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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드라마의 진화, ‘미드’ 못지않은 완성도... 수사 드라마 숨은 주역

한국 드라마의 진화, ‘미드’ 못지않은 완성도... 수사 드라마 숨은 주역

Posted April. 09, 2016 07:15,   

Updated April. 09, 2016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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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수사드라마가 달라지고 있다. 이야기의 완성도가 높아지고 있다. 이전처럼 사건을 얼렁뚱땅 해결하지 않는다. 사건을 수사하는 디테일도 섬세해졌다. 극에 사실감을 더하는 ‘숨은 전문가’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케이블채널 tvN 드라마 ‘시그널’에 보조 작가로 참여한 전직 프로파일러(범죄심리분석관) 김윤희 씨(37)와 tvN ‘피리 부는 사나이’의 자문을 맡은 경찰대 이종화 교수(53)를 만나 이들이 드라마에 어떻게 기여했는지 들어봤다.

디테일을 살린 전직 프로파일러

 “(드라마의 메인 작가인) 김은희 작가에게 많이 받은 질문은 ‘이런 상황이 실제로 가능하냐’, ‘개연성이 있느냐’였어요.”

  ‘시그널’의 보조 작가 김 씨는 경찰 생활 8년 중 5년을 서울지방경찰청 범죄분석요원으로 근무했다. 2년 전 경찰복을 벗고 배우와 작가를 꿈꾸던 김 씨는 전문가를 찾던 ‘시그널’ 제작진에게 발탁됐다. 김 씨는 실제 프로파일러가 어떻게 증거를 수집하고 행동하는지를 메인 작가에게 알려줬다.

 “프로파일링을 통해 본 범죄자는 사회성이 떨어지고 강박 성향이 있으며 이를 없애려 특정 행동을 반복하는 인물이었죠. 드라마에서 편의점을 항상 정돈하는 홍원동 연쇄살인사건의 범인 진우(이상엽)라는 캐릭터도 이를 바탕으로 탄생했죠.”

 홍원동 사건을 구성하는 데는 김 씨의 공이 컸다. 김 씨는 홍원동 사건의 모티브가 된 실제 사건인 ‘서울 양천구 신정동 연쇄살인사건’을 프로파일링한 경험이 있다.

 범인을 추적하던 형사 차수현(김혜수)이 피해자들이 다닌 골목을 배회하는 장면도 이전 수사물에서 볼 수 없는 장면이다. 범인의 시각이 아니라 피해자의 시각으로 사건 현장을 다시 본 것이다.

 김 씨가 바라는 수사물의 모습은 어떤 걸까. “그동안 국내 수사극에서는 경찰 눈으로 보면 ‘이건 아닌데’ 하는 내용이 많았죠. 미드(미국 드라마)처럼 첨단 수사기법과 꼼꼼한 수사 등을 국내 드라마가 보여준다면 경찰로서도 참고할 만할 것 같아요.”

드라마에 등장한 생소한 협상전문가

 “경찰이 상대하는 사람은 범인이든 누구든 우선 도와줘야 하는 사람으로 여기고 ‘위기자’라 불러야 해요. 이들을 살살 달래야지, 조사하듯 딱딱한 말투로 대하면 안 되죠.”

 강력계를 주로 소재로 삼던 이전 드라마와 달리 드라마 ‘피리 부는 사나이’는 경찰 ‘위기협상팀’을 다뤘다. 생소한 분야에 사실감을 더하기 위해 경찰대 이종화 교수가 나섰다. 이 교수는 미국 뉴욕경찰(NYPD)과 연방수사국(FBI)에서 위기협상 과정을 수료한 전문가다. 그는 “사고는 ‘위기자’의 감정이 고조된 상태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할 때 발생한다”며 “대화로 그들의 감정을 어루만져야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드라마 각본을 쓴 류용재 작가에게 경찰대에 개설된 ‘협상 강의’를 듣게 했다. 이 교수는 류 작가에게 “협상관의 말투는 부드러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의 조언에 따라 탄생한 캐릭터인 협상팀 여명하 경위(조윤희)는 위기 상황에서 상대의 말을 경청하고 부드러운 말투로 사건을 해결한다.

 그가 바라는 수사물의 모습은 어떤 걸까. “올해도 자살을 기도한 두 명의 ‘위기자’를 협상을 통해 구했어요. 소통이 부족한 때일수록 협상이 꼭 필요합니다. 드라마를 통해 경찰뿐 아니라 많은 분이 위기협상을 알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김배중 기자 wante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