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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카 사회의 관음증

Posted August. 28, 2015 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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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핑톰(Peeping Tom)이란 말이 있다. 여자의 알몸을 몰래 훔쳐보다 그 벌로 눈이 멀게 됐다고 하는 톰이란 사람에게서 유래한 말로 관음증()의 남성을 뜻한다. 앨프리드 히치콕의 작품 중에 이창(Rear Window)이란 영화가 있다. 사고로 휠체어에 의존해 사는 한 사진작가가 카메라 렌즈로 주변 이웃들을 훔쳐보는 내용이다. 관객은 영화를 보면서 주인공처럼 훔쳐보기에 빠져드는 자신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게 된다. 영화 속의 카메라는 몰래카메라의 원조쯤 된다.

언제부터인가 TV에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등장하기 시작해 지금은 하나의 장르로 정착했다.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영화나 드라마 속의 그럴 듯한 현실이 아니라 현실 그 자체를 보고 싶어 하는 시청자의 욕망에 부응한다. 하지만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현실도 따지고 보면 현실 그 자체는 아니다. 출연자들은 아닌 것처럼 하지만 카메라를 의식하고 있다. 정말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시청자들이 보고 싶어 했던 현실 그 자체는 몰래카메라 속에나 들어있는지 모른다.

최근 26세 여성 최모 씨는 워터파크 여성 샤워장에서 샤워 장면을 몰래카메라로 찍어 음란물 유통 사이트에 팔았다가 구속됐다. 최 씨는 채팅 앱을 통해 만난 어느 남성으로부터 돈을 주겠다는 제안과 함께 휴대전화 케이스형 몰래카메라를 건네받고 185분 분량의 영상을 찍어 넘겼다. 최 씨는 여성의 알몸을 훔쳐본 것이 아니라 그냥 본 것일 뿐이지만 최 씨가 몰래카메라로 찍은 영상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워터파크의 여성 샤워장을 훔쳐봤다.

훔쳐보고 싶은 욕구야 중세의 피핑톰이나 워터파크 영상을 본 누리꾼이나 마찬가지겠지만 현대인의 훔쳐보기 욕구가 더 강렬해 보인다. 화질이 좋은 소형 카메라 기술의 발달로 훔쳐보는 게 더 쉬워졌기 때문일 것이다. 몰래카메라의 눈은 모든 것을 보게 해준다. 심지어 몰래카메라로 찍고 있는 자신의 모습도 보여준다. 최 씨의 몰카 영상에는 샤워장 거울에 비친 최 씨의 모습도 들어 있었고 이것이 단서가 돼 경찰에 체포됐다니 아이러니다.

송 평 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