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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 언론 대못질 제1부]<12>궁금증 못풀어주는 맹탕브리핑

[참여정부 언론 대못질 제1부]<12>궁금증 못풀어주는 맹탕브리핑

Posted December. 17, 2007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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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감한 질문엔 입 닫아 정부 자료 낭독회 변질

#사례1

국방부는 6월 1일 미국이 강원 춘천시의 캠프 페이지 등 주한미군 9개 기지를 한국 정부에 반환하는 절차가 5월 31일로 마무리됐다는 브리핑을 했다. 당시 미군기지의 토양 오염과 치유 비용이 현안이었기 때문에 기자들의 관심은 반환된 미군기지의 환경오염 실태와 치유에 집중됐다.

하지만 배포된 2장짜리 보도 자료는 물론 브리핑에 나선 국방부 당국자의 입을 통해서도 국민적 관심사는 해소되지 못했다. 환경오염 실태와 치유에 대해 질문이 쏟아지자 국방부 당국자는 환경부가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피해 나갔다.

이날 오후 갑작스럽게 열린 환경부 브리핑도 마찬가지. 1장짜리 보도 자료는 앞서 배포된 국방부 보도 자료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오염 실태와 치유 비용에 대한 기자들의 거듭된 질문에 환경부 당국자는 말할 수 없다며 답변을 거부했다.

#사례2

건설교통부는 6월 5일 정례 브리핑에서 신규 제작 자동차의 실내 공기 질()에 대한 권고 기준을 제정한다는 내용의 자료를 내고 설명을 했다. 하지만 이 건은 건교부가 작년 말에 홍보했던 내용과 크게 다를 게 없었다. 브리핑은 건교부 당국자가 자료를 읽는 것으로 끝났고 기자들의 질문도 없었다.

이날 건교부 브리핑은 정부가 6월 1일 강남 대체 신도시로 경기 동탄신도시를 확대 개발한다고 발표한 이후 4일 만에 열린 정례 브리핑이었다. 당연히 기자들의 관심은 신도시의 개발 추진 과정에 집중돼 있었지만 관련 당국자들은 브리핑에 참석하지 않았다. 건교부는 엉뚱한 보도 자료 한 건으로 정례 브리핑을 때운 셈이었다.

정부는 취재 지원 시스템 선진화 방안을 도입하면서 각 부처의 공식 브리핑을 통해 정보를 충실하게 공개하겠다고 밝혔지만 정부 부처들의 브리핑은 알맹이 없는 맹탕 브리핑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브리핑은 국민의 관심과 동떨어진 정책을 일방적으로 홍보하거나 민간의 정책 비판에 대해 해명하는 자리가 되고 있다. 정작 국민이 관심을 갖고 있는 사안이나 곤란한 주제에 대해선 답변을 피하거나 아예 브리핑을 하지 않는 사례가 적지 않다.

민감한 주제에는 모르쇠

2월 8일 한미 쇠고기 수입 검역 관련 기술협의가 열렸다. 양국 간 수입 위생 조건을 논의하는 자리로 향후 미국 쇠고기 수입 여부를 가늠할 수 있는 의미 있는 회의였다.

농림부는 협의 결과에 대한 브리핑을 하며 자료를 배포했지만 회의가 열렸다. 합의를 보지 못했다는 요지의 딱 두 문장이 전부였다. 그나마 브리핑은 회의가 끝난 당일이 아닌 그 다음 날에서야 열렸다.

제21차 남북 장관급회담이 아무런 성과 없이 끝나고 며칠 뒤인 6월 7일 통일부 브리핑이 열렸다. 기자들의 관심은 남북관계에 미치는 영향이었다. 하지만 브리핑에 나선 신언상 당시 통일부 차관은 남북관계가 큰 틀에서는 별 문제없이 진행될 것으로 전망한다는 답변만 되풀이했다. 남북관계의 문제는 무엇이고 정부가 생각하는 해결 방안이 무엇인지에 대한 기자들의 궁금증은 풀리지 않았다.

물론 정부 부처의 모든 브리핑이 이처럼 내용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상당수가 부실한 내용으로 진행돼 기자들의 불만을 사고 있다.

송외교 8주째 정례 브리핑 안 해

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은 7월 11일 마지막 브리핑을 끝으로 8주째 내외신 정례 브리핑을 실시하지 않고 있다. 장관이 일주일에 한 번 나서는 정례 브리핑은 외교부의 공식 방침이 나오는 거의 유일한 창구다.

