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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향-탈취제도 없앴어요” 엄마들 화학제품 공포 확산

“방향-탈취제도 없앴어요” 엄마들 화학제품 공포 확산

Posted May. 16, 2016 07:34,   

Updated May. 16, 2016 0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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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 죽고 싶어서 그러니? 가습기 아직 안 버렸어?”

 세 살배기 딸을 키우고 있는 이정연 씨(38)는 최근 친정 엄마에게 이런 소리를 듣고 크게 다퉜다.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이 뒤늦게 재조명되면서 친정 엄마가 가습기를 버리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이 씨는 “가습기가 아니라, 살균제가 문제였다. 아이를 위해 가습은 필요하다”라고 설득해봤지만, 친정 엄마의 완강한 태도에 포기했다. 이 씨는 “최근 나오는 가습기들은 살균제를 쓰지 않는다고 하는데, 불안한 마음이 큰 게 사실이다”라며 “엄마와 갈등을 빚은 뒤부터 가습기를 치우고, 젖은 빨래를 방 안에 너는 등 대체수단을 강구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가습기살균제 사태가 일파만파로 퍼지면서 이 씨처럼 화학제품 전반에 대해 불신과 두려움을 갖는 ‘화학물질 포비아(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살균제 성분이 들어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방향제 탈취제 뿐 아니라 유효성과 안전성 검사를 거쳐 의약외품으로 분류되고 있는 모기퇴치제, 구강청결제 등 사실상 화학성분이 들어간 모든 제품을 의심하는 수준이 되고 있다.

 화학제품 포비아를 가장 크게 느끼는 사람은 영유아(0∼5세)를 키우는 엄마들이다. 서울 송파에서 5살 아들과 3살 딸을 키우고 있는 윤한주 씨(35)는 “옥시라는 큰 기업도 거짓말을 했는데, 이제는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라며 “지역 엄마들만 가입할 수 있는 온라인 카페에서 서로 정보를 교환하면서 화학제품 사용을 최소화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특히 옷가지 냄새를 제거하는 탈취제와 방향제 등은 가정과 식당은 물론 사무실과 차량 등 생활 거의 모든 공간에서 흔하게 사용되고 있어 불안감이 더 커지고 있다. 15일 환경부 산하 국립환경과학원에 따르면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방향제 탈취제는 공산품이라 성분을 공개할 의무가 없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국내 시판 중인 유명 제품인 ‘페브리즈’의 경우 흡입하면 폐에 나쁜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는 살균제 성분 ‘제4기 암모늄클로라이드’를 쓰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국내에서 출시된 ‘어린이용’, ‘친환경’ 제품에 대한 불신도 덩달아 커지고 있다. 이 때문에 화학물질 규제가 상대적으로 강하다고 알려진 미국 또는 유럽 회사 제품을 온라인 직구를 통해 조달하는 엄마도 늘어나는 추세다. 지난달 신생아를 출산한 김효진 씨는 “국내 제품은 믿을 수가 없어서 출산 전부터 신생아 물품을 인터넷 직구로 구입해 저장해왔다”라고 말했다.

 화학제품 포비아가 확산되면서 소비자들의 단체 행동도 나타나고 있다. 가습기살균제피해자와가족모임(가피모)과 환경보건시민센터는 15일 서울 종로구 환경보건시민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이 옥시의 전현직 외국인 대표이사와 임원을 소환해 구속 수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환경운동연합도 15일 서울 중구 롯데마트 서울역점 등 11곳에서 옥시 제품의 완전 철수를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환경운동연합은 “대형마트들은 옥시 제품을 판매한 것뿐 아니라, 옥시의 유사제품도 만들어서 판매한 만큼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유근형 기자 noe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