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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오2동사무소     - 박정우(31)


38. 동사무소 (토요일 오전)

(M) 차분한 음악

- 여느 때와 다름없이 분주한 사무실. 햇빛이 비가 그친 후 더 화사하게 사무실 안을 비춘다. 미자도 민원 손님들을 상대하느라 꽤나 바쁘다. 그렇지만 유심히 살펴보면 직원들의 표정이 다소 굳어 있다. 미자의 뒤편에 주사, 부주사, 그리고 경숙언니가 부지런히 동장실을 들락날락 거리고 있는 것이 포커스 아웃 된 흐린 모습으로 보인다.

나레이션 (미자) : 어제 저녁 직원 회의 때 어쩌면 우리 동사무소와 1동 동사무소가 합쳐질 거라고 동장님이 말씀하셨어요. 그러면 자연히 중복되는 인력은 줄이든지 다른 곳으로 발령이 날 거라고 하셨어요. 그동안 이런 저런 얘기들은 들었지만 막상 동장님 입으로 직접 들으니까 사람들 표정이 어두워 졌지요.

- 경숙이 자신의 자리로 돌아 온다.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민원업무를 처리한다.

나레이션 (미자) : 어제 경찰이 다녀 가면서 비가 그쳤습니다. 경숙 언니의 일을 끝으로 어제까지의 마술은 그 화려한 막을 내린 셈이네요. 그 수갑을 찼던 사람이 할머니를 협박해서 할머니 아드님을 찾아내라 그랬대요. 그래서 결국 상해사건이 일어났구요. 저번에 간첩이 동사무소에서 주소를 알아내 사람을 죽였다는 일 있었잖아요. 그 일 후로는 경찰 수사에 필요하거나, 아니면 재산 관계 때문에 법원에서 판결해주지 않으면 개인 정보를 함부로 가르쳐주지 못하게 되었어요. 아무리 경숙 언니가 가르쳐 줬더라도 그건 전적으로 제 책임인데, 그리고 이 일로 사람이 다쳤다는데 경숙 언니만 동사무소를 그만 두기로 했어요. 자기는 안그래도 그만 두려고 했대요. 그만 두고 시집 갈꺼냐니까, 사업을 하기로 했대요. 무슨 사업이냐니까, 안가르쳐 준대요.

39. 탈의실 (토요일 1시경)

옷을 갈아입는 여직원들. 평소같이 잡담이나 깔깔거리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경숙도 들어와서 옷을 갈아 입는다. 미자가 유니폼 위로 전날 샀던 속이 풍성하고 통 넓은 치마를 입는다. 그리고 손을 치마 속으로 넣어 유니폼 치마를 벗겨 낸다. 동료들이 기도 안 차다는 듯이 보다가, 결국 실소를 금치 못한다.

경숙 : 야, 김미자. 너야 말로 낯선 년이야. (웃는다)

40. 시민 공원 - 운동장

- 축구장 한 켠 스탠드에 '배오2동 번영회 연합 - 배우회' 라고 적혀 있는 플래카드가 붙어 있다. 그 아래 중년이 대부분인 선수들이 짐을 풀고 체조를 하고 있다.

- 다른 사람들보다 미리 준비를 마친 동대장이 담배케이스를 연다. 여느 때처럼 담배 10개피가 가지런히 있고, 빈 자리에 니코틴 흡수용 플라스틱 파이프가 들어 있다. 동대장, 파이프를 끼우지 않고 그냥 담배 한 개피를 태운다. 이어 주장 격인 소방대장 권씨가 선수들을 불러 모은다.

권씨 : 다들 시간 내어서 이렇게 오셨는데, 웬만하면 이기는 게 안 좋겠습니까. 잘 아시다시피 축구는 전투야. 전투는 못 이기면 두 말 할 것 없이 다 죽는 거라고. 제가 어쩌다가 주장을 맡아버렸으니까, 경기 잘하자고 잔소리 좀 하고 큰소리 쳐도 다들 꾸욱 눌러 주시고, 오늘 죽도록 한 번 해보자구요. 자, 모여요. 파이팅 한 번 합시다.

- 손을 모으는 선수들. 순간 북천옥(고깃집) 주인 양씨의 유니폼 색깔이 빨간색인 것을 알아 차린다.

권씨 : 어이, 북천옥. 당신 유니폼 빤스 색깔이 왜 그래? 오늘은 우리 파란 색이잖아.

양씨 : 깜박 했네요. 어떻게 하죠?

권씨 : 누구, 다른 옷 없어요? 아무거나.

- 하프라인에 양팀 선수들이 마주보고 도열해 있다. 다들 뚱뚱한 상체에 비해 볼품없이 마른 다리로 서 있는 모습이 다소 우스꽝스럽다. 북천옥 양씨는 혼자만 흰색 긴 츄리닝 바지를 입고 있다.

- 경기가 시작되었다. 다들 열심히 뛴다. 소방대장 권씨가 선수들을 독려한다. 거의 반말 투에다가 이새끼, 저새끼 하는 욕도 나온다.

- 동대장도 수비수로서 열심히 뛴다. 상대 공격수와 사이드를 달리며 공을 다투다가 코너킥이 선언된다. 무릎에 양손을 얹고 고개를 파묻는다. 숨을 헐떡인다.

- 서로 사인을 해가며 패스를 주고 받는 선수들. 서로를 부를 때 이름 대신 북천옥, 동대장, 종로김밥, 미성당, 대성슈퍼, 유원장, 장사장 등과 같이 점호나 직함을 주로 부른다.

권씨 : 야, 미성당, 안뛰어!

장사장: 북천옥, 북천옥! 뒤를 받쳐! 따라가 주란 말야!대성슈퍼 : 동대장님, 앞으로, 자!

- 동대장, 상대 공격수를 일대일로 막고 있는 상황. 상대는 공을 잠시 멈추고 요리 조리 기회를 보고 있다. 동대장이 거기에 따라 몸을 움직인다. 상대가 큰 동작으로 오른발을 뒤로 뺀다. 머뭇거리는 동대장. 상대가 센터링으로 강하게 찬다. 동대장의 눈에 공이 갑자기 크게 보인다. 얼굴에 정면으로 맞는다. 동대장, 쓰러진다.

- 쇠를 가는 듯한 효과음. 동대장의 귀에 들린다.

- 동대장의 시선. 하늘만 보인다. 날씨가 더없이 청명하여 파란 하늘과 구름까지도 돋보인다.

- 갑자기 동대장의 시선 속에 예전 기상 캐스터의 얼굴이 쑥 들어온다. 눈꼬리 쳐진 눈으로 애처로이 동대장을 내려다 본다. 그리고 그녀 주위로 같은 팀 선수들의 얼굴이 속속 들어 온다. 다들 그를 가엾다는 듯이 애처롭게 내려다본다. 어느새 기상 캐스터의 얼굴은 사라지고 없다. 북천옥 양씨가 그를 일으킨다.

양씨 : 괜찮아? 자, 이리 나오라구.

- 그라운드 밖 스탠드로 나가 앉는 동대장. 양씨가 깨진 안경을 전해주고 다시 들어간다.

