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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년 보신각 종지기 가문, 손자가 맥이었으면”

“170년 보신각 종지기 가문, 손자가 맥이었으면”

Posted January. 02, 2017 07:12   

Updated January. 02, 2017 0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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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 24시간, 퇴근도 없이 내내 보신각종 관리소에서 먹고 자고 했어요. 당시엔 교대근무가 없었으니까. 혹시 ‘종님’에게 무슨 일 생길지 모른다고, 40여 년을 거기 사셨네요.”

 고 조진호 보신각종 관리소장의 부인 정부남 씨(86). 정 씨의 남편인 조 소장은 서울 종로구 보신각에서 44년을 보낸 종지기다. 정 씨는 “시집와서 들었는데 정확한 것은 모르지만 남편 증조할아버지부터 4대가 170년간 종님을 모셨다고 하더라”라고 말했다. 정 씨는 25세 되던 1956년 이 집안의 며느리가 됐다.

 “처음 중매가 들어왔을 때는 시댁이 무얼 하는 집인지, 종지기란 게 뭔지도 몰랐어요. 와서 보니 시아버지가 보신각종을 관리하는 공무원이시더라고.” 정 씨의 시아버지 고 조한이 씨는 영친왕의 호위군관 출신이라고 했다. 6·25전쟁 때도 피란 가지 않고 종을 지키다 부인, 즉 정 씨의 시어머니가 한쪽 손을 잃는 부상을 입기도 했다.

 시아버지는 돌아가시는 날까지 종 걱정만 했다고 한다. “시아버지가 남편에게 ‘네가 가업을 이어야 한다’고 하셨어요. 결국 남편이 사업을 포기하고 본가로 들어왔죠. 그때는 시할아버지도 하셨고, 시아버지도 하셨다니까 그러려니 했어요.”

 남편은 1962년 부친상을 마치고 보신각종 사무실로 들어갔다. 말이 사무실이지 가건물에 가까웠다. 책상도 따로 없어 판자를 두고 썼다.

 “주변을 지나는 사람들이 화장실인 줄 알고 들어왔다 놀라 나가는 경우도 많았어요.” 하지만 남편은 군소리 한 번 안 했다고 한다. “그 ‘하코방(판잣집)’에서 매일 씻고 자고, 아침저녁으로 종님을 청소했어요. 결국 나도 매일같이 보신각에 출근했죠. 남편 도시락 싸들고요.”

 근무 환경만 열악한 게 아니라 일도 고됐다. “몰래 들어와 종 친다는 사람들 때문에 식겁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어요. 제야의 타종같이 행사가 있는 날은 밤을 꼬박 새웠고요.”

 취객 때문에 팬티 바람으로 뛰어나가 몸싸움하다 경찰서에 간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렇게 일흔이 넘은 나이까지 종님을 지키던 남편은 2006년 12월 옆구리가 불편하다며 찾은 병원에서 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이미 손쓸 수 없는 상황. 44년 만에 사무실을 떠나 입원했지만 열흘 뒤 남편은 거짓말처럼 세상을 떴다. 평생 종지기의 공로를 인정받아 제야의 종을 타종하기로 한 날을 불과 일주일 앞둔 시점이었다.

 2015년 12월 31일 정 씨는 남편 대신 제야의 종 타종자로 선정돼 다른 10명과 함께 타종했다. 지금도 제야의 타종 행사 때면 남편 생각에 눈물이 나지만 5대 종지기로 선정된 남편의 제자 신철민 서울시 주무관을 생각하면 든든하다고 한다.

 “막내아들이라고 불러요. 관리소 사무실도 (신 주무관이) 나서서 2층으로 다시 세웠어요. 우리 손자에게 6대 종지기를 물려줘 스승의 대를 잇겠다고 하네요.” 정 씨의 손자는 이제 스무 살이다. 손자가 또 종지기가 돼도 괜찮으냐고 묻자 정 씨는 “손자가 싫다고는 안 하던데?” 하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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