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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햄버거가 무서워

Posted July. 28, 2002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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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미국 캘리포니아의 프리몬트 고교에선 문화 전쟁이 벌어졌다. 점심시간에 아이들이 학교 식당 대신 줄지어 패스트푸드점에 가서 햄버거를 사먹고 온 거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게 햄버거인데 이제 학교에서 그걸 안 판다지 뭐예요. 아이들의 볼멘 소리다. 학생들의 비만과 당뇨를 막기 위해 학교 측이 비장하게 내놓은 정책이 정크푸드 교내 판매금지였다. 하지만 이미 이에 중독된 학생들은 햄버거를 끊고는 못사는 모양이었다.

미국 학교음식서비스의 조사에 따르면 공립고교의 30%는 아예 패스트푸드점이 학교에 들어와 햄버거를 판다. 어린이 청소년 4명 중 1명은 뚱뚱하고 8명 중 1명은 병적 비만인 것도 패스트푸드가 큰 몫을 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어려서부터 패스트푸드점에서 주는 장난감에 홀려 햄버거에 인이 박힌 미국 성인들은 오늘도 4분의 1이 패스트푸드점을 찾아 1주일에 햄버거 3개, 프렌치프라이 4통을 먹는다. 패스트푸드 네이션이란 책을 보면 여기 쏟는 돈이 고등교육이나 컴퓨터 자동차에 들이는 것보다 많다.

그냥, 맛있게, 많이 먹는 정도면 굳이 사람이 햄버거를 무서워할 이유가 없을 터. 문제는 이들 회사가 판매량을 늘릴 목적으로 인간을 유혹한다는 데 있다. 보통 크기의 햄버거 1개면 충분할텐데도 패스트푸드점에선 사이즈를 키워 싸게 판다. 사실 유혹 중에서도 거부하기 힘든 게 먹는 유혹이 아니던가. 그러니 하루 22002500면 충분할 어른이 3800씩 먹고 살이 찔 수밖에 없다고 음식 정치학을 쓴 뉴욕대 매리온 네슬레 박사는 개탄한다. 게다가 패스트 푸드라는 이름을 보라. 빨리 먹어치울 수밖에 없다. 우리 뇌가 배부르다고 느끼기 전에 다 먹게 되니 더 먹고 비만과 성인병을 얻을 수밖에.

미국의 한 비만남성이 패스트푸드 때문에 당뇨와 비만, 심장병이 생겼다며 업체 4곳을 상대로 소송을 냈단다. 회사 측에서는 누가 먹으랬냐고!하는 모양인데 전 세계인을 상대로 엄청난 마케팅 비용을 퍼부어 왔으면서도 그렇게 오리발을 내밀면 안 되지 싶다. 그나저나 이건 강 건너 불이 아니다. 우리 아이들도 깨끗하고 세련된 패스트푸드점에서 햄버거 먹는걸 엄청 좋아하지 않나. 그렇다고 못 먹게 할 수도 없고, 그들 업체에선 칼로리는 줄이면서 영양가를 높인 제품을 만들 수는 없는지. 아니면 또 엄마들이 나서서 햄버거보다 맛있는 우리 음식으로 아이들 입맛을 돌려놓아야 하는 건가?



김순덕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