41. 동사무소 - 앞 길 (토요일 오후)

미자와 경숙이 손을 잡고 걸어가는 뒷모습.

42. 식당 - 중국집

- TV에서 프로레슬링이 중계되고 있다. 주인 아저씨가 의자에 기대고 방송을 보고 있다. 미자와 경숙의 테이블 위에 간짜장 2개와 군만두가 놓여 있다.

미자 : (프로레슬링 중계를 보다가) 어머, 저것 봐. 피나네.
주인 : (돌아보며) 에유, 저거 다 가짜에요.
미자 : 피 까지 흘리는데 가짜에요?
주인 : (웃는다) 다 짜고 하는 거예요.
경숙 : 아나운서 소리 들어보세요. 아나운서도 그럼 거짓말 해요?
주인 : 그럼 진짜라고 해요. 보는 사람이 진짜면 진짜고 가짜면 가짜 아니겠어요. (씩 웃는다)
나레이션 (미자) : 정말 아나운서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정말 서로 짜고 하는 걸까요. 만일 그런 거라면 아나운서까지 거짓말을 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미자 : (몇 개 남지 않은 만두 접시를 내밀며) 언니, 만두 먹어.
경숙 : 알았어. 너, 간장에 식초 넣었니?

나레이션 (미자) : 저는 매번 돼지처럼 만두부터 먹고 나중에 내 짜장면 먹고, 언니는 자기 짜장면 다 먹고 나중에 남는 만두 먹고...... 어른이 되어서도 좀 쉬어 갈 데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음, 어릴 적 크리스마스 같은 거 있잖아요. 산타 할아버지가 있다 그래 놓고 정말 있는지 없는지 누구 하나 정색하고 딱 부러지게 말해주지 안잖아요. 산타가 있다는 어른도 웃으면서 있다고 하고, 없다는 어른도 웃으면서 없다고 하고. 이게 도대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어린 나이에 그렇게 웃으면서 이야기들 하면 너무 헷갈려요. 그래도 어른들이 웃으니까 은근히 기대하게 되잖아요. 뭔가 좋은 게 있겠구나, 하면서요. 혹시 아직도 어른들을 속이고 있는 게 있을까요? 그런 게 있었으면 해요. 나이 들고 힘든 어른들도 기분 좋게 속을 수 있는 그런 게 있었으면 좋겠어요. 거기서 좀 쉬고 싶네요. 경숙 언니 때문에 마음이 무거워서인가요. 아, 이제 경숙 언니 없으면 누구랑 밥을 먹죠? 누구랑 옥상에서 커피 마시고, 남자 직원 흉보고 그러죠......

- 만두를 먹다 눈물이 그렁그렁 해지는 미자. 경숙 언니는 그런 미자를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 만두만 먹고 있다. 그들의 뒤로 배달하는 청년과 철가방, 우스꽝스런 모자를 쓴 조리장 아저씨, 계산대의 아줌마, 빈 양념통에 양념을 채워 넣는 주인아저씨 등이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자기의 일에 열중한다. 미자, 혼자만 그렁그렁 하고 있다.

경숙 : (만두를 먹다 뭔가 생각난 듯) 미자야, 언니랑 쇼핑이나 하러 가자. (심각하게) 소비자 조사도 해야 되고, 상권도 좀 파악할 겸.

43. 전철역 주변 번화가

미자와 경숙이 전철역 주변 상가를 돌아 다닌다. 어제의 비로 먼지가 깨끗하게 씻겨 나가고, 젊은 연인들과 보행기를 타고 나온 아기들로 인해 거리는 말 그대로 싱싱하다.

44. 식당 - 삼겹살집 (토요일 저녁)

- 고기를 구워 먹으며 얘기를 나누는 미자와 경숙
미자 : 언니, 그럼 언제까지 나오는 거야?
경숙 : 다음 주 까지 인수인계 마치고, 금요일 날 회식한대.
미자 : 언니 일은 내가 맡고, 그럼 내 일은 누가 한대?
경숙 : 영란씨랑 너랑 나눠서 하든지, 아니면 새로 누가 오겠지 뭐.
미자 : (조심스레) 어제 퇴근하고, 뭐했어? 같이 가자니까 먼저 가구.
경숙 : 뭐했을 것 같냐?
미자 : (머뭇거리며) 글쎄, 그......
경숙 : 너 혹시 내가 바다를 보러 갔다 왔을 거 같지 않냐?
미자 : 바닷가에 갔었어?
경숙 : 아니면 친구하나 불러다가 춘천으로 한바퀴 쏘구, 포장마차에서 소주 빨구, 뭐, 그런 짓 했을 거라고 생각되지 않냐, 그치?
경숙 : 술먹었어? 술 먹었구나. 그렇지?
경숙 : 울었다.
미자 : (놀라고 측은한 감정이 섞여) 언니!
경숙 : 이불 싸 짊어지고 엉엉 울었다. 나도 여자야, 임마. 10년을 생활한 곳이야. 하루 만에 정리 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냐. 웬만하면 버텨 볼까도 했는데, 안그래도 1동 동사무소하고 통합된다는 둥 얘기가 분분하길래, 누군가는 책임을 져서 일을 빨리 끝내는 게 좋을 것 같더라구. 그리고 자식 있는 사람들 밥줄은 좀 신경 써 줘야잖아. (진지해지면서) 그것도 그렇구, 정말로 몇 년전부터 계획한 사업이 있었거든.
미자 : 뭔데. 이제 말 좀 해봐.
경숙 : 아까 내가 사업차 여기 저기 둘러 봤잖냐. 지금 생각해 보니까 정말 잘 될 것 같아. 그냥 넌 정보통신과 환경공학이 결합한 새로운 사업이다, 이정도만 생각해 둬.

- 식당 문이 열리면서 일단의 사람들이 들어 온다. 일렬로 붙여 놓은 테이블 맨 안쪽에서 먹던 두 사람 옆으로 그들이 들어오는 순서대로 앉는다. 가만히 보니 미자의 맞은 편 즈음에 앉는 사람이 동대장이다. 축구시합을 마친 배우회 회원들이 식사하러 온 모양이다.

미자 : 어, 동대장님 아니세요.

- 동대장, 안경이 없어 쉽게 알아 보지 못한다.

동대장 : 가만 있어 봐라. 내가 안경이 없어서.
양씨 : 어, 동사무소 아가씨들이네.
동대장 : 아, 미자씨구나. 그리고 여기는, 여긴......

- 동대장, 경숙의 이름이 금방 떠오르지 않는 모양이다. 눈치를 챈 양씨가 거든다.

양씨 : 이 아가씨는 호적등본 떼주던 아가씨 아냐.
동대장 : (그제야 조금 생각이 난 듯) 그렇구나. 미스 오 아냐. 미스 오.
경숙 : 안녕하세요. 오경숙 입니다.
동대장 : 미안해, 맨날 미스 오, 미스 오, 하다 보니 이름이 금방 안 떠올라서.
경숙 : 괜찮아요. 저두 동대장님, 동대장님 하다 보니 함자가 어떻게 되는지도 모르죠.

- 술자리가 무르익어 간다. 얘기 소리가 시끌시끌한 중에 미자와 경숙이 이야기 한다.

