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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독재자의 동상

Posted April. 10, 2003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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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자들은 기이하게도 동상을 좋아하는 공통점이 있다. 역사에 오명()을 남긴 독재자들은 거의 예외없이 동상 세우기를 좋아했던 기록이 남아 있다. 독재자가 철권통치를 휘두를 때 세워졌던 동상들이 몰락 후 사람들의 조롱거리나 능욕의 대상이 됐다는 점도 하나같다. 10여년 전 구소련과 동유럽에서 사회주의가 붕괴했을 때 레닌과 스탈린의 동상이 그랬고 엊그제는 바그다드 중심가에 서 있던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의 거대한 동상이 역사의 반복을 실증해 주었다. 독재자의 동상이 철거되는 모습은 한 시대의 종말과 새 시대의 시작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독재자가 선호하는 정치적 상징조작의 하나가 바로 동상 건립이다. 이런 방법으로 권력을 정당화하고 미화하는 것을 정치학 용어로는 미란다(miranda)라고 한다. 웅장한 공공시설 건립이나 각종 예술작품, 성대한 집단의식 등을 통해 피지배자 그룹의 정서를 호도하고 절대 권력의 힘을 과시하는 것이다. 하지만 국민적 지지 기반을 잃은 권력이 포장만으로 영속할 수는 없는 법이다. 독재자들이라고 그 점을 몰랐을 리 없겠지만 포장을 통해서라도 지지 기반의 이탈을 막으려는 욕망이 오히려 비참한 최후를 재촉하는 원인이 되었던 것은 아닐까.

우리나라에서도 민심을 등졌던 집권자의 동상이 철거된 경우가 있다. 파고다공원(현 탑골공원)에 세워졌던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동상은 60년 419혁명 때 끌어내려져 거리에 나뒹굴었다. 서울 문래동 공원에 있던 박정희 전 대통령 흉상이 특정 시민단체에 의해 기습적으로 철거돼 논란을 빚기도 했다. 어느 나라보다 굴곡 많은 현대사를 거쳐온 우리의 한 자화상이지만 죽어서까지 능멸당하는 권력자의 모습은 그 자체가 시대의 비극이다. 그 후 이 땅에서 동상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

동상 세우기에 열심으로는 북녘 땅의 김일성 부자를 따라갈 만한 독재자가 없을 것이다. 북한 전역에 크고 작은 김일성 동상이 무려 3만5000여개라니 기네스북에 오르고도 남을 일이다. 집권자가 굶주린 인민보다 생명없는 동상에 매달리는 것은 죄악이다. 우상화에 몰두하고 있는 북쪽 지도자들은 독재자의 동상이 반드시 무너지고 만다는 역사의 교훈을 아직도 모르는 것일까. 그나저나 언젠가 북한의 그 수많은 동상과 기념비들을 철거해야 할 때 들어갈 돈은 또 얼마나 많을지 공연히 지금부터 걱정된다. 통일 후 독일 정부는 동베를린에 있던 레닌 동상을 철거하기 위해 아까운 통일비용을 쏟아부었다는 얘기도 있는데 말이다.

송 문 홍 논설위원 songm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