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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화산과 노을

Posted August. 22, 2008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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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게 소용돌이치는 하늘 아래 두 귀를 막고 있는 유령 같은 사람의 모습을 표현한 에드바르 뭉크의 절규는 근원을 알 수 없는 현대인의 공포심과 광기를 표현한 걸작이다. 미술평론가들은 그림의 주인공은 일생 동안 정신분열증에 시달리며 사람들과의 소통을 두려워했던 화가의 자화상이라고 설명한다. 그런데 몇 해 전 미국 텍사스대 연구진이 그림 속 남자를 그토록 절규하게 만든 것은 화산 폭발이다라는 이론을 내놓아 눈길을 끌었다.

연구진은 뭉크가 살았던 오슬로를 샅샅이 뒤져 그림 속 남자가 비스듬히 서 있는 배경과 똑같은 협만()을 찾아냈다. 그 풍경은 절규의 초기 스케치와 일치했다. 연구진이 뭉크가 서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 자리에 서본 결과 뭉크가 본 것은 1883년 인도네시아 크라카타우 섬에서 발생한 화산 폭발의 여파로 생긴 저녁노을이란 결론을 내렸다. 당시 폭발로 뿜어져 나온 엄청난 화산재는 전 지구로 흩어져 미국과 유럽에 몇 달간 강력한 노을을 만들었다. 뉴욕 주 소방대원들이 이 노을을 실제 불로 착각하고 출동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였다.

요즘 서유럽에도 뭉크가 살았던 때처럼 화산재가 만든 노을의 절경()이 펼쳐지고 있다고 한다. 미국 알래스카 주 카사토치 화산이 폭발하면서 뿜어낸 화산재가 성층권으로 올라가 서풍()을 타고 네덜란드, 벨기에, 덴마크 상공에 다다르면서 환상적 노을을 선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세한 먼지인 화산재가 해질 무렵의 태양광선을 살짝 가리면 엄청나게 붉고 펄럭이는 듯한 노을이 탄생한다.

바람이 머물다간 들판에/모락모락 피어나는 저녁연기/색동옷 갈아입은 가을언덕에/빨갛게 노을이 타고 있어요. 동요 노을은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창작동요 1위로 선정되기도 했다. 한국인에게 노을만큼 정답고 아련한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것도 드물다. 그러나 노을은 보기엔 근사해도 반갑지 않은 자연현상이다. 대기 중 먼지가 많으면 태양광선 중에서 파장이 짧은 파란색은 산란되고 파장이 긴 빨간색은 산란되지 않아 하늘이 붉게 물드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는 멋진 노을을 보게 되면 감상에 젖기에 앞서 건강 보호를 위해 마스크라도 써야 할 건가.

정 성 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