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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소리 없는 혁명

Posted December. 20, 2005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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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혁명, 오렌지혁명, 레몬혁명을 기억하시는지? 2년 전 그루지야에서 시작해 우크라이나(2004년) 키르기스스탄(3월)을 휩쓴 민주화혁명 말이다. 미하일 사카슈빌리 그루지야 대통령은 그새 대법원장에 측근을 앉혀 법을 시녀로 만들었다. 우크라이나는 부패에 경제난, 혁명세력 간 내분까지 겹쳐 벌써 내각을 갈았다. 키르기스스탄의 불안한 정치 상황은 이웃 카자흐스탄의 반면()교사다. 시민들은 민주주의보다 풍요가 낫다며 14년 장기 집권 대통령에게 7년을 더 안겨 줬다.

그 요란하던 혁명이 왜 시들었을까. 재건과 개발을 위한 유럽부흥개발은행(EBRD)은 정치적 경쟁과 법치()가 문제라고 했다. 무능한 정치인과 관료를 내쫓고 부패 인사를 처벌하는 제도 없이는 그놈이 그놈이라는 거다. 또 하나 중요한 게 경제다. 경제가 살아나지 않으면 민심은 급격히 돌아선다. 과감한 경제 개방으로 투자와 일자리를 늘린 헝가리, 슬로바키아, 폴란드 등은 혁명 없이도 번영으로 달려가고 있다.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면서도 15년간 환자 취급 받던 일본도 요란함 없이 혁명에 성공한 모양이다. 아동용품이 잘 나가고, 여성용품과 애견용품이 움직이고, 남성용품까지 꿈틀하면 경기 회복이 확실하다는데 드디어 남성복이 팔린다는 소식이다. 잃어버린 10년간 세계 최고의 연구개발비를 쏟아 부으며 정치 경제의 거품을 걷어 낸 결과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는 이를 몰래 한 혁명(stealthy revolution)이라고 했다.

일본은 1990년대 막대한 공공부문 지출로 경제를 살리려다 실패한 전력이 있다. 경쟁과 탈()규제, 노동시장 유연화 등 꼭 필요한 변화를 거부해 병치레가 길었다. 일본 학생한테 공산주의 배울까 봐 중국 유학생들이 같이 안 논다는 농담이 말해 주듯, 뿌리 깊은 금융 사회주의(financial socialism)를 털어내는 게 과제다. 옛 소련 지역의 실패한 민주화혁명, 일본이 한때 실패했던 경제혁명의 길을 한국은 열심히 쫓아가고 있다.

김 순 덕 논설위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