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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대학로 20년

Posted July. 27, 2005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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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명소() 대학로가 탄생한 지 20년을 맞았다. 이 자리에 있던 서울대가 관악산 아래로 이전한 것은 1975년 3월의 일이다. 대학 부지는 여러 필지로 분할되어 단독주택들이 들어섰다. 이 일대에 옛 모습으로 남아 있는 것은 문예진흥원 청사로 쓰이고 있는 서울대 본관 건물과 마로니에 나무들이다. 학교 앞 개천은 복개돼 큰길로 변했다. 소극장, 전시장이 하나둘 생기더니 어느새 젊음과 문화의 거리로 자리 잡았다. 1985년 5월 대학로로 명명됐고 한때 차 없는 거리가 시행되기도 했다.

서울에서 문화의 거리로 내세울 만한 곳은 몇 군데 되지 않는다. 인사동이 전통 있는 장소라면 대학로는 갑자기 떠오른 곳이다. 학생운동을 잉태했던 대학 캠퍼스 자리에 젊은 연극인들이 모여 도전과 실험정신을 이어갔다. 마로니에공원의 낭만적이고 이국적인 분위기도 젊은이를 끌어들였다. 대학로는 초기에 순수한 열정으로 넘쳤다. 연극이 끝난 뒤 사람들은 늦게까지 술잔을 기울이며 인생과 예술을 토론했다.

요즘 대학로에 가면 벗는 연극을 보러 오라는 호객꾼을 먼저 만나게 된다. 진짜 연극이 사이비 연극에 밀려 고전하고 있다. 술집 노래방이 넘쳐난다. 문화의 거리에서 빠르게 유흥의 거리로 변질되고 있는 것이다. 한숨을 쉬며 개탄하던 연극인들은 이제 다른 곳을 알아봐야겠다고 한둘 짐을 싸는 지경에 이르렀다. 대학로의 매력은 문화에서 비롯됐는데 젊은이들을 집요하게 쫓아온 상업주의가 그 뿌리를 위협하고 있다.

대학로가 비교적 단기간에 문화의 거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독특한 역사적 배경과 연극인의 노력 덕분이다. 소극장에서 밤새워 흘렸던 땀과 열정이 쌓여 연극의 거리를 만들고 젊은이를 불러 모았다. 이제 대학로 같은 곳을 다시 만들기는 쉽지 않다. 공든 탑을 무너뜨리지 않고 문화와 상업주의가 병존()하는 방법은 없을까. 대학로에 아름답고 소중한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이들에겐 영 내키지 않는 일이겠지만.

홍 찬 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