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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협박문 받고도 외국사절 개성 보낸 정부

북협박문 받고도 외국사절 개성 보낸 정부

Posted December. 21, 2013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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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내 한복판에서 우리의 최고 존엄에 대한 특대형 도발을 반복한다면 우리의 가차 없는 보복 행동이 예고 없이 무자비하게 가해질 것이다.

북한이 19일 오전 국방위원회 정책국 서기실 명의로 청와대 국가안보실 앞으로 보낸 전화통지문 내용이다. 국방부는 국방부 정책기획관실 명의로 북한이 도발할 경우 단호하게 응징할 것이라고 즉각적인 답신을 보냈다.

북한이 지칭한 최고 존엄에 대한 특대형 도발은 김정일 국방위원장 2주기 추모대회가 열린 17일 한국 보수단체들이 서울시내에서 대규모 시위를 벌인 것을 문제 삼은 것으로 보인다. 당시 보수단체들은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화형식을 거행하며 강도 높게 북한을 비난했다. 그간 북한은 소위 백두혈통인 최고 존엄을 문제 삼는 행위에 대해선 무자비한 징벌 특대형 모략 등의 단어를 써 가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여 왔다. 정영태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최고 존엄에 대한 일체의 비판도 용납하지 않는 것이 바로 북한 사회라고 말했다.

하지만 장성택 북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처형 이후 강경 군부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으며 그런 분위기가 국방위 전통문으로 나타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실제 북한의 2인자로 떠오른 최룡해 군 총정치국장은 김정일 2주기 중앙추모대회 결의 연설에서 전쟁은 광고를 내지 않고 시작된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더욱이 북한이 전통문을 보낸 19일은 남북공동위원회 4차 회의가 예정돼 있던 날이기도 했다. 향후 북한이 도발 수위를 높여 가면서 유사한 협박을 계속 내놓을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 당국자는 김정은이 장성택을 처형하며 사실상 새로운 즉위식을 했는데 이제 대내외적으로 성과를 보여 줘야 하지 않겠느냐며 올 초 남북이 긴장 상태에 돌입했던 것과 비슷한 상황이 되풀이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정부는 북한 군부의 충성 경쟁 등 예상치 못한 도발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북한이 국방위 명의로 청와대에 전통문을 보낸 것은 박근혜 정부 들어 처음이라며 협박문을 가볍게 보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한편 국방부는 전통문을 전부 공개하면 북한의 심리전에 역이용당할 수 있다며 19일 내내 공개하지 않았다. 통일부 역시 전통문을 받은 사실을 알리지 않은 채 당일 오후 주요 20개국(G20) 대표단 20여 명을 예정대로 개성공단에 보내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개성공단 4차 공동위 결과 브리핑을 했다. 정부가 북한의 협박 사실을 공개하지 않고 쉬쉬한 것은 적절치 않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이 전통문에서 문제 삼은 최고 존엄 모독은 어차피 늘 민감하게 반응하는 문제였고, 협박 사실을 해외 대표단에 알리면 괜히 불안만 조성할 수 있다고 봤다고 해명했다.

손영일 scud2007@donga.com이정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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