미자 : 언니, 동대장님이 언니 이름 몰라서 좀 섭섭했지?경숙 : 조금. 근데 뭐, 나도 몰랐으니까.

미자 : 나 저번에 동창 만났잖아. 그런데 헤어질 때 되서 그 친구가, 정자야, 다음에 보자, 그러는거 있지. 나는 속이 많이 상했는데.
경숙 : 그렇지. 너는 친구니까 속이 상했겠다. 근데 뭐, 나는...... 아니구나. 나도 이제 속이 상하는데. 속상하기 시작했어.
미자 : 그렇지. 잘 생각하면 그럴 만한 일인데, 슬며시 속상하지?경숙 : 정리해 보자. 그러니까 너는 니 친구를 가슴에 담고 있었는데, 니 친구는 안 그랬다, 그래서 속이 상하다, 이런 거니?미자 : 그러니까 걔는 나란 애를 지금까지 잊어먹고 살았다는 말이잖아. 그러니까 걔 인생엔 내가 없었다는 거잖아.

경숙 : 그럼 난 왜 섭섭하지? 동대장님 인생에 내가 없어서 섭섭한 건 아니잖아. 나도 동대장님 이름도 모르고, 알려고도 안했고. 그 왜, 내 인생에 조금도 영향을 미칠 것 같지 않은 사람 있잖냐.
미자 : 언니..... (망설이다) 아냐, 아무것도.
경숙 : 알겠다. 떠날 때가 되서 그런 모양이지. 내가 주변 사람들한테 그 정도 밖에 안되었나, 싶고.....

- 잠시 침묵. 미자가 말을 돌린다.

미자 : 그도 그렇고, 왜 꼭 친구들이 정자랑 나랑 헷갈려 하지? '자'자 돌림이라서 그런가. 그게 그렇게 웃기나.
경숙 : 나 집에서 부르는 이름이 상욱이야. 아버지가 이번엔 꼭 아들 낳는다고 이름까지 지어 놓으셨대. 어릴 때 아버지가 사람 많은 데서 상욱아, 상욱아, 그러시면 그게 그렇게 부끄러웠는데.
미자 : (웃는다)
경숙 : 뭐 임마, 이젠 상욱이가 더 잘 어울린다고?

- 그 때 옆 테이블이 왁자지껄 해진다. 소방대장 권씨가 명함을 가지고 동대장을 놀린다.

권씨 : 젊은 애도 아니고, 카나리아가 뭐야, 이메일이. 하하하.(크게 웃는다)
동대장 : (당황하며) 원래는 신카나리아로 했다가, 안돼서 그냥 한거야. 신카나리아 알잖어.
양씨 : (웃으며) 카나리아라, 우리 동대장이 카나리아라......
권씨 : (웃으며) 간첩 잡으러 댕기던 우리 동대장이 카나리아라......

- 별안간 옆자리서 듣고 있던 경숙이 참고 있던 웃음을 터뜨린다. 굳어지는 동대장의 얼굴. 정색을 하는 동대장을 보고 사람들이 놀리는 것을 그친다. 경숙도 웃음을 참으려고 노력을 한다. 그렇지만 잘 안 된다. 콧물이 나올 것 처럼 웃음을 못 참고 계속 쿠쿡 거린다. 다른 사람들도 따라서 쿠쿡 거린다. 얼굴이 화로처럼 벌개지는 동대장. 안경 쓰던 사람의 안경 안 쓴 퀭한 눈언저리가 마치 주눅 든 사람 같다. 경숙은 이제 우는지 웃는지 모를 정도다.

경숙 : 죄송해요, 아이구, 죄송해요. 어떻게 하나. (웃음이 그치지 않는다)

- 시간 경과. 모두들 거나하게 취했다. 술자리가 차분하게 가라 앉고 진지한 말들이 오간다. 1동 앞으로 외곽도로가 나서 땅값이 들썩거린다느니, 2동이 강한 모습을 보여 주지 못해서 도로가 1동 쪽으로 나버렸다느니, 앞으로 통합이 되면 2동은 별 볼일 없을 거라느니, 다들 한 마디씩 던진다. 술이 많이 오른 소방대장 권씨가 한 마디 쏜다.

권씨 : 뭐 하나 제대로 하는게 있어야지. 하다못해 유니폼 하나 맞추는 것도 그렇지. 꼭 한 놈씩 이상한 옷 입고 와서......
양씨 : (은근히 기분 나쁘다) 지금 저보고 그러세요?
권씨 : 뭘 하든 통일이 돼야지. 그래야 강해 보이지. 그래야 질서가 잡혀요.
양씨 : (아무말 않고 듣고만 있다)
동대장 : 됐어, 이제 다들 일어나.
권씨 : (양씨에게) 이새끼야. 우리가 공 차서 이겨 본 게 언제야. 단결이 돼야 이기든가 말든가 하지. 너 하나 땜에 질서가 다 깨진다구, 임마
양씨 : (담배를 재떨이에 던지듯 끈다) 저 먼저 갑니다.

- 양씨가 일어난다. 사람들이 따라 일어선다.

45. 식당 앞

- 사람들이 인사를 하고 헤어진다. 동대장이 양씨와 이야기 하고 있다. 분위기 탓에 어쩔 줄 몰라하던 경숙과 미자가 와서 인사를 한다.

경숙 : 동대장님, 죄송해요.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에요.
동대장 : 응? 아, 괜찮아.

- 동대장과 양씨가 주머니에 손을 넣고 길을 걷는다.

양씨 : 동대장, 한 잔 더 먹자.

46. 노래방

- 미자와 경숙 둘 다 마이크를 잡고 신나게 노래 부른다. 미자가 큰 소리로 묻는다.

미자 : 언니! 자주 놀러 올거지?
경숙 : 그럼! 밥만 많이 사!

- 미자가 경쾌한 댄스곡을 부르면서 어설프나마 진지하게 춤을 흉내낸다. 보고 있던 경숙, 그냥 뛴다. 껑충껑충 위로 뛴다. 음악에 맞춰 계속 뛴다.

47. 룸 까페 - 전경

- 주택가 조금 못 미친 도로변에 핑크빛 네온사인을 단 카페가 몇 개 있다. 모두 검은 접착지로 창문을 가려서인지 우중충한 느낌이다. '갈대의 순정'라는 이름의 카페가 보인다.

48. 룸 카페 - 카페 안

- 동대장 옆에 마흔 줄의 마담이 앉고, 양씨 옆에 젊은 아가씨가 앉아 있다. 동대장과 양씨 모두 이젠 많이 취했다.

양씨 : (아가씨에게) 야, 요년아. 여기는 노래방 기계 없냐. 저 아저씨가 노래 얼마나 잘 하는 줄 알어?아가씨 : 어머, 카페에 노래방 기계 있는데 봤어요? 언니, 장사 끝나고 정말 노래방이나 갈까?
마담 : 애한테 욕좀 하지 말아요. 요년아가 뭐야.
양씨 : (장난스럽게) 아이 씨팔, 내 입 가지고 욕도 내 맘대로 못해?
마담 : (정색을 하며) 누군 입 없어서 욕 못하는 줄 알아요?

