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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급여 노린 나이롱 구직자 기승

Posted April. 20, 2009 0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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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랑구에 사는 고모 씨(28여)는 지난해 말 결혼하면서 다니던 방송국 외주 제작사를 그만뒀다. 고 씨는 스스로 퇴직한 만큼 실업급여 대상이 아니었지만 회사 측에 부탁해 해고로 꾸며 실업 급여를 받았다.

결혼 후에도 고 씨는 실제로는 전혀 취업할 마음이 없었지만 정기적으로 중소기업에 입사 원서를 넣었다. 14주에 한 번 노동부 고용지원센터에 제출하는 실업 증빙 서류 제출을 위해서다.

세 군데 회사에 최종 합격하고도 입사하지 않은 고 씨는 이를 근거로 3개월 동안 실업 급여를 받았다. 그는 취업하지 않을 회사에 면접 보러 다니는 게 미안했다면서도 받을 수 있는 실업 급여는 받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중기 뽑아도 안오는 사람 많아

일할 마음이 없으면서도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 중소기업에 허위 지원하는 사례가 자주 발견되고 있다. 중소기업에 입사원서를 넣는 지원자 중 상당수가 대기업을 노리거나 취업 의사가 없는 실업 급여자여서 뽑아도 출근하지 않는다는 것.

경기 안산시에서 금속업체를 운영하는 김모 사장(42)은 올해 초 경력사원 공고를 내고 한 중견기업 퇴직 직원을 뽑았는데 오지 않았다며 알고 보니 근처 공장에서도 몇 주 전 합격하고 출근하지 않았던 사람이라고 전했다. 그는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 인근 공장을 돌아가며 지원하는 듯하다며 물질적 피해보다는 정신적 허탈감이 더 크다고 말했다.

삼화공업 대표인 국종열 중소기업중앙회 부회장도 최근 한 간담회에서 좋은 사람이 있다 싶어서 뽑으면 핑계를 대며 오지 않는다며 심지어 오전에 면접 본 사람에게 정오쯤 출근하라는 전화를 걸으니 다른 곳에 합격했다며 오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고 하소연했다.

중소기업들은 이들이 지원자 수만 늘려 중소기업의 구인난() 문제가 완화됐다는 인상을 준다며 사람을 뽑는 데 시간과 비용이 드는 만큼 방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얌체 수급자, 대책은 없나?

노동부에 따르면 실업급여 수령자 수는 지난해 3월 29만 명에서 올해 3월 44만5000명으로 53.4%나 늘어났다. 특히 경기 침체가 본격화한 올해 1분기(13월)에는 월간 기준 실업급여 수령자가 매달 사상 최대 기록을 갈아 치우고 있다. 이 중에는 허위 수급자도 꽤 있으리라는 게 중소기업과 복지 전문가들의 전언이다.

노동부 관계자는 부정 수급자를 가려내기 위해 실업급여 수급자가 제출하는 입사지원서 가운데 25%를 골라 고용주 등에게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도 부정 수급자로 적발되면 받은 실업급여는 물론 수령액의 2배를 벌금으로 낸다는 것. 하지만 이 관계자는 허위 서류를 제출하면 부정 수급자에 해당돼 처벌하지만 면접까지 갔다가 입사를 포기하는 행위는 부정 수급으로 분류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실업급여 수급자에 대한 정부 관리가 허술하다고 지적했다. 김진수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독일이나 오스트리아 등 유럽 국가들은 수급자가 정당한 사유 없이 3, 4회 이상 기업에 합격하고도 취업하지 않으면 노동 의지가 없는 것으로 보고 급여 지급을 중단한다며 한국은 취업한 후 제대로 다니고 있는지 사후 관리가 부실하다고 지적했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일본처럼 실업급여 수급 대상에 오르면 실태 조사를 철저히 하는 한편, 부정 수급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재명 김상운 jmpark@donga.com su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