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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의원제왕제?

Posted May. 12, 2015 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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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병석 국토교통부 철도국장은 최근 한 달 새 여야 국회의원 100여 명을 만났다. 의정보고서용으로 금배지들과 찍은 사진은 이루 헤아릴 수도 없다. 철도국장 주가가 급등한 이유는 올해 말까지 정부가 성안해야 하는 제3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 때문이다. 자신의 지역구에 내가 이렇게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생색내기용이다.

사업 예산은 30조 원에 불과한데도 몰려든 의원들의 민원 예산만 벌써 120조 원을 넘겼다. 고민 끝에 정부는 국가철도망 구축계획 발표를 아예 내년 4월 총선 이후로 넘기는 방안을 고민 중이다. 슈퍼갑() 국회를 감당할 수 없어서 나온 고육지책이다.

입법권은 종종 3권 분립의 정신을 무너뜨린다. 본래 시행령 제정은 정부의 고유 권한이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에 필요하다는 이유를 내세워 관련 특별법 시행령 제정에 국회가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국회의원들이 말을 듣지 않으면 시행령을 법령으로 승격해 바꾸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 인준이 파행되면서 대법관 공백 사태는 100일 넘게 지속됐다.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소속 한 의원은 취중에 일선 경찰서 지구대에 나타나 바바리맨 수사를 지휘하기도 했다. 야당 지도부 일원의 막말은 언어 공해 수준이다. 이미 만연한 입법 권력의 폭주를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대의민주주의의 다수결 원칙을 팽개치고 여야 합의에만 매달리는 국회선진화법 때문에 여야의 야합 구조는 일상화됐다.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이 6일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가 국회 규칙에 반영되지 않을 경우 연말정산 환급을 위한 소득세법 개정안 등 시급한 민생법안을 처리할 수 없다고 한 것은 국회선진화법을 핑계 삼은 입법 횡포라는 지적이 많다. 이러니 제왕적 대통령이 아니라 제왕적 국회가 문제라는 말이 나온다.

동아일보는 11일 제왕적 입법권의 남용 실태와 그 구조적인 원인을 집중 진단했다. 전문가들은 입법권력이 스스로 자정 작용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국무총리나 내각의 장관들에 대해서는 현미경 들여다보듯이 철저한 검증을 하면서도 정작 자신들의 문제에 대해선 선출직이라는 이유로 면죄부를 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국회의원의 정당별 공천심사 단계에서부터 자질에 대한 최소한의 검증은 이뤄져야 한다는 분석도 많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국회의원들도 스스로 검증과 견제를 받을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갖추는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며 시민단체와 유권자들도 진영 논리에서 벗어나 권력 감시와 선거를 통한 국회의원 심판 역할을 충실히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배혜림 beh@donga.com홍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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