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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정치권을 간첩 소굴로 만드는 자들이 누군가

[사설] 정치권을 간첩 소굴로 만드는 자들이 누군가

Posted August. 01, 2011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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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안당국은 북한 노동당의 지령을 받아 간첩활동을 벌여온 종북() 지하당 조직 왕재산을 적발해 수사하고 있다. 왕재산을 조직하고 활동을 주도한 혐의로 민주당 출신의 전 국회의장 비서관 등이 구속돼 파문이 커지고 있다. 민주노동당 등 야당 소속 지방자치단체장과 기초의원, 전현직 당직자, 노조 간부 등 40여명도 수사선상에 올랐다. 당국은 왕재산이 남한 내 정당 및 노동단체 동향, 군사기밀 등을 수집해 북한에 보고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들이 정치권 경제계 학계 등에 광범위한 네트워크를 구축하려 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민노당은 이번 사건 수사와 관련해 논평을 내고 이명박 정권이 진보진영에 공안탄압을 자행하고 있다 내년 총선, 대선을 앞두고 민노당을 흠집내어 심판을 모면해보려는 최후 몸부림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민노당 관련자가 간첩사건에 연루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3년 8월 민노당 강태문 당시 고문이 북한 측 인사에게 정보를 건네 실형을 선고받았고 2006년 10월에는 민노당 중앙위원과 사무부총장 등이 연루된 일심회 간첩단 사건이 발생해 유죄판결을 받았다. 2009년 7월엔 민노당 비정규직담당 국장이 북한 체제를 찬양한 글을 인터넷에 올려 구속됐다. 현 시점에서 민노당은 일단 수사 상황을 지켜본 뒤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바람직하다. 민노당이 야당 유린이라며 정치 공세를 펴는 것은 수사를 방해하고 심지어 혐의자를 비호하는 행위에 해당한다.

2001년 창당한 민노당은 국회의원 기초단체장 기초의원을 여럿 배출하면서 제도권 정당이 됐다. 하지만 민노당의 당직자 당원이 잇달아 간첩사건에 연루되는 것은 민노당이 과연 대한민국 헌법정신에 어울리는 정당조직인지 의구심을 낳고 있다. 진보신당이 민주당에서 떨어져 나와 새 정당을 만든 것도 민노당의 종북()주의 때문이었다. 종북은 김일성 왕조 추종에 다름 아니다.

민노당은 진보신당 국민참여당 등과 진보정당 통합을 추진하고 있다. 민주당도 진보의 깃발 아래 민노당과 연대를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체제의 기반을 뒤흔드는 사이비 진보를 도려내지 못하면 어떠한 명분의 통합과 연대도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 손학규 대표의 종북진보 경고 발언으로 내홍에 휩싸인 민주당도 이번 사건을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한다.

민주화 세력은 대한민국 체제로서의 민주주의를 정립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민주국가로서 토대를 굳건히 하려는 이들의 노력을 밑둥부터 갉아먹으며 대한민국을 전복하려는 간첩종북세력을 민주화세력으로 뭉뚱그려 정당화하는 것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 진정한 진보, 참된 민주화세력이 정당한 평가를 받으려면 이들과 분명하게 선을 그어야 한다.

북한이 남한의 반정부세력과 손잡고 체제 전복을 기도하는 통일전선 전략은 1970년대 이후 기로를 맞았다. 국가보안법, 보안기관, 안보의식 등 남한의 법률근거와 사회환경이 방해 요인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북한은 하층 통일전선 전략에 상층 통일전선 전략을 추가했다. 그때껏 제휴 대상이 아니라고 여긴 남한 정부와 정부 관련기관 등 상층부 인사들에게 손을 뻗친 것이다. 좌익운동 이론가로 활동했던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는 박정희 정권 당시 수사기관이 발표한 좌익사건 보도내용 대부분이 기본적으로 사실이라고 증언했다. 인혁당은 공산혁명을 위해 남한에서 자발적으로 생겨난 조직이며, 통혁당은 북한의 지령에 따라 결성된 혁명조직이었다는 고백이다. 이동복 북한민주화포럼 상임대표는 김대중노무현 정권 때는 정부 스스로가 넓은 의미에서 지하당 역할을 한 측면이 있어 북한의 지하당 공작도 뜸해졌다. 그러다 이명박 정부 들어 여건이 변하자 북한은 다시 지하당 공작에 열을 올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1973년 5월 서독 당국은 한스 디트리히 겐셔 내무장관에게 빌리 브란트 총리의 수행비서 귄터 기욤이 동독 비밀경찰 슈타지의 요원이라고 보고했다. 기욤이 체포된 것은 1년 뒤였고 브란트 총리는 결국 사퇴했다. 슈타지는 통일 전까지 서독에 3만여명의 고정간첩을 암약시키며 의원과 각료, 정보기관원은 물론 미래의 인재가 될 의원보좌관과 대학생까지 포섭했다.

김일성도 1973년 4월 간첩들에게 남조선에는 고등고시만 합격하면 행정부 사법부에 얼마든지 잠입할 수 있다. 머리 좋고 확실한 자식들은 데모에 내보내지 말고 고시 준비를 시켜라는 지령을 내렸다. 그 결과가 국내 각계에서 나타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통일이 되고 나면 북한과 내통한 세력의 실체가 드러날 것이지만 그때까지 기다릴 수 없다. 정부는 내통세력의 실체를 밝히는 데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들이 정치권이나 정부기관뿐 아니라 국내 주요 단체에서 활동하는 것도 철저하게 차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