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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사민당 현자 슈미트, 한국야당엔 왜 이런 정치인 없나

독사민당 현자 슈미트, 한국야당엔 왜 이런 정치인 없나

Posted November. 12, 2015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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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정치인 헬무트 슈미트 전 총리가 별세했다. 그가 중도좌파 정당인 사회민주당(SPD) 정치인이면서도 정파를 넘어 존경을 받은 것은 원대한 비전을 가졌으면서도 끝까지 실용주의자로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독일 통일의 초석을 닦았다는 빌리 브란트 전 총리의 동방정책도 그가 후임 총리가 되지 않았다면 논란 속에 좌초했을지 모른다. 당내의 무책임한 환경주의자들과 결별하고 원전 건설에 찬성했다. 노조의 과도한 권한 확대에도 확실하게 반대했다. 무엇보다 서독 적군파 바더-마인호프 그룹 테러와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검은 9월단의 뮌헨올림픽 테러에 대해 보여준 타협 없는 조치는 브란트를 불신하던 서독의 보수적인 국민에게조차 SPD에 대한 신뢰를 심어줬다.

슈미트 전 총리는 일을 할 줄 안다고 해서 실천가(Macher)로 불렸다. 그는 브란트의 동방정책을 이어갔지만 안보에는 투철했다. 소련이 동유럽에 중거리 핵미사일을 배치하자 국내외의 격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중거리 핵미사일의 서독 배치를 허용했다. 더 이상 급진세력의 숙주 역할을 하지 않고 국가 안보에 불안을 주지 않는 SPD의 이미지를 슈미트가 만들어냈다. 환경주의자들이 그에 반발해 녹색당을 만들어 빠져나갔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슈미트는 라인강의 기적으로 불리던 전후 호황이 끝나 침체기로 접어든 경제를 브란트로부터 넘겨받았다. 하지만 독일 경제의 살 길은 수출뿐이라는 인식하에 보호주의를 차단하고 유럽국가간 협력을 통해 환율안정을 도모함으로써 위기를 극복했다.

독일 SPD의 연이은 브란트와 슈미트 정권은 우리나라의 김대중(DJ)과 노무현 정권에 자주 비교된다. DJ의 햇볕정책은 그의 후임으로 슈미트 같은 실용주의자가 아니라 노 전 대통령 같은 한술 더 뜬 이상주의자를 뒀기 때문에 꽃을 피우지 못하고 실패로 끝났을지 모른다. 친노 세력이 주도하는 새정치민주연합은 통합진보당과 바로 지난 총선까지만 해도 선거연대를 해 종북 세력의 숙주 역할을 했다. 투철하지 못한 안보관에서 나오는 외교안보 정책은 신뢰를 얻지 못하고 성장에 대한 비전 없이 복지 부담만 키운 경제정책은 우려스럽다.

비서실장이 동독의 간첩으로 드러나 하야한 브란트 전 총리를 이은 슈미트 집권 초 서독은 브란트 전 총리식의 민주화를 지지하고 저항문화에 열광하는 세력의 도전을 받고 있었고 동독은 이런 혼란을 부추겼다. 슈미트는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가 말한 책임윤리의 입장에서 브란트 시대의 이완된 사회 기강을 바로 잡고 궁극적으로 이상주의자 브란트가 열어놓은 통일과 민주화의 길을 추구할 수 있었다. 우리 야당에는 왜 이런 정치인이 없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