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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암,아랫사람 전적으로 신뢰결재 직접 안해

호암,아랫사람 전적으로 신뢰결재 직접 안해

Posted February. 01, 201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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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전 사장은 1957년 삼성그룹 공채 1기로 입사해 1977년 당시 드물게 40대에 삼성물산 사장으로 발탁됐다. 삼성 공채 1기는 호암 이병철 창업자가 직접 면접을 통해 뽑았다. 손 전 사장은 1978년까지 삼성에 머물다가 효성중공업 사장, 동부그룹 부회장 등을 거쳐 현재는 세종재단 감사로 있다.

손 전 사장은 당시 소니 마쓰시타는 우리가 제휴하자고 하면 상대를 안 해줬는데 삼성전자가 훨씬 앞서 통쾌하다며 손바닥을 쳤다. 그는 1시간이 넘는 인터뷰에서 커피 한 잔도 다 못 비울 정도로 쉼 없이 예전 이야기를 들려줬다.

이틀 꼬박 면접 보기도

이병철 회장님은 직원 수백 명을 뽑을 때도 한 명 한 명 직접 면접을 보셨습니다. 제가 사장으로 있을 때도 이틀 꼬박 면접을 다 보셨죠. 질문은 사장단이 했는데 회장님은 가만히 보시면서 인성, 품성 등을 체크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만큼 인재에 참으로 관심이 많으셨습니다.

손 전 사장은 호암이 행여나 좋은 인재를 놓칠까봐 면접을 꼼꼼하게 지켜봤다고 했다. 보통 사장단은 필기시험 점수를 보고 면접 점수를 주는 경우가 많았지만 호암은 필기시험 결과를 보지 않았다. 면접만 집중하며 놓쳐서는 안 될 인재는 로, 회사와 잘 안 맞을 것 같은 사람은 로 표시했다. 필기 점수가 꼴찌여도 를 받은 인재는 통과했고, 필기 점수가 아무리 좋아도 를 받은 사람은 다시 한번 회의를 거쳐 결정했다. 이 모든 과정은 외부 청탁 없이 진행됐다는 설명이다.

회사에서 자리를 자주 옮긴 사람은 회장님의 총애를 받는 인재란 뜻이었어요. 유능한 인재는 나이에 관계없이 항상 중책을 맡기고 문제가 있는 곳에 보내셨습니다.

호암의 인재 양성법은 철두철미했다. 특히 사장단은 제품에 대한 기초적인 수치를 늘 머릿속에 입력하고 있어야 했다. 상품 가치를 알아야 전략을 제대로 세운다는 뜻에서였다.

사장에게 회사를 맡긴 뒤 1주일이 지나면 부르셨어요. 삼성은 제조업 중심이니 제품 총원가가 얼마냐, 그중 인건비는 얼마냐 등을 꼬치꼬치 물으셨죠. 잠시라도 머뭇거리면 낙제예요. 그 다음 주에 다시 불러서 물으셨죠.

세금 많이 내야 국가에 이바지

손 전 사장은 아랫사람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호암의 리더십이 가장 인상 깊었다고 했다. 회장님이 서류에 결재를 하는 모습을 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회장님께서도 내가 사업을 시작한 뒤 한 번도 결재를 해본 적이 없다고 말씀하셨죠. 그만큼 사람을 믿고 일을 맡긴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일을 맡은 사람은 더 열심히 안 할 수가 없는 거예요. 이게 바로 이 회장님만의 리더십인 듯합니다.

손 전 사장에 따르면 호암의 결단력 있는 리더십이 오늘날의 삼성전자를 키웠다. 예전 석유화학, 기계 등 당시의 신성장 사업을 검토하고 있었지만 호암이 전자의 가능성을 보고 밀어붙였다는 것.

전자사업을 시작할 때 업계의 반대가 굉장했어요. 1960년대 후반이었는데 전자공업협동조합에서 삼성의 전자사업 진출에 엄청난 반대를 했죠. 당시 금성사(현 LG전자)도 반대했고요. 회장님은 전자사업의 가능성을 확신하고 추진하셨어요. 요새 얘기로 성장 동력이란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죠. 그때 (전자 대신) 석유화학이나 기계공업을 선택했다면 지금의 삼성은 없었을 거예요.

결단력 있는 리더십은 철저한 조사에서 나왔다. 새로운 사업에 대해 꼼꼼하게 조사하고 관련 전문가들을 불러 얘기를 들었다는 얘기다.

기획조사실장이 되면 긴장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회장님이 워낙 빈틈이 없으셔서 항상 철저하게 분석하고 예측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제일합섬을 시작할 당시에 기획조사실장이 성장 가능성 분석을 맡았어요. 회장님은 외국의 경우 국민소득, 인구 변화에 따라 어떻게 사업이 성장했는지를 조사하길 바라셨죠. 하지만 실장은 회장님 질문에 제대로 답을 못했고 결국 회사를 떠나야 했답니다.

손 전 사장은 인터뷰가 끝난 며칠 뒤 기자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왔다.

한 가지 얘기를 꼭 전하고 싶습니다. 우리 회사가 낸 세금을 계산했을 때 회장님께서 기업이 성장해 세금을 많이 내고 고용이 증대되면 국가에 이바지하는 것이니 기쁘다고 하셨어요. 사업보국이란 이념이었죠. 후배들이 이 정신을 잊지 말고 지금의 좋은 성과를 꼭 이어가 국가 브랜드도 높여주길 바랍니다.



조은아 ach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