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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봉서원 복원, 때아닌 '유불갈등'

Posted November. 18, 2015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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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 터를 팠는데 국보급 불교 유물이 쏟아져 나왔다. 3년 전 서울 도봉구 도봉산 자락에서 이뤄진 도봉서원 터 발굴 상황이다. 당시 유물 77점이 발굴됐다. 12세기 이전 작품으로 추정되는 불교 유물 중 단연 돋보인 건 금강령(불교의식에 쓰는 금동제 방울). 학계에서는 최고의 불교 유물 가운데 하나로 평가했다. 그런데 이 걸작들로 인해 현대판 유불() 갈등이 재연되고 있다. 서원을 다시 지으려는 유림들의 움직임에 불교계가 강력히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17일 서울시와 도봉구 등에 따르면 도봉서원 터에서 불교 유물이 쏟아진 데는 슬픈 역사가 서려 있다. 고려 때까지만 해도 이 자리에는 원래 영국사()라는 절이 있었다. 그런데 조선시대에 절은 폐사됐다. 그 대신 1573년(선조 6년) 사림의 거두 정암 조광조(14821519)를 배향한 도봉서원이 들어섰다. 3년 전 발굴된 불교 유물은 모두 이 서원 건물 주춧돌 아래에 묻은 향로 안에서 나왔다. 학계에서는 이를 두고 조선의 강력한 숭유억불 정책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처럼 불교 유물이 유교 유적에서 다량 출토된 건 매우 이례적이다.

당시 도봉구는 지역 유림들에게 도봉서원 재건을 약속한 뒤 발굴조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불교 유물이 발굴됐다는 소식을 접한 조계종 등 불교계가 서원 재건을 반대하며 나섰다. 조계종은 8월 도봉구에 전달한 공문에서 도봉서원은 영국사 터이며 조선시대 불교 탄압을 보여주는 상징이라며 재건을 전면 재검토하라고 주장했다. 서원을 재건할 권한을 지닌 서울시도 이미 국보급 불교 유구가 발견돼 당장 복원 추진은 곤란하다는 입장을 밝힌 상태다.

문제는 도봉구가 8월 도봉서원 복원사업 재추진 계획을 서둘러 발표한 것이다. 서울시 예산 45억 원도 필요하지만 정작 서울시와는 별다른 의견 조율 없이 계획이 수립됐다. 김상구 도봉구 문화체육과장은 일주일에도 수차례 유림들이 찾아와 서원 재건을 요구할 만큼 지역적 열망이 높은 사업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강희은 서울시 역사문화재과장은 유교 편만 들어 서원을 재건축하기에는 불교계의 반발을 무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현재 진행 중인 도봉서원 유적의 역사성 정립을 위한 연구용역(7000만 원) 결과가 나오면 해결책을 검토할 방침이다.

이철호 기자 irontig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