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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룰라 모델, 카메론 모델, MB 모델

Posted June. 26, 2009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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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국민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대통령(64) 지지율이 81.5%라고 최근 현지 여론조사기관 CNT가 발표했다. 헌법을 고쳐 3선 대통령을 만들자는 여론이 확산될 만큼 인기가 하늘을 찌른다. 그는 미국 뉴스위크지 인터뷰에서 경제성장과 함께 소득분배 개선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줬기 때문이라고 자평했다. 2002년 중도좌파 노동당 후보로 당선된 룰라는 좌파에 흔한 반()시장 포퓰리즘을 택하지 않았다. 국부() 파이를 키우는 시장경제 원칙에 충실하면서 빈곤층에 대한 과감한 지원으로 중산층을 키웠다. 브라질의 풍부한 자원을 활용하되 시장의 효율성을 높여 보다 많은 국민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하자고 반발하는 좌파를 설득하고 국론을 모았다. 그는 반대파를 모욕하지도, 싸우지도 않으면서 과거 정부가 국제통화기금(IMF)의 지원을 받을 때 약속한 재정안정, 규제개혁, 경제개방 정책을 지속적으로 펴나갔다.

덕분에 브라질은 최근 30년 이래 최고성장을 기록했고 일자리가 늘었다. 공공부채는 2002년 국내총생산(GDP)의 55%에서 2009년 35%로 줄고 수출은 4배 늘었으며 빈곤층 가운데 2000만 명이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났다. 자녀를 반드시 학교에 보내야 생계비를 지원하는 복지제도인 볼사 파밀리아로 빈곤층의 자립의지와 미래 경쟁력을 키웠다고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평가했다.

중도좌파 출신 룰라가 우파의 시장경제 원리로 브라질을 살렸다면 영국 보수당의 데이비드 카메론 당수(42)는 사회적 약자 보호와 복지, 환경 등 좌파적 이상을 접목시킨 새로운 보수의 모델이다. 그는 내년 총선에서 총리로 집권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는데, 미국 언론들은 미국 공화당에게 카메론 모델을 배우라고 촉구한다.

카메론은 2006년 구심점과 지향성을 잃고 방황하던 보수당을 떠맡은 뒤 빈곤을 줄이고 사회적 정의를 찾는 일을 우리가 한다며 우파가 새로운 진보라고 선언했다. 시장과 효율을 강조해 30년 전 영국병을 치유했던 대처리즘으로 성장을 계속하면서 이를 통한 열매를 고루 나누겠다고 밝혔다. 방법은 이념 아닌 실용주의다. 교육과 의료, 복지의 민영화로 서비스의 질을 높이면서 기업과 노조에는 가족친화적 고용으로 국민소득 아닌 웰빙지수를 높이자고 호소한다. 무조건 감세()나 작은 정부가 아닌, 정부의 기능에 시장의 활력을 접목하는 중도다.

닮은 점이 없어 보이는 브라질과 영국이 공교육 문제로 신음하는 점에선 같다. 이코노미스트지는 1970년대 한국과 브라질의 일인당 국민소득은 비슷했는데 지금은 한국이 브라질보다 네 배 많다며 교육이 그 이유라고 했다. 브라질 교육의 최대 장애물은 개혁을 거부하는 교원노조다. 성과급 제도는 물론이고 교과서대로 가르치라는 정부정책도 완강히 저항한다. 교육 경쟁력을 키우지 못하고는 선진국 진입도 요원하다는 진단이 나온다.

영국에선 2월 캠브리지대학 입학처장이 수준 낮은 교사들 때문에 공립학교 졸업생들의 학력이 떨어진다고 비판해 충격을 던졌다. 학교 간 경쟁과 학교선택권을 통한 경쟁력 높이기가 카메론의 교육개혁 방향이다.

브라질이 부럽게 바라봤던 우리나라 교육이 지금은 거꾸로 브라질을 닮고 있다. 전교조에 휘둘릴 뿐 아니라 이명박 정부조차 관치와 규제, 하향평등 지향으로 되돌아가는 모습이다. 특목고 입시에서 내신 반영을 금지하는 것이 단적인 예다. 서민과 중산층의 허리를 휘게 하는 과외비는 잡아야 하지만 방법론에서 문제가 있다. 입시에 내신 성적을 반영하지 않겠다니, 특목고는 무엇을 보고 학생을 선발할 것인가.

글로벌 경제위기로 시장경제에 대한 의문이 커졌다고는 하지만 시장의 효율성을 높이는 정책과 함께 약자 보호에 힘쓰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시장의 매커니즘을 활용해 수출과 함께 내수를 키우려면 고숙련 지식산업 글로벌 인재가 절실히 필요하다. 이를 위해선 질 높은 교육에 힘써야지, 교육의 질을 끌어내려선 안 된다. 뒤처진 사람들을 위한 사회적 안전망을 확충하되 혜택이 고루 가도록 정부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한편 그 혜택이 일하는 복지로 이어지도록 꼼꼼하게 설계해야 한다.

글로벌 경제위기로 바람직한 경제모델을 찾으려는 모색이 활발하지만 이명박 정부가 1년 반 전에 내걸었던 국정기조는 크게 보아 틀리지 않았다. 문제는 중도라는 개념이 한국의 우파와 좌파 사이의 중간 정도로 자리매김할 때 위험한 혼돈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이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법치라는 근본적 가치를 인정하고 함께 지키는 좌파라면 괜찮지만 현재 한국의 좌파 집단 가운데 상당수는 정권을 타도할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중도라는 말이 이런 세력까지 포함해 산술적 중간이라는 식으로 오해되거나 그런 메시지를 주려는 것이어선 안 된다. 중도는 목표에 이르는 방법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