- 아가씨가 테이블 밑으로 마담을 쿡 찬다. 마담이 실룩거린다.

양씨 : (아가씨에게) 너 신카나리아라고 알어? 그게 저 아저씨 애인이래.
마담 : (퉁명스럽게) 거짓말 좀 마요. 신카나리아가 나이가 몇인데.
동대장 : (술에 취해서 자꾸 웃기만 한다) 흐흐, 흐흐흐.
아가씨 : 언니, 신카나리아가 뭐야. 가수야?
마담 : 가수야. 옛날 가수.
동대장 : 흐흐흐, 가수가 아냐.
양씨 : 에이, 이사람아. 가수 맞잖아. ('나는 열일곱살이에요'를 부르며) 나는 가슴이 울렁거려요~ 아르켜 드릴까요, 열 일곱살이에요~
아가씨 : 아, 그 노래. 나도 그 노래는 알겠다.
동대장 : (웃으며) 신카나리아가 아니라 카나리아라구.
양씨 : (계속 노래를 부른다. 아가씨랑 장난을 치며) 나는 얼골이 붉어 졌어요~ 가만히 가만히 오세요~ 요리조리로~ 아가씨 : (따라 부른다) 가만히 가만히 오세요~ 요리 조리로~
동대장 : 그냥, 그냥 카나리아라구. 씨, 에이, 엔, 에이....

- 노래 중에 양씨의 핸드폰이 울린다. 양씨, 손가락으로 조용하라는 신호를 보낸다.

양씨 : 응. 곧 들어간다. 술 많이 안 먹었어. 알았어, 알았어.

- 갑자기 동대장 옆에 앉아 있던 마담이 얼굴을 싸안으며 뛰쳐 나간다. 이어서 들리는 훌쩍이는 소리. 양씨, 통화를 끝낸다. 잠깐의 정적이 흐른다.

양씨 : 미안해. 잠깐만.

- 양씨가 나간다. 동대장과 아가씨 둘 만 남았다. 대각선으로 마주 앉아 있다.

아가씨 : 죄송해요. 놀래셨죠? 언니랑 양사장님이랑 원래 친해요. (생각을 하다가) 언니가 정말로 사랑하는 것 같아요.

- 동대장, 술이 확 깬다.

49. 주택가 골목

- 동대장과 양씨가 나란히 걷는다.

양씨 : 아직 두 집 살림할 형편은 안되고. 자꾸 정은 들고. 큰일이야.
동대장 : (고개를 끄덕인다)

- 잠시 침묵.

동대장 : 언제부터 그랬어?
양씨 : 한 1년 됐지.
동대장 : 누가 먼저 그랬냐?
양씨 : 그런 건 몰라.

50. 경숙의 방

- 같은 시간. 라디오에서 진행자들이 이야기 한다. 무슨 영화음악을 틀어주는 프로그램인 모양이다. 미자와 경숙 나란히 누워 깊이 잠들어 있다. 미니 콤포넌트의 사운드 표시등이 음악에 따라 오르내리기를 반복하며 얼굴을 비춘다.

- 다음날 아침. 교회의 차임벨 소리가 울려 퍼진다. 이윽고 아파트 복도에서 나는 '세탁~' 하는 소리에 미자가 눈을 뜬다. 경숙은 벌써 일어나서 감은 머리를 말리고 있다.

미자 : 언니, 저기 세탁~, 그러는 아저씨가 망태 할아버지 맞어?
경숙 : 망태 할어버지?
미자 : 그 왜, 우는 애들 잡아 간다는......

- 밖에서 '상욱아' 하고 경숙을 부른다.

경숙 : (나가면서) 들었지?

51. 동대장의 집 (같은 시간)

- 경숙의 방에서 들리는 교회 차임벨 소리가 똑같이 들린다. 할머니와 아내가 성경을 옆에 끼고 집을 나선다. 동대장은 츄리닝 차림으로 인사한다.

- 동대장이 벽장 상자를 열어 노래 테이프를 뒤적이고 있다. 한 테이프에서 신카나리아의 노래가 들어 있는 것을 발견한다.

- 카셋트에 테이프를 넣고 튼다. 이리 저리 맞추니 신카나리아의 '강남달' 이라는 노래가 나온다. 그런데 신카나리아가 부른 노래가 아니라, 관광버스용으로 만든 메들리 테이프다. 뿡짝뿡짝 야호, 하는 소리가 계속 되자 동대장이 스톱 버튼을 누른다.

52. 마을버스

- 마을버스 안에서 밖을 보는 동대장. 봄바람이 시원하게 들어온다. 라디오에서는 귀에 익은 진행자의 목소리로 시청자의 사연이 소개되는데, 진행자가 자기 일처럼 분개해 하고 있다.

진행자 : ...... 그건 아버지가 아니라 동네 아저씨라도 그렇게는 안하죠. 사람이 동물이랑 다른게 뭐가 있겠어요. 사연 보내주신 이명희씨는 마음을 독하게 드셔야죠. 아이들부터 살려놓아야 하는 거 아닙니까. 또 남편이 손을 대거나 그러면 경찰에라도......

53. 안경가게

- 안경테를 고르는 동대장. 이것 저것 가격을 물어 보다가 단순하게 생긴 어느 것을 선택한다. 점원이 테를 가지고 가는데, 동대장이 불러 세운다.

동대장 : 이걸로 해봐요.

- 먼저 것 보다 좀 더 무늬가 있는, 그래서 조금 화려해 보이는 테를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54. 동사무소 - 사무실

(M) 경쾌한 음악

- 동사무소 직원들이 출근한다. 미자와 경숙은 일찍 와서 나란히 붙어 앉아 업무 인수인계를 하고 있다.

나레이션 (미자) : 언니는 호적관련 일을 해왔어요. 언니 말로는 호적은 철학이래요. 호적계 10년이면 인생을 알 수 있대요. 그럴 만 하기도 해요. 호적계에서 하는 일이 혼인신고, 출생신고, 사망신고, 이혼신고, 그런 것들이거든요.

- 미자의 기억장면. 간결한 템포로 제시된다.

= 신혼부부 두 사람이 경숙 앞에 앉아 있다. 둘 다 웃고 있다.

신혼남 : 그러니까 증인 2사람은 직접 올 필요가 없다 이거죠?경숙 : 네, 그리고 양식은 여기 비치되어 있는데요, 신고는 구청에서 하셔야 돼요. (미자를 돌아보며 작은 소리로) 혼인신고는 꼭 손잡고 해야되냐?

= 임산부와 남편이 앉아 있다.

경숙 : 미국 가셔서 출산 하시더라도 영사관에서 민원업무를 해주거든요. 출생신고는 거기서 하시면 아무 상관 없어요.
부부 : (함빡 웃는다)

= 40대 아주머니가 초췌한 모습으로 앉아 있다.

아주머니 : (작은 목소리로) 이혼을 했는데, 그러면 제 호적은 어떻게 되나요.

= 2층 휴게실. 경숙과 방금 전의 아주머니가 이야기 하고 있다.

