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to contents

오피니언] 알몸에 정신 나간 사회

Posted April. 08, 2013 07:42,   

ENGLISH

전남 목포에서 정신이 온전치 못한 20대 여성이 알몸으로 대로변을 걸었다. 행인 50여 명과 수십 개 상점의 주인이 이 광경을 목격했다. 6차로인 이 길을 지나친 수백 대의 차량 운전자 역시 민망한 상황을 지켜봤을 법하다. 그런데 상점 종업원 이모 씨(29) 한 사람만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셔츠만 입고 있던 그는 지나가는 여성에게 점퍼를 빌려 달라고 부탁하고, 여성의류 판매점을 세 곳이나 찾아가 저 여성을 도와 달라고 했지만 모두 거절당했다. 이 씨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이 속옷을 사서 입히고 경찰 점퍼로 몸을 가려 차에 태우고 나서야 소동은 진정됐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었다. 최소 10여 명이 이 장면을 사진과 동영상으로 찍어 인터넷에 올렸다. 배달 가다 오토바이를 멈추고 촬영 삼매경에 빠진 사람도 있었고, 차로 뒤쫓아 가며 찍은 동영상도 인터넷에 떠돈다. 7일 오전까지도 포털 사이트에는 목포 연관 검색어로 나체녀, 여성 동영상 등이 오르고 당시 사진도 게시됐다. 댓글에는 잘 봤다, 고맙다는 글이 올라왔다.

미국 뉴욕에선 1964년 20대 여성 제노비스가 괴한의 흉기에 숨졌다. 자기 아파트 주변 대로에서 범인에게 쫓기는 35분 동안 이웃 주민 38명이 창가에서 이를 목격했지만 아무도 신고하거나 도와주지 않았다. 심리학자들은 살인에 개입하기 싫어서라든가 자신이 아니라도 누군가 도와줄 것이란 기대감 등을 원인으로 꼽았다. 남들도 가만있으니 심각한 상황은 아닐 거라고 오판한 탓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목포 사건은 제노비스 사례보다 뒷맛이 더 개운치 않다. 남의 곤경을 지켜만 보는 것도 비난받을 일인데 관음증에 이용했다. 제노비스 사례보다 개입한 사람이 더 많았고, 누군가 돕고 있었다는 사실까지 알면서도 결국은 포털의 눈요깃거리로 써 먹었다. 스마트폰 하나면 그 자리에서 세계를 향해 발신할 수 있는 이 시대의 부작용일지 모른다. 길가에서 심장마비가 오거나 대형 교통사고를 당하면 사진 먼저 찍으시고, 꼭 신고해주세요라는 안내가 뜨는 옷이라도 개발해 입고 다녀야 할까. 살기 위해서는.

이 동 영 사회부 차장 arg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