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to contents

치솟는 물가 고 환율 정책이 부채질

Posted May. 17, 2008 19:15,   

ENGLISH

올해 1분기(13월) 원-달러 환율이 치솟으면서(원화가치 하락) 석유제품의 원재료인 원유를 전량 수입하는 SK에너지는 약 1500억 원의 환차손을 봤다. 올해 연 평균 원-달러 환율을 915원 선으로 보고 이 기준으로 미리 원유도입 계약을 맺었기 때문이었다. 이 회사의 영업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6% 줄었고 경쟁사인 GS칼텍스도 1분기에 비슷한 이유로 영업 손실을 냈다.

원-달러 환율이 치솟으면서 수입 물가가 뛰어오르고 있다. 수입 물가는 한두 달 뒤에 소비자물가에 반영된다. 급등하는 국제 원자재 가격에다 원화 약세가 겹쳐 국민의 부담이 커지면 물가는 정부의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하게 된다.

이에 따라 원화가치를 낮게 유도해 수출을 늘리고 경상수지 적자를 줄이려던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의 환율정책 방향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강만수 환율이 위기에 봉착한 것이다.

수입 물가 고공행진 지속

16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4월 중 수출입물가 동향 자료에 따르면 4월 수입물가(원화 기준)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31.3% 급등했다. 외환위기로 원화 가치가 급락했던 1998년 5월 31.9% 이후 10년 여 만의 최고치다.

가파르게 오른 수입물가는 생산자물가와 소비자물가에 순차적으로 영향을 주고 있다.

전년 동월대비 수입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12월 15.6%에서 올해 1월 21.2%, 2월 22.2% 3월 28.0% 등으로 계속 상승했으며 이에 따라 소비자물가도 지난해 12월부터 매월 한은의 물가관리 상한선인 연 3.5%를 지속적으로 넘고 있다.

올해 들어 급락한 원화 가치(원-달러 환율 급등)는 수입 물가를 더욱 끌어올리고 있다.

한은에 따르면 환율변동 효과를 제거한 외화표시 4월 수입물가 상승률은 작년 동월대비 21.9%로 같은 달 원화표시 상승률 31.3%보다 9.4%포인트 낮았다. 수입물가 상승분 중 3분의 2는 국제원자재가격 상승 때문이지만 3분의 1은 환율 때문이라는 뜻이다.

평균 원-달러 환율이 930.24원 수준이던 지난해 12월엔 원화표시 수입물가와 외화표시 수입물가의 차이가 1.5%포인트에 불과했다.

이와 관련해 이성태 한은 총재는 최근 우리 경제에서 원자재 가격과 환율 중 물가에 미치는 영향은 환율의 영향이 더 크다고 지적했다. 또 원-달러 환율이 1% 오르면 소비자물가는 1년간 약 0.08% 올라 유가보다 약 4배의 영향을 물가에 미친다고 한은은 설명했다.

경상수지 적자보다 내수 위축이 심각

정부가 원하던 대로 높아진 환율을 수출을 촉진하고 있다. 수출이 늘면 경상수지 적자가 줄고 경제성장률도 높아지는데 도움이 된다.

16일 관세청은 4월 무역수지 적자폭이 1억9500만 달러로 3월의 8억2000만 달러에 비해 크게 줄었다고 발표했다. 정부가 유도한 높은 원-달러 환율로 4월 수출 증가율이 전년 동기 대비 26.4%이나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높은 환율로 물가가 들썩이면서 경상수지 적자를 줄이는 긍정적 효과보다 물가상승에 따른 임금 근로자들의 실질구매력 위축, 이에 따른 내수위축 등의 부정적 효과가 더 크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오문석 LG경제연구원 상무는 원화가치가 낮으면 국제시장에서 한국 제품의 가격경쟁력이 높아져 수출이 늘어나는 것은 당연하다며 다만 높은 환율이 가져오는 긍정적 효과 뿐 아니라 물가불안과 내수위축을 가져오는 부정적 측면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내수가 위축되면 고용유발 효과가 큰 서비스 산업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 정부가 원화가치를 낮게 유지함으로써 궁극적으로 달성하고자 하는 높은 성장률과 일자리 창출이라는 목표를 오히려 훼손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수출 대기업의 매출 증가가 고용확대로 잘 이어지지 않고 있다는 분석들도 정부로서는 부담이다.

실제로 내수위축은 빠르게 나타나고 있다. 한은에 따르면 소비재판매 증가율은 지난해 1분기 5.7%에서 올해 같은 기간 3.8%로 떨어졌다.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거시분석실장은 지금은 낮은 환율로 물가를 안정시키고 저금리와 재정지출 확대로 내수를 진작해야 할 시점이라며 최근엔 수출이 늘어나도 고용 증가와 일반인의 소비지출 증대로 연결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경제성장률이 같더라도 서비스를 포함한 내수의 기여도가 수출보다 낮으면 경제 주체들이 느끼는 체감경기는 나빠진다는 지적이다.

일부에서는 원화가치가 높았던 20032006년에도 한국은 두 자리 수의 수출 증가율을 보였다며 높은 환율이 수출에 미치는 영향력이 줄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한은의 한 관계자는 환율이 올라도 석유제품 등 원자재 도입가격이 높아져 국내 기업이 가격을 낮출 수 있는 여력이 많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며 국내 기업의 수출은 가격 경쟁력보다는 수입국의 수요와 국내 기업들의 품질이 결정한다고 말했다.



이나연 laros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