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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은 왜 마이 웨이에 박수 쳤을까

Posted June. 24, 2013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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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명의 미국인이 북한의 한 식당 입구에서 티격태격 농담을 주고받고 있다. 한 명은 할렘 글로브트로터스 소속 농구선수이고 다른 한 명은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이다. 이들 앞에는 뱀술이 놓여 있다. 술이 담겨 있는 병에는 진짜 뱀 두 마리가 들어 있다. 영화 감독이 힘나게 하는 데 최고이니 한 잔 마시라고 권하자 농구선수는 징그러워 못 마시겠다고 고개를 젓는다. 둘 다 뱀술을 보고 신기해하는 표정이다.

올해 2월 미 프로농구(NBA) 스타 데니스 로드먼과 묘기농구단 할렘 글로브트로터스 농구선수들이 북한을 방문해 김정은을 만나고 농구교실을 열었다. 함께 방문한 다큐멘터리 제작팀은 이들의 방북 활동과 북한의 생활상을 카메라에 담았다. 바이스(VICE)라는 제목의 그 다큐멘터리가 4개월여 만인 14일 HBO 케이블 채널을 통해 미 전역에 방송됐다.

바이스는 원래 세계 곳곳의 위험 지역을 취재해 방송하는 시리즈물이다. 온라인용으로 제작됐는데 올해부터 HBO 케이블 채널로 방송되고 있다. HBO는 올해 예정된 12회 시리즈의 대미를 장식하는 마지막 회에 북한편을 방영했다. 지난달 말 기자들을 상대로 북한편 특별 시사회까지 열었다.

당초 바이스 북한편에는 북한에 호의적인 내용이 많이 담길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제작팀은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위기가 고조되는 상황에서 북한 당국의 정식 초청을 받고 방문해 김정은까지 만나는 행운을 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30분간 방영된 프로그램 곳곳에는 북한에 대한 비판과 북한은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나라라는 답답함이 여기저기 배어 있었다.

북한 측 인솔자는 제작팀이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당신들이 싫다는 까칠한 발언과 함께 언제 카메라를 켜고 꺼야 할지 일일이 지시했다고 라이언 더피 감독은 밝혔다. 또 제작팀은 북한 측 지시를 어기면 감옥에 갈 수 있다는 식의 경고를 들었다고 한다.

다큐멘터리에서 가장 흥미로운 장면은 로드먼 일행이 북한 학교를 방문했을 때였다. 학생들은 모두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지만 마우스만 이러 저리 움직일 뿐 진짜로 컴퓨터를 사용하는 학생은 한 명도 없었다. 또 이들이 찾아간 수족관과 서양식 슈퍼마켓에서는 북한 주민들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이 같은 시설은 외국인에게 보이기 위한 설정된(staged) 모습이었다고 제작팀은 전했다.

로드먼이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일 것 같지만 실제로는 별로 등장하지 않는다. 그가 나오는 시간은 합쳐 봐야 5분도 되지 않는다. 로드먼은 별도의 다큐멘터리용 인터뷰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제작팀에 따르면 로드먼은 방북 이후 자신에 대한 비판이 높아지자 자신이 나오는 분량을 줄여 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농구 관람 후 김정은이 로드먼 일행을 위해 마련한 만찬에 카메라의 접근은 허용되지 않았다. 제작팀이 밝힌 뒷얘기에 따르면 로드먼이 이 자리에서 프랭크 시내트라의 명곡 마이웨이(My Way)를 부르자 김정은은 열렬한 박수를 보냈다고 한다. 또 미니스커트 차림의 북한 여성들로 구성된 록밴드는 미국 영화 로키의 주제가를 연주하며 흥을 돋웠다.

다큐는 길거리에는 미국을 쳐부수자는 구호가 가득한 나라에서 정작 최고 지도자는 미국 음악에 즐겁게 박수 치고 미국 스포츠에 열광하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내레이션으로 끝을 맺는다.

미국에서 오후 11시에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가 이 다큐멘터리를 본 기자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과연 김정은이 내 방식대로 살아왔다. 후회는 없다는 내용의 마이웨이를 들으며 무슨 생각을 했을지 궁금했다. 혹시 핵무기 개발로 가는 길이 옳다는 자아도취에 빠지지는 않았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