아주머니 : ......몇 달을 집에 안 들어오다 어쩌다가 들어와서 내 머리거댕이 흔들고, 때리고, 부엌에서 칼 들고 모가지에다 대고 다 죽자 그러고, 그래서 경숙씨, 내가 식칼 끝을 다 부러뜨려 놨어. 나는 죽어도 괜찮아. 차라리 죽여. 그래도 저 죄없는 것들은 살아야 되잖아. (흐느껴 운다)경숙 : (눈물이 맺혔다. 분개하며) 너무 한다, 정말 그런 놈이 다 있냐.

= 아직 어린 티 나는 여대생이 사망신고서 2장을 경숙에게 내민다.

경숙 : 두 장 맞아요?
여대생 : (고개를 끄덕인다. 눈을 크게 뜨고 울음을 참으려 한다) 교통사고예요. 두 분이......
나레이션 : 경숙 언니 말로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동사무소를 한 번 씩 들리게 된다고 해요. 그러니까 사는 동안 고비고비 마다 동사무소에서 점 하나 씩 찍고 간다는 거죠. 그 말이 맞는 것 같아요. 호적등본이라는 곳에다 일기를 쓴다고 생각하면 되겠죠. 언니는 10년 동안 참 별일을 다 봤대요. 언니는 관상이니 사주니 그런 거 다 거짓말이라는데요, 정말 그렇게 안 생긴 사람도 철면피 같은 짓을 하고, 신혼 때 손잡고 와서 혼인신고 했던 사람들이 인주가 마르기도 전에 원수가 되고는 그런대요. 어디로 튀는게 사람 사는건지, 또 어떻게 변하는게 사람인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헷갈려지고. 그래서 무서워서 시집을 더 못가는 지도 모르겠다는군요. 저보고 조심하래요.

- 어느새 동대장이 미자 자리 옆에 서 있다.

미자 : 오셨어요? (동대장의 바뀐 안경을 보고) 어머, 안경 새로 하셨네요. 이쁘다.
동대장 : 그날 잘 들어갔어?
미자 : 네.
동대장 : (조용히) 미자씨, 나 하나 물어보자. 그 컴퓨터로 편지 보낸다는 거 있지?

55. 2층 인터넷 방

미자가 열심히 인터넷 화면을 가리키며 설명을 하고 있다. 동대장이 귀를 기울이지만 영 이해가 안되는 표정이다.

56. 동대 본부 - 동대장실

동대장 : 김일병아, 우리 관제엽서 남은 거 몇장 가져와라.

- 김일병이 몇장 갖다 놓는다.

- 받는 사람 난에 '심선미 기상 캐스터'라고 쓴다. 그리고 아래와 같이 글을 적는다. 한자도 섞고, 그리고 글씨체에 각별한 노력을 들인다.

= 住民들에게 유익한 情報를 提供코저 東奔西走 하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人相이 훌륭하고 어질게 보이셔서 아침마다 편안한 마음으로 방송을 시청하고 있습니다.

- 마음에 들지 않는지 다른 엽서에다 그대로 쓴다. 또 버린다. 다시 쓴다.

= 住民들에게 유익한 情報를 提供코저 東奔西走 하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제가 비록 아이들 둘에 노모를 모시고 사는 가장이지만, 지난 방송을 보고 감명을 받아서 이렇게 편지를 띄웁니다. 나이 마흔 줄에 들어서 뭘 바래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진짜 어디선가 뵌 분 같고, 또 그것이 저를 한없는 설렘으로......

- 동대장, 엽서를 다시 읽는다. 그리고 또 버린다. 다시 쓰기 시작한다.

57. 동사무소 - 사무실

- 자리로 돌아가는 미자. 그런데 누가 자기 자리에 앉아 있다. 조금 어려 보이는 여자가 일어서면서 인사를 한다.

희영 : 안녕하세요. 새로 발령 받았어요. 박희영이라고 해요.

- 미자, 동전을 넣으려다 지폐를 넣는다. 그리고 캔커피 두 개를 뽑아 희영과 옥상으로 오른다.

58. 옥상

- 미자, 경숙 언니와 그랬던 것처럼 캔커피을 들고 난간에 기대어 희영과 이야기를 나눈다.

미자 : 저 공원 옆 도로에서 뒤쪽 외곽 순환 도로까지가 배오2동 이거든요. 꽤 사람이 많이 살아요.
희영 : 넓네요, 되게.
미자 : 주민등록계는, 뭐랄까, 철학이에요. 몇 년 정도 일하면 사람이 산다는 게 뭔가를 알 수 있죠.
희영 : (고개를 끄덕이기만 한다)
미자 : 그런데, 갈수록 모르겠어요. 사람 일이 이렇게 될 줄 알았는데 저렇게 되는 경우가 더 많더라구요.
희영 : (웃으며) 언니, 우리 말 놓아요.

- 미자, 옥상을 내려오려다 한 곳에 눈길이 머문다. 예의 그 '창문의 여인'이 그때와 비슷한 동작으로 아래위로 오르내리기를 반복한다. 이번엔 두 손을 들어올려 내지른다. 마치 환성을 지르는 듯 하다.

59. 동사무소 등

- 인수인계를 하고 있는 경숙과 미자, 혹은 미자와 희영의 모습, 탈의실에서 여직원 들이 옷갈아 입는 모습, 퇴근하는 모습 등이 빠르게 지나간다.

- 미자와 희영의 모습. 카메라가 책상 위 노트를 잡는다. 노트에는 주민등록 번호가 하나 쓰여 있다. 대사와 나레이션에 맞춰 장면들이 바뀐다.

미자 : 앞의 여섯 자리는 뭔 지 알지? 그래 출생 연월일이야. 그리고 뒤 일곱 자리 중에 첫 자리는 남자 혹은 여자를 나타내고, 그 다음 네 자리 숫자는 출생신고를 한 지역의 번호야. 그러니까 나는 3982 지역에서 태어났다는 얘기지. 그 다음 숫자가 신고한 순서이고 그 다음은 검증번호. 주민등록 번호는 이렇게 구성되어 있다, 이 말씀이야.
나레이션 (미자) : 주민등록계원을 몇 년 하다 보면 주민등록번호를 보고 그 사람을 정의내리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저는 75년 2월 11일에 3982지역에서 태어난 여자다, 이런 식이죠.

- 미자가 아침을 먹으며 TV를 보는 장면. 심선미 기상 캐스터가 나와서 날씨를 전해준다.

기상캐스터 : 오늘 새벽 영동 산간지방에는 34밀리의 큰 눈이 왔습니다. 이 영향으로 영동고속도로가 통제되고 속초행 항공기가 회항하는 등......
나레이션 (미자) : 그냥 그냥 하루 하루가 흘러 가고 있었어요. 벌써 경숙 언니가 이 곳을 떠나기 전날, 강원도에 큰 눈이 내렸다는 그 날, 이 곳은 완연한 봄날씨였습니다.

60. 동사무소 - 사무실

- 사무실 밖은 햇빛이 눈부시다. 동사무소 정원에는 진달래꽃이 함빡 폈다. 누가 미자를 부른다. 고개를 드니 김일병이다.

