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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포장명인 김홍식 연구관

Posted May. 28, 2005 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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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연구관은 32년간의 박물관 생활을 마치고 6월 30일 정년퇴임한다. 현재는 말년 휴가 중.

하지만 26일 서울 덕수궁에서 만난 그는 여전히 문화재를 포장하고 있었다. 8월 15일 경복궁으로 자리를 옮겨 국립고궁박물관으로 새로 개관하는 덕수궁 궁중유물전시관의 유물 포장을 도와주고 있는 것이다. 이달 초엔 전북 전주에 가서 국립전주박물관 특별전에 출품되는 조선 태조 이성계의 어진(왕의 초상화)을 포장해 주기도 했다.

최근 그가 심혈을 기울인 것은 역시 서울 용산의 새 국립중앙박물관(10월 28일 개관 예정)으로 유물을 포장해 옮긴 일. 그중 국보 126호 석가탑 출토 사리함(8세기 중반) 포장이 가장 어려웠다고 했다. 사리함 모서리에 걸려 있는 작은 영락(장식물) 때문이었다.

워낙 오래된 영락이라서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떨어집니다. 그걸 고정시킨다는 게 보통 일이 아닙니다. 여러 번 포장해보긴 했지만 그래도 걱정이 되더군요. 방법을 찾기 위해 일주일 동안 매일 오전 7시에 출근해 두 시간씩 유물을 눈여겨봤습니다. 고민 끝에 얇은 중성지를 말아 장식물 옆에 기둥을 세우고 장식물과 기둥을 다시 종이로 고정시켰죠. 그 작업에만 이틀이 걸리더군요.

김 연구관이 박물관에 들어간 것은 1973년. 대학을 중퇴하고 벌인 사업에 실패한 뒤 중앙박물관 유물과에 임시 고용직으로 취직했다.

처음엔 청소만 했죠. 문화재를 모른다고 구박도 많이 받았습니다. 하지만 열심히 문화재를 공부했고 3년쯤 지나니 드디어 유물을 만져도 좋다는 허락이 떨어졌습니다.

그렇게 문화재 인생이 시작됐다. 1978년 시험을 거쳐 학예직이 되었다. 1979년 미국 워싱턴 뉴욕 등에서 열린 한국 미술 5000년 전 출품 문화재를 다루면서 본격적으로 포장에 뛰어들었다.

그때 미국에 문화재 포장 전문가가 있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깜짝 놀랐습니다. 한번 도전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1979년에는 금관 포장에 일주일이 걸렸지만 지금은 30분이면 충분할 정도로 포장의 달인이 됐다.

처음엔 금관 뒷부분 연결 부위를 풀어 평면으로 쫙 펼쳐놓고 포장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꼭 맞는 틀을 만들어 거기에 끼워 포장하면 됩니다. 보통 사람이 금관을 들어 올린다면 무수히 많은 장식물이 흔들리고 금판이 출렁거리겠지만 저는 한 손으로도 장식물 하나 움직이지 않게 들어올릴 수 있습니다. 오랫동안 유물을 만지다 보니 노하우가 생긴 거죠.

그의 유물 포장 실력은 세계적인 수준이다. 1998년 미국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한국실 개관 특별전 출품을 위해 국보 보물급 문화재 300여 점을 포장했을 때였다. 당시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의 한 직원이 서울에서 김 연구관의 유물 포장을 지켜본 뒤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와서 일해 줄 것을 제안했다. 이 얘기를 전해들은 정양모() 당시 중앙박물관장은 안돼라며 단호히 거절했다. 세계적인 문화재 포장 전문가를 놓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박물관은 2002년 그가 정년을 맞았을 때, 학예연구관으로 특별 승진시켜 정년을 3년 연장하기까지 했다.

그가 말하는 문화재 포장의 매력은 간단하다. 집 떠났던 유물이 무사히 돌아오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포장의 묘미라는 것.

그동안 가장 어려웠던 것은 문화재 포장에 대한 인식 부족이었다. 그는 한국의 문화재 포장 실력은 이제 세계 정상급인데도 박물관 안팎에서 아직까지 전문가로 대접해 주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아쉬워했다. 그래서 그는 더욱 더 후배들을 키우려 한다. 현재 수십 명의 젊은이들이 그에게서 유물 포장을 배우고 있다.

그는 7월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종 불교중앙박물관으로 자리를 옮긴다. 업무는 역시 문화재 포장이다.



이광표 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