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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맨과 한화맨의 미생

Posted November. 29, 2014 0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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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그룹에선 비주력 계열사를 후자()라고 부르곤 한다. 삼성전자()를 전자()로 칭하면서 나머지는 쭉정이에 빗대는 자조 섞인 말이다. 삼성전자가 워낙 잘나가다 보니 이런 우스갯소리까지 생겼다. 한화그룹에 팔린 삼성테크윈 삼성종합화학 등 4개사도 그룹에선 서자() 설움을 받았다.

삼성이라는 큰 우산 밑에 있다가 하루아침에 한화로 소속이 바뀌는 삼성테크윈 등 임직원 7500명의 박탈감이 심하다. 그룹 서열 재계 1위에서 9위로 떨어진다니 직원들이 웅성거릴 만도 하다. 삼성에서 합격통지서를 받은 신입사원들로선 날벼락일 수도 있겠다. 삼성에서 오너가 결단을 내렸으니 저항하기도 쉽지 않다. 이들이 한화를 그만두면 앞으로 3년 동안 삼성에 재취업할 수 없도록 못 박았다니 졸지에 친정과 연을 끊고 출가외인()이 돼버린 것이다.

이건희 삼성 회장의 신경영 모토가 마누라, 자식 빼고 다 바꾸라였다. 연줄 없어도, 지방대 출신도 열심히 하면 임원이 될 수 있는 삼성에선 경쟁은 치열하지만 협동은 잘 되지 않는 분위기다. 한화그룹의 사훈은 도헌정이다. 도전 헌신 정도()를 줄인 말이다. 김승연 회장은 계열사 사장들에게 배신하지 말라고 입버릇처럼 되뇐다고 한다. 1952년 한국화약을 설립한 후 계열사 대부분을 인수합병(M&A)으로 키운 기업문화는 삼성과 대비된다. 재계에선 김 회장을 M&A의 대가()로 부를 정도다. 자기 손으로 일군 기업이 하나도 없다.

2002년 신동아그룹의 대한생명을 인수해 한화생명으로 사명을 바꾼 지 12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융화가 잘 안 된다는 얘기도 있다. 어렵게 서울대 들어갔는데 학과를 없앤다며 중위권 대학으로 보내는 격이라는 수군거림도 있다. 하지만 소꼬리보다 닭 머리가 나을 수도 있다. 삼성에선 찬밥인 화학과 방산이 한화에선 적자()다. 요즘 직장인들의 애환을 다룬 드라마 미생()이 인기인데 삼성맨들도 한화에 가서 각자의 미생을 써나갈 것이다.

최 영 해 논설위원yhchoi6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