미자 : 안녕하세요. 웬일이예요?
김일병 : 이 분 주민번호 좀 봐봐요. 이럴 수도 있어요?

- 김일병 뒤에 서 있던 영주가 앞으로 나선다. 플라스틱으로 바뀌기 전의 비닐 커버로 된 주민등록증에는 710931- ......이라는 번호가 펜으로 적혀있다.

나레이션 (미자) : 71년 9월 31일생...... 9월 31일에 태어났다..... 강원도에 큰 눈이 내렸다고 했죠.? 제가 이럴 줄 알았어요. 이런 이상한 일이 생길 줄 알았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막상 대하고 보니 어떻게 이렇게 말이 안될 수 있을까요. 71년에는 9월이 큰달이었다구요?

- 미자, 웃음을 참으려 먼산을 본다. 괜히 미간을 좁히고 시선을 멀리하고 이를 악문다. 그러다 멀뚱히 서 있는 영주의 모습을 본다. 미자, 결국 웃음을 참지 못하고 쿠쿡 하는 소리를 터뜨려 버린다.

나레이션 (미자) : (웃음을 참지 못하며) 저 사람이 9월 31일 태어났다구요? (웃는다)
김일병 : (몸을 숙여 미자에게만 들릴 만한 목소리로) 동대장님이 이 주민등록증 혹시 위조된 거 아닌가 확인해 보래서요.
나레이션 (미자) : 1971년 9월 31일 3982지역 출신의 권영주라는 남자...... 응? 그런데, 3982지역이라구요?
미자 : 어머, 저랑 같은 동네에서 태어나셨네요?

61. 동사무소 - 박서기의 자리

- 시간 경과. 미자와 영주가 박서기 자리에서 영주의 호적등본과 주민등록 등본을 올려놓고 이야기하고 있다. 거기에도 물론 710931로 기록되어 있다.

미자 : 호적등본에 이렇게 되어있다는 말은 출생신고부터 잘못되었다는 얘기에요. 제 생각에는 아마 권영주씨 보호자께서 출생신고서를 잘못 기입을 하셨거나, 해당 동사무소, 그러니까 설국 동사무소 직원이 실수했거나, 아니면 주민등록증을 발급한 동사무소에서 실수 했거나 하는 경우 중 하나예요.
박서기 : 또 있어요. 혹시 이 민증 분실한 적 있어요? 아니면 누구한테 빌려 줬다거나.
영주 : 그런 적 없는데요.
박서기 : 아니 그런데 이럴 수가 있어? 어떻게 지금까지 한 번도 수정이 안되었는지, 이해가 안 가네. 그 동안 사회생활 안 했어요? 학교는 다니셨을 거 아니예요.
영주 : 네.
미자 : 회사도 그렇고, 군대도 갔다 오셨어요?
영주 : 그럼요. 지금 예비군 훈련 때문에 이쪽으로 온 거예요.
미자 : 결혼도 하셨어요? 혼인신고는 어디서, 어떻게 했어요?
영주 : 관할구청에다 했죠.
미자 : 거기서 아무 말 안하던가요?
영주 : 네.
박서기 : 진짜 생일은 언제예요?
영주 : (난처한 듯 말을 않는다)
박서기 : 실제 생일이요. 9월 30일이에요, 아니면 10월 1일이예요?
영주 : (머뭇거리다) 9월 30일이요.
박서기 : 그러면 이렇게 하자구. 신고지가 미자씨 동네랬지? 그럼 내가 전화 걸어 놓을 테니까 퇴근할 때 거기 동사무소에 들려서 출생신고서 사본 하나 받아와요. 그걸 보고 내일 얘기를 하자구요..
- 미자, 고개를 끄덕인다. 자기 자리로 돌아간다.
미자 : 그럼 내일 오후에 잠깐 나오세요.
영주 : 아니요, 지금 같이 가죠. 그렇지 않아도 한 번 가려 했거든요.

62. 전철 - 열차 안

- 열차가 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라오고 있다. 저녁 햇살이 열차 안으로 쏟아진다. 해가 뜰 때나 질 때는 시선과 정면이어서 눈부시게 느껴진다. 거기다 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라온 직후에는 열차 안의 햇빛은 밝은 느낌이 더한다.

- 손잡이를 잡고 서 있는 미자와 영주.

미자 : 그러면 설국은 언제 떠나신 거예요?
영주 : 어머니 말씀으로는 한 두 살 때래요. 아무튼 저를 낳고 또 다른 데로 옮기셨어요. 장사가 잘 되는 곳으로.
미자 : 배오동으로 이사 오신 건 언제예요?
영주 : 1년 조금 넘었죠. 결혼하면서 왔으니까.
미자 : 그럼 전입신고 하셨어요? 저한테?
영주 : 누구한테 했는지는 모르겠는데 하긴 했어요.
미자 : 혹시, 번호가 잘못된걸 본인도 모르셨어요?
영주 : 알았죠.
미자 : 그럼 왜 안 고치셨어요? 귀찮으시더라두......
영주 : (망설이다가) 잘못된 게 아니구요, 실제 이 날 태어났대요, 9월 31일에.
미자 : (전철 소리 때문에 잘 안 들린다) 언제요?
영주 : 9월 31일.
미자 : (웃으며) 하하, 왜 그러세요.
영주 : 아뇨. 정말 호적에 나와 있는 대로 1971년 9월 31일 축시생이라고 그러셨어요. 어머니가요.
미자 : 아까는 왜 30일이랬어요?
영주 : 설명하기가 귀찮잖아요.
미자 : (얼굴을 찌푸린다)

63. 설국역 - 플랫폼

- 열차가 둘을 내려놓고 지나간다. 전동차의 세련된 외양과, 전철역의 촌스러움이 확연히 대비된다. 열차의 소음이 멀어지면서 이상하리만치 고즈넉하다. 플랫폼을 걷거나 맞은편에서 기다리는 얼마 되지 않는 사람들도 태평스럽다. 신록을 더하는 산들이 그윽한 정취를 풍긴다. 계단으로 향하는 미자. 그리고 그 자리에 서서 숨을 크게 쉬어 보는 영주.

64. 설국

- 역 앞 내리막길을 내려가는 미자와 영주. 길 옆 작은 건물에 식당과 상점 두어 개, 그리고 부동산이 눈에 띌 뿐 사람도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그들의 뒤로 역명을 나타내는 간판이 보인다. 그 뒤로 더할 수 없는 파란 하늘.

- 2차선 국도를 건너 골목을 지나니 마을이 나온다. 재래식 가옥들이 대부분이고 주민들이 함께 사는 연립주택 한 채도 보인다. 3층짜리 주택 앞에는 소형 자동차들이 주차되어 있고, 그 앞으로는 파, 상추 등 야채를 숨궈 놓은 밭들이 보인다. 자동차 옆 우사에 소와, 그리고 강아지들이 뛰어 놀고 있다. 비닐하우스를 지나 언덕을 오르니 설국 동사무소가 보인다. 동사무소 마당에 철쭉이 한껏 피어있다.

65. 설국 동사무소

- 미자와 영주가 들어서니 서너 명의 직원이 자리해 있다. 계원 1명이 이들을 휴게용 소파로 안내하고 차를 내온다. 서류를 탁자 위에 올려 놓는다.

