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곡식에 싫증을 내는데, 선비는 겨조차 마다하지 못한다.
흙벽에는 비단 장식이 둘러졌는데, 선비에게는 짧은 베옷조차 없다.
저들이 뜻을 얻었을 때에는 나를 돌아보지 않더니,
하루아침에 뜻을 잃고 나면 그 꼴이 또 어떠하겠는가.
그만두자. 아아, 이 비루한 자들이여.
(馬厭穀兮, 士不厭糠籺. 土被文繡兮, 士無裋褐. 彼其得志兮, 不我虞.
一朝失志兮, 其何如. 已焉哉, 嗟嗟乎鄙夫.)
―‘곡식이 싫증난 말(마염곡·馬厭穀)’ 한유(韓愈·768∼824)
곡식은 말에게 가고, 겨는 사람에게 간다. 사회가 뒤집혔다는 표현을 이보다 더 선명하게 할 수 있을까. 한유의 시는 그 불편한 장면을 들이민다. 말은 곡식이 물릴 만큼 배불리 먹는데, 선비는 겨조차 마다하지 못한다. 저들의 집 안 치장은 화려한데 선비는 해진 옷 하나 변변치 않다. 시인은 유향(劉向)의 ‘신서(新序)’에서 모티프를 끌어왔다. 거기에는 죄를 얻어 쫓겨나는 재상이 문객들에게 누가 따라가겠느냐고 묻자, 한 사람이 “평소엔 개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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