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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농민 특권층

Posted March. 17, 2012 0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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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훈 전 통상교섭본부장이 2010년 말 농촌에 다방 농민이 많아 농업이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가 일부 농민의 거센 항의를 받았다. 김 전 본부장은 농사는 열심히 하지 않고 다방에 모여앉아 공무원과 어울려 정부 지원금을 타낼 궁리를 하는 농민을 다방 농민이라고 지칭했다. 그러나 진정한 농민이라면 김 전 본부장의 말에 화를 내기보다는 다방 농민에게 흘러가는 정부 보조금을 진짜 농민에게 돌아가게 하라고 정부에 요구했어야 한다.

박준영 전남도지사는 어제 전화통화에서 정부 농업보조금이 일부 농민에게 집중되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진짜 농민은 너무 바빠 관청에 갈 시간도 없는 반면 관청에 들락거리는 소수 특권층이 주로 보조금을 타먹는다는 의견이다. 2004년부터 8년 가까이 도지사로서 농정 일선에서 겪은 경험담인지라 생생하다. 다른 지역도 크게 다를 것 같지 않다. 박 지사는 현장 조사를 거쳐 보조금 제도 개선안을 만들면 보조금을 계속 타먹던 농어민이 반발한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전국농민회총연맹은 지난달 민주통합당에 공문을 보내 박 지사를 민주당에서 제명해 달라고 요청했다.

박 지사는 농로 배수로 저수시설처럼 공공재적 성격이 있는 시설을 만들 경우에만 보조금을 주고 개별 농민 지원은 장기 저리 융자로 바꿔갈 방침이다. 낮은 이자라도 물게 되면 농민이 돈을 계획 없이 빌려가지는 않을 것이다. 서규용 농림수산식품부 장관도 무상 보조금은 줄이고 저리 융자 자금을 늘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서 장관은 농사 대신 도로 점거 등 시위에 나서면서 정부에 보조금을 요구하는 일부 농민의 아스팔트 농업과 결별할 때라고 강조했다.

1992년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타결을 시작으로 정부가 농어촌에 보조금을 주거나 싼 이자로 빌려준 돈이 2011년까지 183조 원에 이른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피해 보상 등으로 2008년부터 추가로 54조 원이 풀리고 있다. 농민 반발을 돈으로 무마하거나, 선거 때 표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보조금을 앞세운 측면도 있다. 이제 웬만한 보조금에는 만족 못하는 보조금 내성()이 농촌에 생겼을 정도다. 정부 지원금이 특권층 농민이 아니라 논밭과 축사에서 땀 흘리는 농민에게 돌아갈 때 한국 농업이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다.

홍 권 희 논설위원 koni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