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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서로에게 말하는 토론

Posted February. 06, 2005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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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5세기 아테네 민주주의의 영웅 페리클레스는 토론은 행동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아니라 현명한 행동을 위한 필수불가결의 조건이라고 말했다. 이후 토론을 통한 결정은 민주주의 그 자체로 여겨져 왔다. 우리의 경우도 민주화 진전에 따라 토론 공화국이라는 모토가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어쨌든 토론은 지혜와 합의를 매개하는 과정으로서 민주정치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토론에는 두 가지 형태가 있다. 아테네와 같은 직접민주주의에서의 토론은 수천 명의 청중과 소수 발언자들 사이의 게임이다. 모든 시민에게 발언권이 있지만 사실상 몇몇 웅변가들이 토론을 독점한다. 발언자들은 청중을 설득하기 위해 경쟁을 벌이고, 그 결과 서로에 대해 말하는(talk about each other) 형태의 토론이 전개된다. 이러한 토론은 칼이 아닌 말을 무기로 한 싸움이다. 상호 이해보다는 상대방의 약점 공략이 토론을 지배하며, 최종 결정은 선동가의 화려한 수사에 의해 왜곡되기 일쑤다.

아테네가 멸망한 후 2000년이 지나 부활한 민주주의는 대의제()였다. 정치적 토론의 성격도 바뀌었고, 토론의 중심에 의회가 자리 잡았다. 이제 토론은 소수의 선량()들이 서로에게 말하는(talk to each other) 형태를 띤다. 지역구민을 대변해야 한다는 요구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대의민주주의에서의 토론은 대표들이 의견 교환을 통해 서로의 생각을 확장하고 변화시킴으로써 공동선()에 합당한 입법 및 결정을 지향하는 과정이다. 물론 선거를 의식하는 선량들은 상대의 허점을 캐는 서로에 대해 말하기 형태의 토론에 빠져들기도 한다.

2월 임시국회가 열린 지 일주일이다. 쟁점 법안을 포함한 많은 의제가 심의를 기다리고 있다. 의사당 밖의 청중을 잠시 잊고 지혜로운 합의를 위한 토론을 시작해야 한다. 무엇보다 서로에게 말하는 토론의 과정에서 각자의 생각이 변화하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유 홍 림 객원논설위원서울대 교수정치학

honglim@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