해외 출장 등으로 불가피한 경우도 있지만 특별히 할 말이 없다는 단순한 이유를 들어 정례 브리핑을 취소하기도 했다. 지난달 22일에는 사전 양해조차 구하지 않아 송 장관의 브리핑을 듣기 위해 모여 있던 기자들에게서 항의를 받기도 했다.

이처럼 장관 또는 차관이 브리핑을 기피하는 정부 부처도 적지 않다. 기자들로서는 책임 있는 답변이나 설명을 들을 수 없으니 그만큼 브리핑은 부실해질 수밖에 없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소속 한나라당 김기현 의원이 기획예산처 등 18부 1처 5청의 브리핑 실적을 제출받아 분석한 결과 올해 들어 8월까지 장차관 또는 청장이 정례 브리핑을 한 번도 실시하지 않은 부처 및 외청()이 7곳이나 됐다.

배경 설명 브리핑도 거의 없어

방송 카메라나 녹음기 없이 정책 당국자들이 허심탄회하게 기자실에 내려와 정책 진행 상황을 설명하는 백그라운드 브리핑을 실시하는 부처는 찾아보기 어렵다.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재정경제부의 경우 1, 2년 전만 해도 일주일에 한두 차례 백그라운드 브리핑이 진행돼 기자들이 정책 당국자들의 솔직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7월 이후 현재까지 2개월여 동안 재경부의 백그라운드 브리핑은 한두 차례에 불과했다.

농림부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등 국민적 관심사에 대해서조차 백그라운드 브리핑이나 중간 브리핑이 거의 없었다.

정부가 엉터리 재정 통계를 발표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이 이달 7일 알려졌지만 핵심 소관부처인 기획예산처는 아직 공식 브리핑은커녕 백그라운드 브리핑조차 하지 않았다.

[28억 들인 전자브리핑도 부실]

국정홍보처가 이른바 취재지원 시스템 선진화 방안의 하나로 추진 중인 전자브리핑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정부가 전자브리핑 시스템 구축에 앞서 상황점검 목적으로 실시하는 온라인 취재지원 테스트를 보면 전자브리핑의 부실 징후를 알 수 있다. 현재 이 테스트를 하고 있는 정부 부처는 재정경제부와 외교통상부 등 두 곳이다.

10일 현재 재경부가 시범 운영 중인 온라인 질의응답 서비스에는 각각 두 개의 질문과 답변이 달랑 올라와 있다. 그나마 두 개의 질문 등록일이 7월 16일이므로 두 달 가까이 질의응답이 전혀 없었던 셈이다. 정부는 테스트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으나 실제 이용자인 기자들에게 외면당하고 있는 셈이다.

당초 정부는 온라인 질의응답을 통해 전국 어디서나 실시간 브리핑 취재가 가능하고 지방과 인터넷 매체 등에 대해서도 취재 편의 제공을 강화하기 위해 전자브리핑 시스템을 구축하기로 했다. 하지만 질문을 한 두 사람은 중앙 일간지 소속 기자이고, 지방 매체나 인터넷 매체 소속 기자는 이 서비스를 이용하지도 않았다.

외교통상부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날 현재 올라온 질의응답은 7월 23일 등록된 한 건뿐이다.

이처럼 부처 공무원을 상대로 한 온라인 질의응답에 대해 기자 사회가 냉담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질의 및 응답 내용을 누구나 볼 수 있기 때문.

기자의 취재 내용을 다른 언론사에 드러내 놓는 것이어서 시범 서비스 초기부터 취재의 기본도 모르는 탁상공론 정책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또 관료들의 답변도 부처 내에서는 누가 어떤 내용으로 말했는지 감시할 수 있기 때문에 형식적 수준에 그칠 것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국정홍보처는 최근 전자브리핑 시스템 개발을 마무리하고 13일경부터 정식 가동할 계획이다. 정부는 이 시스템 구축에 28억 원의 세금을 들였다.

전자브리핑은 온라인 질의응답 테스트와는 달리 비공개 설정 기능이 있어 질문 제목과 내용을 볼 수 없도록 했다는 게 홍보처의 설명.

하지만 전자브리핑의 문제를 사전 점검하기 위해 실시한 온라인 질의응답 테스트가 형식적으로 그친 상황에서 구축된 전자브리핑이 얼마나 활성화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