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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상록수, 여기서 예쁘게 컸구나

Posted May. 03, 2008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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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당! 타당! 청군 이겨라, 백군 이겨라.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나가면 온 세상 어린이들 다 만나고 오겠네. 앞으로, 앞으로.

만국기가 푸른 하늘을 가로지르며 펄럭인다. 2일 오전 충남 당진군 송악면 부곡리의 상록초등학교 운동장. 학부모와 학생, 교직원 6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상록가족 한마당 축제가 열렸다. 교명()처럼 푸른 나무 그늘 아래 파란 체육복을 차려 입은 아이들이 2인 3각 릴레이를 응원하고 있었다.

이 학교가 일제강점기 계몽소설 상록수의 작가 심훈(19011936) 선생의 상록(늘푸른) 정신을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최근 밝혀졌다. 상록초교는 1935년 야학당으로 출발했는데, 심훈 선생이 동아일보가 창간 15주년 기념으로 마련한 장편소설 현상 공모전에서 당선작 상록수로 받은 상금 중 100원을 기탁해 야학당을 세웠다는 것이다.

이 학교의 유인종 교장은 당시 100원은 쌀 10가마에 해당하는 가격이었다며 마을 회관을 빌려서 이뤄지던 야학 활동은 심훈 선생의 기부 덕분에 비로소 학교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유 교장은 지난해 부임한 뒤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하고 상록 정신을 고취하기 위해 심훈의 그날이 오면 시비()를 세우고 매년 상록수 독후감대회 등을 열고 있다.

소설 상록수는 1935년 9월 10일부터 이듬해 2월 15일까지 127회에 걸쳐 동아일보에 연재된 작품. 동아일보는 1935년 8월 13일자에서 조선의 농어촌을 배경으로 조선의 독자적 색채와 정조를 가미했으며 인물들은 조선 청년으로서 명랑함과 진취성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심훈 선생은 192426년 동아일보 기자로 활동하다가 1932년 시집 그날이 오면이 일제의 검열로 사장되자 부곡리에 정착했다. 마침 이곳에서는 선생의 조카 심재영 씨가 공동경작회를 운영하며 야학을 비롯해 농촌계몽운동을 벌이고 있었다. 심훈은 상록초교 인근에 글을 경작한다는 뜻을 가진 집필실 필경사()를 짓고 상록수를 집필했으나 1936년 장티푸스로 사망했다.

상록수의 주인공 박동혁은 심재영 씨를 모델로 한 인물이며 소설 속 배경인 한곡리는 부곡리와 인근 한진리에서 한 글자씩 따온 것이다. 심재영 씨는 광복 이후 야학당이 상록초교로 이어지자 교가를 짓는 등 평생 헌신하다가 3년 전 작고했다.

이날 축제에 참가한 상록초교 학생과 학부모들도 상록초교가 바로 상록수의 고향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보였다.

정유진(6학년) 양은 교과서에도 등장하는 소설의 무대가 우리 학교 옛 터전이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다며 일제강점기에서도 교육을 통해 희망을 가꾸었던 심훈 선생님의 정신을 본받고 싶다고 말했다.

유 교장은 집필실인 필경사와 상록초교 일대를 비롯해 심재영 씨 생가를 포함하는 상록수 문화단지로 조성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염희진 salth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