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미국 화가 모리스 루이스는 새로운 회화 방식과 재료를 실험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당시 여느 화가들처럼 그 역시 잭슨 폴록이 이룩한 추상표현주의 유산의 계승과 극복에 몰두하고 있었다. 1953년 루이스는 헬렌 프랭컨탈러의 작업실을 방문했다가 유레카를 외쳤다. 그녀의 물감 얼룩 그림에서 답을 찾았기 때문이다.
이 그림은 루이스의 대표작 ‘펼쳐진’ 연작 중 하나다. 선명한 색상의 물감들이 캔버스 양옆에서 가운데 아래로 강줄기처럼 흘러내린다. 캔버스는 밑칠도 되지 않았고, 화면 가운데는 텅 비었다. 루이스는 묽은 아크릴 물감을 천에 부은 뒤 자신이 의도한 방향으로 흐르도록 캔버스를 움직였다. 화가는 그림 밖에서만 개입할 뿐 화면 안에는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물감을 흩뿌리는 폴록의 액션페인팅과 다른 점이었다. 새로운 기법은 찾았지만 이번엔 재료가 문제였다. 아크릴 물감을 묽게 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고민 끝에 루이스는 1958년 대형 물감 회사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편지를 써 보냈다. 2년 후 회사는 놀랍게도 루이스를 위해 특별히 제작한 아크릴 물감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자신만의 무기를 손에 넣은 화가는 1960년 ‘펼쳐진’ 연작을 야심 차게 선보였다. 다작주의자답게 이듬해까지 무려 150점을 완성했다. 벽화 크기의 캔버스를 사용했음에도 말이다. 더 나은 작품 구현을 위한 재료의 실험은 계속됐고 루이스는 마치 실험 대상을 분류하듯 작품마다 알파, 감마, 베타, 델타 등 그리스문자 제목을 붙였다.
새로운 재료 실험에 열정을 바쳤던 루이스는 어떻게 됐을까. 얼룩기법 발견 후 9년이 지난 1962년, 안타깝게도 암으로 갑작스레 사망한다. 독한 화학용품과 물감 희석제에 과다하게 노출된 결과였다. 비록 50년의 짧은 생을 살다 갔지만 그의 혁신적인 기법과 실험정신은 현대의 많은 화가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