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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을 위한 행진곡’ 논란, 대통령이 보훈처에 떠넘겨서야

‘임을 위한 행진곡’ 논란, 대통령이 보훈처에 떠넘겨서야

Posted May. 17, 2016 07:28,   

Updated May. 17, 2016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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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보훈처가 어제 5·18 민주화운동 기념행사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과 기념곡 지정을 불허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합창단이 합창하고, 원하는 사람은 따라 부를 수 있도록 ‘참석자 자율 의사’를 존중하기로 했다는 설명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여야 3당의 지난주 회동에서 기념곡 지정과 제창을 요청했던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협치의 분위기를 깼다며 보훈처장의 해임을 요구하고 나섰다.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도 보훈처에 재고를 요청했다. 그러나 왜 보훈처장이 이 문제의 결정권을 쥐고 있어야 하는지 의문이다.

 보훈처의 제창 반대 논리는 이 노래가 북한이 5·18을 소재로 만든 영화 ‘님을 위한 교향시’의 배경음악으로 사용됐고, 정부에서 기념곡을 지정한 전례가 없다는 점이다. 우파 일각에선 이 노래의 ‘임’이 김일성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이에 반발한 5·18 기념재단에서는 법적 소송까지 준비하고 있다.

 작년 3월 박 대통령과 만난 문재인 당시 새정치연합 대표도 기념곡 지정을 요구했다. 박 대통령은 “반대하는 분도 계시고 찬성하는 분도 계시기 때문에 국가적 행사에서 또 다른 갈등이 생길 우려가 있다. 기념곡을 제정한 예도 없다"며 반대를 분명히 했다. 그런데 올해 회동에서는 “국론 분열이 생기지 않는 좋은 방안을 찾아보라고 보훈처에 지시하겠다”고 태도 변화를 보였다. 4·13 총선 뒤 협치의 첫 시험대였던 자리였으므로 듣는 사람은 당연히 해당부처와 사전조율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법하다. 3일 뒤 보훈처가 ‘합창 고수’를 발표하니, 야당이 반발하는 것도 어쩌면 당연하다.

 국민이 먹고사는 민생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문제로 해마다 5월만 되면 좌·우파로 온 나라가 나뉘어 소모적인 논쟁으로 국가적 에너지를 낭비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350년 전 효종의 어머니 조대비의 상(喪)을 1년으로 할지, 3년으로 할지를 놓고 기나긴 당파싸움을 촉발한 서인과 남인의 ‘예송논쟁’까지 떠오른다. 국론 분열을 감안해 이 문제를 정리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좌우가 치열하게 대립했던 개성공단 폐쇄 결정은 박 대통령이 직접 내린 바 있다. 그랬던 박 대통령이 결정을 보훈처로 넘긴 건 골치 아픈 문제를 회피하고 싶은 심리였을까. 미국 트루먼 대통령은 백악관 집무실 책상에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The buck stops here)”는 팻말을 올려놓았다. 필요하다면 대통령 직속 국민대통합위원회 주도로 정치권과 5·18 단체, 반대하는 보훈단체 대표까지 참여하는 토론의 장에서 국민적 공감대를 찾아야 한다.



박제균논설위원 ph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