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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계좌 신고 안하면 처벌 법개정 추진 논란

해외계좌 신고 안하면 처벌 법개정 추진 논란

Posted March. 10, 2010 0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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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금융계좌를 당국에 신고하지 않으면 과태료를 부과하고 형사처벌까지 하는 제도 도입을 놓고 정부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해외재산은닉을 방지할 실질적 규제 방안이라는 국세청과 실효성이 없는 데다 선의의 피해자를 양산할 수 있다는 기획재정부가 맞붙고 있다.

논란을 일으킨 법안은 한나라당 이혜훈 의원이 민주당 우제창 의원 등 여야 의원 12명의 명의로 최근 대표 발의한 국제조세조정에 관한 법률 개정안과 조세범처벌법 개정안이다. 해외금융계좌 신고의무제를 핵심으로 하는 이 개정안은 지난달 23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에서 처음 논의됐다.

법안은 해외금융계좌를 보유한 한국 국적의 개인과 법인이 매년 6월까지 직전 연도 해외금융계좌 내용(금융기관명, 국가, 계좌번호, 금액 등)을 국세청에 신고하도록 의무화하고 지키지 않을 경우 형사처벌하는 게 골자다. 기한 내에 신고하지 않거나 허위 신고한 경우 1억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해당연도 계좌 최고잔액이 5억 원을 넘었을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거나 최고잔액의 20% 이하의 벌금을 가중 처벌한다.

이 의원 등이 밝힌 개정 취지는 세수 증대가 필요한 상황에서 역외탈루소득에 대한 세원 관리를 강화하는 게 부작용이 적고 조세정의에도 부합하는 가장 적합한 세수확보 방안이라는 것. 그동안 여러 차례 사회문제가 됐던 대기업 등의 해외재산은닉은 이를 방지할 규제 방안이 미비했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든다.

현재 한국은 외국환거래규정상 외환 유출입을 신고하는 제도가 있지만 개인이나 기업의 해외재산은닉, 소득탈루를 방지하고 적발할 수 있는 토대로서의 신고의무제도는 없다. 탈루 혐의자의 해외 자금이 확인돼도 소득 탈루와 연계됐다는 사실을 입증하지 못하면 처벌할 방법도 마땅치 않다. 하지만 이 제도가 도입되면 해외금융계좌 신고의무를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처벌할 수 있게 된다.

지난달 재정위 조세소위 논의를 시작으로 이 제도를 둘러싼 국세청과 재정부의 찬반 논쟁이 불붙는 양상이다. 두 기관은 조세소위 위원을 비롯한 재정위 소속 의원들에게 찬반 근거가 되는 자료를 제공하는 등 물밑 작업에 돌입한 것으로 전해졌다.

제도 도입 찬성의 논거는 현재 해외금융계좌의 세원 파악이다. 국세청은 현재 해외금융자산 관련 소득 탈루의 적발과 규제는 정보수집 활동에 따른 비정기적인 기획세무조사에 주로 의존하는 상황이라며 미국 정부가 연방국세청(IRS)의 해외금융계좌신고제도(FBAR)를 적극 지원하는 것처럼 한국도 이 같은 방안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재정부는 장기적으로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며 조기 도입에 사실상 반대하고 있다. 재정부는 국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해외에 재산을 은닉해 탈세하는 경우 기존 법으로도 엄벌에 처해지지만 탈세범들은 이를 무릅쓰고 재산을 빼돌린다며 그들이 해외금융계좌 신고제도를 도입한다고 해서 신고를 할지 의문이라며 실효성 문제를 제기했다.

또 해외 주재원이나 유학생 등 재산은닉과는 상관없는 국민에게 실생활의 불편을 가져온다는 점도 들고 있다. 예컨대 유학생 학부모(2008년 기준 25만여 명)의 경우 탈루와 무관한 학자금 등을 송금할 경우 해외계좌 신고의무가 발생한다. 해외 주재원의 경우 기존에도 해외 원천소득을 국세청에 신고하고 있지만 추가적인 해외계좌 신고의무가 발생하는 등 선의의 납세자가 부주의나 법을 몰라 처벌되는 경우가 숱하게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달 첫 회의가 열렸을 때 조세소위 소속 의원들은 이 법안에 대해 명확한 견해를 표명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 법안을 대표 발의한 이 의원이 조세소위 위원장이라는 점에서 법안 추진이 향후 탄력을 받을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이 의원은 9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현재 한국 정부가 조세피난처로 불렸던 스위스와 국제조세공조협약(계좌 보유자의 이름과 계좌번호 등을 제공하면 해당 국가에 있는 계좌정보를 제공하는 협약)을 추진하고 있는데 이는 해외금융계좌 신고의무제를 도입했을 때 실효성을 가진다며 이 법안을 4월 임시국회에서 우선순위로 다룰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신고금액 기준을 연중 최고잔액 5억 원 수준으로 시행령에서 정하도록 하면 유학생이나 주재원 등 선의의 피해자가 생길 가능성은 없다고 강조했다.



황장석 suron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