렇지. 그럴 수도 있지. 그런데 왜 그렇게 낯설지?
경숙 : 뭐가 낯설어. 지나가는 경찰관한테 물어봐. 아저씨는 길 모를 땐 어떻게 해요? 아저씨는 평생 길을 몇 번이나 물어 보셨나요?
미자 : 아무튼 어제는 정말 마술이었어.
경숙 : 이렇게 창가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유심히 봐봐. 세상에 낯선 게 천지야.

- 갑자기 미자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편의점 창 밖으로 어제 저녁 옥상에서 창문으로 뵈던 여자가 지나가고 있다. 어제와는 다르게 상당히 우아한 모습이다. 이국적인 스카프에 라틴 풍의 강렬한 색상의 치마 차림이다. 라틴 계통 사람들과 비슷한 오똑한 콧대와 날카로운 눈빛이 두드러진다. 이 동네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다.

- 라면 용기에 젓가락을 담궈 휘휘 젓고 있는 경숙. 조금 남은 면발까지 건져 먹고 있다.

미자 : ('창문의 여인'을 뚫어지라 보면서) 언니, 낯선 게 천지라구?

35. 동사무소

돌아 온 사무실이 어수선하다. 형사 두 명이 최주사와 이야기 하고 있다. 다른 직원들도 웅성거리며 일손을 놓고 있다가 들어 오는 두 사람을 향해 일제히 시선을 모은다. 한 쪽 소파에는 지난 번 아들을 찾던 할머니가 수갑을 찬 남자와 함께 조용히 앉아있다.

형사 : 김미자씨 맞아요?
미자 : 네. 전데요.
형사 : 주민등록 등/초본 하고 전입신고 담당 맞죠?
미자 : 네.
형사 : (그때의 종이 쪽지를 내보이며) 저 할머니한테 이사람 주소 가르쳐 준 적 있어요?
경숙 : (미자의 말을 가로막으며) 그건 제가 가르쳐 드렸는데요.

인써어트 - 빗방울이 다시 거세게 창문을 두들긴다.

36. 동대장의 집 (다음 날) - 외경

황사비로 인해 흰 페인트칠의 연립주택이 황토빛 얼룩으로 더러워져 있다. 경비원이 호수로 물을 쏘아 건물 벽의 얼룩을 지우는 작업을 하고 있다.

37. 동대장의 집

- 분주한 아침풍경. 동대장의 아내와 어머니가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고 있고 아들과 딸이 화장실과 방을 오가며 등교 준비에 바쁘다. 동대장이 마루방의 침구에서 일어나 분주한 풍경을 넋놓고 보고 있다.

- 조금 한가해진 시간. 동대장이 낮은 상에서 아침을 먹고 있다. TV에서 일기예보를 알리는 시그널 뮤직이 나온다. 어제 그 기상 캐스터가 시청자들에게 인사한다. 여전히 화면 아래 부분에 canaria라는 이메일 아이디가 나오고, 위성사진도 변함없다. 그러나 어제와는 달리 별 특이한 것 없이 그냥 진행된다. 동대장이 밥숟갈을 뜨는 둥 마는 둥 하며 멍하니 보고 있다. 아내가 옆자리로 쓱 들어와 앉는다.

아내 : 무슨 일 있어요?
동대장 : (짐짓) 일은...... 왜 그래?
아내 : 어제 저녁 드시라고 깨웠더니만, 몇 숟갈 푸다 말고 금방 드러누워 주무시대요.
동대장 : 며칠 피곤했던 모양이지. 날씨도 갑자기 쌀쌀해졌고, 밤을 새워 버렸더니만 그랬던 거겠지.
아내 : 어머님이 당신 약 한 채 지어야 되는 게 아니냐구 그러시던데. 요 앞에 잉어로 약짓는 집이 생겼어요.
동대장 : 잉어는 무슨 잉어. 어머니 병원 가셨던 건 어떻게 됐어?

- 동대장이 양복을 입고 출근하려 한다. 그리고 한 손에는 스포츠 가방을 들었다. 현관 신발장에서 축구화를 찾아 가방에 싸 넣는다.

아내 : (담배 케이스를 건네 주며) 이젠 담배도 끊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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