계원 : 아시겠지만, 출생신고서는 보통 아기의 부모님이 작성을 합니다. 여기 출생신고서에 보시면 1971년 9월 31일 새벽 2시에 출생했다고 나와있네요.

- 미자, 눈이 휘둥그레 진다.

계원 : 그리고 출생증명서라는 것은 병원이나 조산소에서 발급을 하는 겁니다. 여기 첨부된 출생 증명서에도 9월 31일로 되어 있어요. 이것 참 믿기 힘든 일이네요.
미자 : ......
영주 : ......
계원 : 그래서 제가 내린 결론은 아마 출생증명서에 잘못 기입된 것을 부친께서 그대로 옮겨 적으셨고, 그게 지금까지 온 게 아닐까 생각 되네요.
영주 : 출생신고를 하면 호적에 그대로 올라가나요?
계원 : 이걸 보세요. (자기 책상에서 서류 파일을 가져온다) 출생신고가 되면 두 군데에 기록이 됩니다. 하나는 말씀하신대로 호적에 그대로 올라가구요, 다른 하나는 (가져온 파일을 열며) 개인별 주민등록표라는 것인데, 주민등록증이 발급 되기 전까지 여기 등재되어 있다가 스무 살이 되면 이것을 근거로 주민등록증이 발급되는 거죠.
미자 : 혹시 그 때 출생신고를 처리하신 분이 계신가요?
계원 : 벌써 퇴직하셨죠. 그보다도 출생증명서를 작성한 조산소에 가서 한번 여쭤보세요. 산파 할머니가 아직 계실 거예요. 국도 건너편 마을 입구에 식당이 하나 있을 거예요.

- 설국 동사무소 현관. 계원이 배웅을 한다.

계원 : 제 말이 아마 맞을 거예요. 9월 30일부터 진통이 시작되어서 10월 1일 새벽 2시에 낳았는데, 그 할머니가 9월이 큰 달인지 작은 달인지 헷갈리신 거겠죠. 그럼 안녕히 가세요.

- 영주가 마을을 휘휘 둘러본다. 마을 너머 멀리 아파트 공사가 한창이다. 그 앞에 도로 공사가 진행 중이고 벌써 부동산 중개소가 여러 개 영업중이다.

- 미자가 앞장 서가는 영주를 뒤에서 본다. 아니 훑어 본다. 이해가 안되는 표정으로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훑는다.

- 둘이 나란히 걷는다.

미자 : 그럼 철 들고는 처음 오신거예요?
영주 : 모르겠어요. 그런 것 같기도 하구요.
미자 : 어릴 때 어디 살았는지 기억도 안 나겠네요.
영주 : 길가 집에서 살았대요. 아버지가 장사를 하셨으니까.
미자 : 그런데, 정말 생일이 9월 31일이라고 생각해요?
영주 : 어느 쪽이냐 하면, 저는 우리 어머니 말씀을 믿는 쪽이예요.
미자 : 어머니가 정말 31일이래요?
영주 : 제가 어릴 때 내 생일잔치를 언제 할거냐고 물으면 엄마는 9월 31일이래요. 30일이 되서 언제하느냐고 물으면 내일이래요. 그 다음날 오늘이 생일잔치하는거 맞냐고 물으면 어제 지나갔대요.
미자 : 에이, 그건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는 거랑 똑같잖아요.
영주 : 언제였든지 태어 났으니 지금 걷고 있겠죠.
66. 식당, 조산소

- '화정식당'이라는 간판 앞에 도착한 두 사람. 간판 아래에 조그만 수제 간판으로 '산파'란 글과 전화번호가 조악하게 적혀있다. 식당 안에는 40대 아주머니가 야채를 다듬고 있다.

미자 : 조산소 찾아 왔는데요.
아주머니 : (미자에게) 산모세요?
미자 : (얼굴을 붉히며) 그런게 아니라요, 뭐 좀 여쭤볼게 있어서요.
아주머니 : 그래요. (주방쪽을 향해) 엄마!

- 주방쪽 선반 아래에서 한 노파가 고개를 든다. 키가 꽤나 작지만 몸놀림은 그리 둔하지 않다.

- 노파의 뒤를 따라 식당 뒤를 거쳐 본채로 들어간다. 노파의 방인 듯한 곳으로 들어간다. 노파가 작은 장을 열어 공책 몇권을 꺼낸다. 그 안에 영수증과 같은 것이 다닥다닥 풀먹여 붙어 있다.

노파 : 이것이 날짜여. 이 옆이 산모 이름. 그 옆이 보호자의 이름. 그리고 이 옆에다가 인감도장을 찍는데, 그려야 산모나 아기나 다 아무일 없다는 걸루다가 증명을 하는 것이여. 그때만 해도 애 낳아서 업고 가다 죽어버리는 애가 더러 있었거든.

- 미자와 영주, 귀를 기울인다. 노파가 종이를 넘긴다.

노파 : 71년 9월이라...... 자, 이것이 부모님 함자가 맞나 함 봐봐.
영주 : (확인한다) 네, 맞아요.
노파 : 여기 나와 있네. 31일 축시생이네.
미자 : 할머니, 9월이 작은 달이잖아요. 30일까지가 마지막인데. 이거 잘못 적으신거죠?
노파 : (순순히) 어구야. 그렇구나. 내가 잘못 적었던 모냥이네.
- 미자와 영주의 얼굴에서 약간의 미소가 번져나간다. 노파가 공책을 다시 넘긴다.

노파 : 가만 있어봐라. 아냐, 9월 31일이 맞어.

미자 : (놀라며) 네?
노파 : 이 보소. 내가 9월 30일에도 애를 받았고, 10월 초하루날도 애를 받았어.

- 미자와 영주가 직접 공책을 넘겨가며 확인한다. 분명히 다른 이름과 다른 도장이 찍혀 있다.

노파 : 내가 그 때 이마을 저마을 댕길 때라서 하루에 둘은 못받어. 가만히 있어봐라. 몇 년 생이라고 했지?
영주 : 71년이요. 1971년.

- 곰곰이 생각에 잠긴 노파. 손가락으로 셈을 해본다. 잠시 후 희미하게 웃는다.

노파 : 맞어 자네가 31일에 태어난 게 맞어.

- 미자와 영주,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다.

67. 식당 (밤)

- 어느덧 땅거미가 깔렸다. 미자와 영주가 조산소와 붙어 있는 '화정식당'에서 닭도리탕을 사이에 두고 앉아 있다. 미자가 영주의 얼굴을 빤히 쳐다 본다. 빤히라기 보다는 찬찬히 뜯어 보고 있다.

영주 : 뭘 그렇게 봐요.
미자 : (깜짝 놀라며) 네? 아무것도 아니예요.
영주 : 드세요. 저 때문에 고생 많으셨어요.

- 미자가 무슨 말을 할까 말까 고민한다. 은근히 흘려 본다.

