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to contents

황선홍이 홍명보 월드컵축구 감독에게 보내는 편지

황선홍이 홍명보 월드컵축구 감독에게 보내는 편지

Posted May. 23, 2014 08:52   

中文

친구 명보에게.

너를 대표팀에서 만난 지도 벌써 24년이 넘었구나. 이탈리아 월드컵을 앞두고 막내로 태극마크를 달고 한방을 쓰면서 미래를 꿈꾸던 시절이 새삼 그립다. 볼 심부름 등을 하며 대선배들 틈 속에서 몰래 울기도 했고 웃기도 했지. 태극마크는 우리에게 자부심이면서도 엄청난 부담이었다. 이겼을 때의 기쁨은 말로 표현 못 할 정도로 좋았지만 졌을 때 쏟아지는 비난에 가슴에 멍이 수만 번 들어야 했지. 공격수인 나는 결정적인 찬스를 못 살렸을 때, 수비수인 너는 결정적인 실수를 했을 때 온갖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그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가로 짊어져야 할 우리의 운명이었지.

며칠 후 브라질로 떠나는 명보 너를 볼 때 한편으로 너무 큰 짐을 어깨에 지게 한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다른 때와 달리 국가 전체가 대표팀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너로서는 세월호 참사 여파로 슬픔에 잠긴 국민들에게 기쁨과 희망을 던져줘야 하기에 역대 그 어떤 월드컵 때보다 심적인 부담감이 클 것이다.

하지만 태극마크를 단 이상 감내해야 한다. 그리고 명보 너이기에 믿는다. 넌 항상 위기에 강했다. 선수 때도 그랬고 지도자로서도 그랬다. 대표선수로 오래 활약했고 훌륭한 감독 밑에서 잘 배웠다. 무엇보다 넌 늘 더 큰 것을 얻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2009년 이집트 20세 이하 월드컵, 2010년 광저우 아시아경기, 2012년 런던 올림픽. 대회에 나갈 때마다 힘든 상황이 닥쳐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왔지만 그때마나 넌 잘 이겨냈다. 올림픽 사상 첫 동메달 획득도 너의 위기관리 능력이 탁월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상황은 쉽지 않다. 우리가 상대할 H조의 러시아 알제리 벨기에 모두 강팀이다. 장밋빛 전망보다 다소 비관적인 전망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월드컵에 나갈 때마다 그랬다. 이런 안 좋은 평가 속에서도 2002년 4강 신화를 이뤘고,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사상 첫 원정 16강 진출도 이뤘다.

명보 너에게 이번 월드컵은 또 하나의 도전이다. 그동안 보여줬듯 소신을 가지고 밀고 나가면 충분히 실의에 빠진 국민들을 기쁘게 해줄 수 있을 것이다. 난 너를 믿는다.

황선홍 포항 스틸러스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