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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직전 북-중-소당고위층 전쟁 모의

Posted July. 05, 2008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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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직전인 1950년 5월 북한 소련 중국의 당 고위층이 회담을 갖고 전쟁을 준비했다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김일성의 1966년 발언록이 4일 공개됐다.

소진철(78) 원광대 객원교수는 미야모토 겐지 서기장 등 일본공산당 대표단 8명이 1966년 3월 평양에서 나눈 김일성과의 대화를 정리한 발언록에서 이 같은 내용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소 교수는 1978년 일본 사상연구소가 펴낸 일본 공산당 사전에서 김일성 발언록을 찾아내 최근 한국외교협회의 계간지 외교 여름호에 북한 김일성의 1966년 발언록이라는 제목으로 공개했다.

이 발언록에 따르면 김일성은 625전쟁에 대해 1950년 5월 중국 소련 조선(북한) 3국의 당은 만주 선양()에서 회담했는데 이때 미군이 도발행위를 하면 즉시 반격해 남진()할 것을 결의했다. 중국은 군대를, 소련은 무기를 보내서 원조한다는 것도 결정했다고 말했다. 발언록에는(김일성은) 조선전쟁에 대해 (미국의) 덜레스 장관이 (한국을) 방문하는 등 미국 측의 도발이 있었으나 자신(북조선)들이 전쟁을 시작한 면도 있다고 말했다고 기록돼 있다.

625전쟁의 기원을 연구한 김영호 성신여대 교수는 전쟁 직전에 3국의 당 고위층이 회담을 했다는 것은 처음 드러난 사실이라며 공산국가에선 당의 결정이 가장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3국의 당 고위층이 모여 전쟁을 논의했다는 사실은 3국이 개전을 공식화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발언록에는 1965년 마오쩌둥()이 남한에서 무장 게릴라 봉기를 일으킬 것을 김일성에게 종용했다는 사실도 나와 있다. 마오쩌둥은 1965년 3월 김일성이 중국에 보낸 최용건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에게 남조선 인민이 게릴라 투쟁을 시작하도록 지도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는 기록이다. 보고를 받은 김일성은 남조선에는 해안선이 많고, 산이 벌거벗었고, 교통이 발달해 있으며 미군이 주둔해서 게릴라 활동은 어렵다며 그 대신 대중 속에 비공연조직()을 만들어 대중운동을 전개해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김영호 교수는 김일성이 무장봉기를 반대했다고 하지만 마오쩌둥의 당시 영향력을 고려할 때 중국의 압력을 무시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1965년까지 드물었던 북한의 대남 도발이 1966년 33건, 1967년 195건, 1968년 574건으로 급증한 데 대해 학자들이 정확한 이유를 밝혀내지 못했는데 이번 발언록으로 그 이유를 미뤄 짐작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금동근 go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