미자 : 저기 저 할머니 말을 믿어요?
영주 : 예.
미자 : 어떻게요?
영주 : 저 할머니도 그러시고, 서류에도 그렇게 되어 있으니 9월 31일이 맞나 보죠.
미자 : 어떻게 9월에 31일이 있을 수 있어요. 없던 하루가 생겨 난 것도 아니고.
영주 : 그럼 아닌가 보죠.
미자 : 참 신기해요. 어떻게 자기 생일에 그렇게 무심하세요?
영주 : 저는요, 제 생일 보다도 이 설국이라는 동네가 너무 신기해요. 도시에서 전철을 탔는데 내리니까 시골이잖아요.

- 노파가 부추전이라며 한 접시를 갖다 준다.

미자 : 혹시 남다른 점이 뭐 있어요?
영주 : 왜요?
미자 : 있지도 않은 날에 태어난 사람은 뭐가 달라도 다를 거 아녜요.
영주 : 없어요.
미자 : 한 가지는 있네요. 참 웃기게 생겼어요. (웃는다)
영주 : 아, 하나 있다. 저 남들보다 필름 잘 끊겨요.
미자 : 예?
영주 : 술이 좀 들어갔다 싶으면 어디로 어떻게 집에 왔는지 몰라요. 그래도 꼭 집에서 일어나더라구요.
미자 : 그거 참 유익한 거네요. 기억하기 싫은 것도 기억 못할 거니까.
영주 : 에이, 그래도 증거가 다 남잖아요. 아침에 일어나면 속쓰리죠, 신발에는 오바이트 자국 다 묻어있죠, 때때로 상처도 나 있죠.
미자 : 그런데, 정말 필름 끊기면 아무것도 생각 안나요?
영주 : (진지하게) 컷트 컷트로 기억이 난다, 그러면 아시겠어요? 그러니까 기억이 영화처럼 주욱 연결되는 게 아니라 사진처럼 한 장면 씩 남아 있는 거예요. 말하자면 노래방 컷트가 한 장 기억이 나요. 그럼 틀림없이 노래방을 들렸다는 말인데, 어떻게 갔다든지, 얼마나 있었다든지 하는 건 기억이 없는 거죠.
미자 : 어머, 저도 그런 적 있어요. 저는 술 먹어서 그런게 아니구요, 이런 부추전을 보면, 옛날 우리집 마당에서 곤로에다 굽던 부추전이 색깔까지도 분명하게 기억이 나요. 그 때 분위기며, 들렸던 소리며, 냄새까지 다 또렷해요. 그런데 더 이상은 기억이 안나거든요.
영주 : 맞아요. 그런 거예요. 그러니까 자기가 먼저 의심을 하는 거예요. 내가 정말 노래방에 들렀나, 아니면 내가 그 때 부추전을 구웠나, 그건 한 달 전에 본 부추전이 아닌가, 이런 의심이요.
미자 : 맞아요, 맞아. 그래서 나이 들수록 의심만 늘고, 추억은 사라지고, 그러는 모양이에요. (술잔을 들고 수줍게 영주를 바라본다) 한 잔 하실래요?
- 두 사람 다 소주 한잔씩 비운다. 갑자기 가까워졌다는 느낌이 들어, 실소가 퍼진다.
미자 : 혹시 오늘 강원도에 눈내린 거 아세요?
영주 : 눈이 왔어요? 이런 봄날씨에요?

68. 설국역 앞

볼이 발그레하게 달아 오른 미자. 전철역으로 올라가는 영주에게 인사한다.

69. 동대 본부

- 퇴근하려는 동대장이 우편물 수령함을 확인한다. 그리고 그 중 하나를 들고 자리로 온다.

- 봉투의 겉봉에 발신자는 심선미 기상 캐스터라고 적혀있고 하단에 자신의 이름이 적혀 있다. 칼로 반듯하게 오려 개봉한다. 속지를 펴보니 상단에 동대장의 이름이 타이핑 되어 있다. 편지를 주셔서 감사하다, 성실히 노력하여 더 좋은 정보를 제공하겠다, 더 상냥하고 편안하게 진행할 예정이다, 등과 같은 내용과 그녀의 모습과 닮은 캐릭터가 깨끗하게 인쇄되어 있고, 맨 하단에 본인의 사인이 적혀 있다. 다른 종이들이 나온다. 방송국의 인터넷 사이트를 이용하는 방법, 회원이 되면 받을 수 있다는 물품정보 카탈로그, 그리고 회원 가입 신청서 등이 동봉되어 있다. 사람의 글씨는 싸인 한 군데 뿐이다.

70. 동대장의 집

- 동대장은 마루방에서 발톱을 깎고 그 옆에 아내가 빨래를 개고 있다.

아내 : 오늘 의사가 그럽디다. 이제 환자한테도 숨기지 마라구요.
동대장 : (말이 없다)
아내 : 드시고 싶으신 것, 하고 싶으신 것 다 해드리라고. 그리고 자식들도 마음 단단히 먹어야 된대요.
동대장 : (말없이 고개만 끄덕인다)

- 톡톡 하는 발톱 깎는 소리가 정적을 깬다. 동대장, 발톱을 다 깎고 난 다음 발 뒤꿈치를 들여다 본다. 뒤꿈치와 발바닥에 붙어 있는 굳은살을 손톱깎이로 뜯는다.

71. 미자의 방

- 자고 있는 미자의 모습. 어제의 술 때문인지 약간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눈감고 있다. 마루에서는 TV에서 아침뉴스가 한창이다. 심선미 기상 캐스터가 일기 예보를 전한다.

기상캐스터 (목소리) : 스키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어쩌면 봄스키를 즐기실 수도 있겠습니다. 어제에 이어 오늘 새벽에 또 강원도에 눈이 내렸습니다. 4월에 눈이 이틀 에 걸쳐 내린 것은 기상대가 생긴 이후 처음 있는 일입니다.....

- 이불 속에서 눈을 번쩍 뜨는 미자

인써어트 - 동사무소 전경

72. 동사무소 - 사무실 (아침)

- 출근하는 사람들 사이에 미자가 보인다. 동대장도 출근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출근하는 그 시간이다.

- 사무실의 분주한 아침 정경. 그 중 경숙의 자리에 미자가 앉아 있고 미자의 자리를 희영이 대신하고 있다.

나레이션 (미자) : 오늘은 경숙 언니의 송별회가 있는 날 이에요. 이제 경숙 언니는 여기서는 볼 수 없게 되었네요. 그리고 저는 오늘부터 호적업무를 시작합니다. 오늘도 강원도에 눈이 왔다고 합니다. 어제는 9월 31일에 태어난 사람이 다녀 갔습니다. 오늘은 또 어떤 사람이 찾아 올까요.

- 미자의 동창생 윤혜미가 들어온다. 초췌한 모습이다.

미자 : 안녕하십니까. (혜미를 알아본다) 어, 혜미야.
혜미 : (참담한 표정으로) 미자야!

73. 동대본부 - 동대장실

- 동대장이 담배 케이스를 꺼낸다. 니코틴 흡수용 플라스틱 파이프를 필터에 끼우고 불을 붙인다.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린다. 경숙이다.

경숙 : 동대장님, 안녕하세요.
동대장 : 어, 미스 오. 웬일이야?
경숙 : 저 작별 인사 드릴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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