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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종 교수의 민주주의와 권위

Posted January. 24, 2006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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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은 국가의 주권자로 통치의 주체가 자신들이라는 점을 피부로 느끼지 못하고, 민주적 절차를 거쳐 집권한 정부는 무능하다는 질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자신들이 옳다고 믿는 것이 정부 정책에 실현되지 않았을 때 이를 관철시키기 위해 쇠파이프를 들거나 목숨을 담보로 한 단식에 돌입한다. 반면 권위주의 시절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공권력은 이러한 가학 또는 피학의 시위 앞에 무력감을 느끼며 입술을 깨문다.

과연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는 21세기의 새로운 화두다. 박효종 서울대 국민윤리교육과 교수가 최근 펴낸 민주주의와 권위는 이런 뼈아픈 질문에 대한 깊은 성찰의 산물이다.

서울대 기초교육교재 총서의 하나로 발간된 이 책은 900여 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 속에서 우리시대 민주주의의 역할에 대한 재인식과 그에 부응하는 바람직한 민주주의 형태를 모색한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박 교수는 사악()을 통제하는 정의의 이름으로서가 아니라 갈등을 방지하고 조정하는 평화의 이름으로서 민주주의를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민주주의가 정의와 원칙을 강조할 경우 올바른 선()에 대해 서로 다른 기준을 가진 집단 간의 갈등을 피할 수 없다. 또한 다원주의 사회에서는 대의민주주의건 참여민주주의건 심의민주주의건 아무리 정교한 방식으로 사람들의 선호를 수렴한다 해도 사람들의 견해가 어느 하나로 일치되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따라서 이제 정의를 수호하고 사악함을 물리치는 위정척사()의 잣대보다는 서로의 차이를 존중하며 공존하는 화이부동()의 잣대를 민주주의에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이런 평화의 원칙이 적용된 정치를 결국 최선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차선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모두스 비벤디(Modus vivendi잠정 타협)의 정치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정의를 독점하지 않는 모두스 비벤디의 정치에서 바람직한 민주적 권위는 어떻게 창출될 수 있을까. 박 교수는 민주적 권위는 절차적 정당성의 획득만으로는 정당성을 부여받을 수 없다는 점에서 국민이 마음으로 설복될 수 있는 전문가의 권위를 획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민주적 대리인이 갖는 권위는 주인으로서 갖는 그런 독자적 권위가 아니라 주인으로부터 파생된 권위이다. 따라서 그것은 선출과 동시에 부여되는 닫힌 권위가 아니라 끊임없이 재창출되는 열린 권위여야 한다. 열린 권위로서 민주적 권위는 사병에 대한 장교의 권위처럼 상명하복이 강제되는 권위가 아니라 환자에 대한 의사의 권위처럼 전문성을 인정받는 권위가 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박 교수는 정부가 그 같은 전문성을 결여했을 때 국민의 통치권은 반론권의 형태로 주어진다고 해석한다. 예전의 반론권은 비상식적이고 예외적 상황에서의 국민의 저항권으로 소극적으로 해석됐으나, 박 교수는 이를 국민의 일상의 통치권의 발휘로 적극적으로 해석하는 것.

그러나 그 반론권 역시 도덕적 선이나 정치적 선의 극대화를 위해서가 아니라 도덕적 악과 정치적 악의 최소화를 목표로 할 때 의미를 띨 수 있다. 전자가 자신의 정치적 선호의 충족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가학과 피학의 쾌락을 추구하는 배부른 돼지의 반론권이라면, 후자는 그런 정치적 쾌락주의에서 벗어나 의혹의 눈길을 거두지 않는 배고픈 소크라테스의 반론권이기 때문이다.



권재현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