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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모내기와 농협 개혁

Posted May. 27, 2009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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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전 대통령은 모내기철마다 농촌을 찾았다. 햇볕에 탄 듯 까만 얼굴에 밀짚 모자를 쓰고 논두렁에 주저 앉아 농민들과 더불어 막걸리를 즐겨 마시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었다. 스스로 농민의 아들이라고 했던 그의 옷차림은 영락없는 농부의 모습이었다. 이런 대통령의 모습은 1960년대 까지만 해도 도시에 비해 가난하고 소외된 농민의 마음을 어루만졌다. 농민 대통령의 이미지가 만들어낸 카리스마는 새마을 운동과 농정 개혁을 추진하는데도 큰 힘이 됐다.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내기행사를 하지 않았다. 대통령으로서는 12년 만에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20일 경기도 안성의 한 농촌 마을을 찾아 농민들과 함께 직접 모내기를 했다. 이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최원병 농협중앙회장에게 농민을 위한 농협의 돼야 한다고 말했다. 농협이 농민의 원성을 듣지 않도록 솔선해 개혁해 달라는 주문이다.

이 대통령이 농협 개혁을 강조한 것은 벌써 여러 번이다. 작년 12월 4일 새벽에 가락동 농수산물 시장을 찾은 이 대통령은 농협이 금융에서 몇조씩 벌어서 사고나 치고 있다면서 농협이 번 돈을 농민을 위해 어떻게 쓸 것인지 머리를 써야 한다고 개탄했다. 올해 3월 뉴질랜드를 방문했을 때도 뉴질랜드는 보조금 없이도 경쟁력 있는 농업혁명을 이룩했다며 농협 개혁을 줄곧 강조했다. 수행했던 장태평 농식품부 장관에게 강력한 개혁을 지시했다.

하지만 아직도 농민을 위한 농협 개혁은 지지부진하다. 개혁 대상인 농협중앙회가 요지부동이다. 모내기 현장에서 이 대통령에게 농민을 위한 농협이 되어달라는 주문을 받은 최 농협중앙회장은 22일 농협은 정부 산하기관이 아니다며 시간을 두고 농협 스스로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이는 올해 안에 마무리 짓는다는 정부 방침과는 딴판이다. 최 회장은 2017년 개혁을 하려면 농협이 17조원을 적립해야 하는데 10조원이 모자란다고 말했다. 8년뒤의 일을 지금 말한다고 해서 누가 믿을 수 있나. 장관 힘으로 안되면 대통령이라도 발 벗고 나서야 할 것 같다. 모내기 일손 돕기도 좋지만 농협이 제대로 개혁되어 농촌을 돕도록 하는 일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박 영 균 논설위원 parky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